조정빈 기자
학술부

작년 이맘때쯤 수강하던 ‘한국어음운론’ 수업에서 수어 특강이 열렸다. 얄팍하게나마 수어를 배워 단어 몇 개를 알음알음 알아볼 수 있었던 나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아는 체를 참 열심히도 했다. 강연자로 나섰던 수어통역사 선생님이 수화를 왜 배운 건지 물어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별 의미 없는 질문이었겠지만, 나에게는 그 질문이 생각지도 못했던 어떤 부분을 건드리는 스위치 같았다. 나는 입학하자마자 학내 수화봉사동아리의 문을 두드렸다가 회장도 맡고, 농인 청소년을 상대로 학습봉사 활동도 했고, 수어로 공연도 했다. 학외 수화교실을 드나들기까지 했지만 나는 왜 수어를 배우는지에 대해 단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의 어느 날이 떠올랐다. 그날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수어, 정확히는 지화를 배웠다. 동기는 불순했다. 봉사시간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손가락을 굽혔다 폈다 열심히 움직이며 한글 자모를 다 익히고 받아든 종이에는 ‘자원봉사인증서’ ‘활동시간 4시간’ ‘봉사자 조정빈’이라는 글자들이 떡하니 쓰여 있었다. 나는 그 저 수화를 배웠을 뿐인데 봉사활동으로 인정된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편하게 느껴져서 2단계, 3단계도 연달아 신청했다. <너의 손이 속삭이고 있어>라는 제목의 일본 드라마를 감상하고 대사 일부를 요리조리 따라한 대가는 총 12시간의 봉사시간이었다. 이렇게 쉽고 편한 방법이 있다니! 나는 그 12시간을 한없이 가볍고 편안한 시간으로만 기억할 뿐, 그 시간의 무게감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이따금 희미한 기억을 되짚으며 꼬물거리는 손가락만이 유일한 흔적처럼 남았다. 그리고 그 기억을 따라 나는 동아리에 가입하고 수어를 다시 시작했다.

나의 한없이 가벼운 취미생활 같이 보이겠지만, 한국수어는 사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모어다. 한국수어법이 제정되면서 27만 한국 농인들은 언어권을 법적으로 보장받게 됐지만 사회통합은 아직 요원하다. 청인들은 여전히 수어에 무관심하거나, 수어를 그저 구어의 보조수단으로 쓰이는 손짓으로만 알고 있다. 모순적이게도 그래서 우리는 ‘가벼움’을 필요로 한다. 수어의 문턱은 생각보다 낮다. 각 지역 수화통역센터에서는 초급, 중급, 고급 난이도별로 수어 교실이 두세 달에 한 번씩 열린다. 전문교육원, 교회 등 다른 통로로도 수어를 얼마든지 접할 수 있다. 인터넷 강의도 있고 유튜브에도 강좌 영상이 많이 올라와 있다.

부끄럽게도 나는 왜 수어를 배우는지에 대해 아직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편하게 봉사시간을 받던 어렴풋한 기억 때문일 수도 있고, 농문화를 좀 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 때문일 수도 있고, 수어라는 언어 자체에 대한 흥미 때문일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이것뿐이다. 수어를 시작하는 데 발 벗고 나서서 주위의 농인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사명감이라든가 어떤 특별한 계기가 필요하지는 않다. 고등학교 1학년의 나처럼, 정말 불순하기 짝이 없는 출발이라 하더라도 아주 조그마한 관심만 있다면 우리는 모두 수어를 배울 준비를 마친 셈이다. 문득 이런 기대가 든다. 봉사시간 4시간은 아니라도, 이 글이 당신의 마음을 아주 조금이나마 움직이진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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