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현대미술 축제의 향연, 독일에 주목하다
유럽 현대미술 축제의 향연, 독일에 주목하다
  • 조수지 기자, 이종건 기자, 이은희 기자
  • 승인 2017.10.22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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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유럽 3대 미술 축제를 다녀오다

2017년은 미술인들 사이에서 ‘황금의 해’라고 불리는 해다. 유럽의 3대 미술축제인 ‘베니스 비엔날레’ ‘카셀 도큐멘타’ 그리고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가 연이어 열린 흔치 않은 기회기 때문이다. 세 축제 모두 전세계에서 작품들이 모여드는 축제지만, 그중에서도 90년대 이후 현대미술의 새로운 배양지로 불리는 독일에 이목이 쏠렸다.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와 카셀 도큐멘타는 독일에 뿌리내려 개최돼왔는가 하면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선 독일관이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해 이목을 끌었다.

이에 『대학신문』에선 유럽 3대 예술축제 현장에 직접 다녀와 각기 다른 매력을 풀어본다. 이를 통해 세계가 주목한 독일 현대미술의 저력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

파우스트의 통찰, 베니스 비엔날레를 긴장시키다 - 이종건 기자

(사진①)
(사진②)

1895년 국제적인 미술품 전시로 처음 시작된 ‘베니스 비엔날레’는 춤, 음악 등의 다양한 형태와 더불어 30개 국가관이라는 국가적 다양성까지 갖추며 점차 세계가 주목하는 유럽의 3대 전시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5월 10일부터 11월 26일까지 베네치아 도시 곳곳에서 미술전을 진행하고 있는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는 ‘예술 만만세’(VIVA ART VIVA)다. 작가들의 작업실을 공개한다는 의미의 ‘오픈 스튜디오’ 형식을 빌려 전시를 꾸민 만큼 작가·작품·관객 사이에서 더욱 다양하고 적극적인 교류가 있었다. 이 가운데 베니스 비엔날레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독일관의 안네 임호프, 작가상을 에르하드 발터가 휩쓸며 현대 미술을 독일이 주도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안네 임호프와 에르하드 발터의 작품은 황금사자상을 받은 만큼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사진①) 그중에서도 가장 이목을 끈 독일관 안네 임호프의 작품 ‘파우스트’(2017)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차용, 재해석한 퍼포먼스 작품이다. 안네 임호프는 작가 노트를 통해 전적으로 자본에 의해 결정되는 대상의 가치와 결국 돈이 모든 것의 우위에 서게 될 수 있다는 위험성,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것의 거래에 의한 영혼의 상실에 대해 언급했다. 이를 대변하듯 입구엔 감시를 위한 검은 대형견들이 철창 속을 활보하며 기다리는 관객을 긴장시켰고, 실내에선 강한 음향이 퍼져 나왔다. 퍼포머들은 작가의 통제에 따라 실내외 구분 없이 넘나들며 관객들과 유리 벽 사이를 가르며 서로 응시하고, 노려보고, 뒤엉키고, 고립됐다.

서로 고립된 퍼포머들은 악기를 연주하기도, 생닭을 뜯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자위를 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 같은 모습을 공개적으로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 행위들을 유리 넘어 보는 데서 오는 심리적 불편함, 즉 많은 사람이 동시에 ‘관음’하고 있다는 인식을 유도함으로써 관객들을 자극했다. 한 프랑스 남성 관객은 “작품이 주는 심리적인 불편함은 관음증에 의한 큰 압박이라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관람객들은 ‘파우스트’(2017)가 ‘인간’으로서 느끼는 동물적인 위협, 긴장, 불쾌와 연결된 감각을 매우 강렬하게 자극한 작품이라고 입을 모았다. 프랑스 관객은 “작품이 불친절하고, 거칠고 또 사나웠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그 장소에 머물기 힘들다”고 감상을 밝혔다. 강렬한 인상만큼 ‘현대인의 끔찍한 현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오가기도 했다. 스위스인 관객은 “인간관계의 단절이 느껴진다”고 한 반면 베니스 출신 관객은 “요즘 전보다 빈번해진 범죄, 사건들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퍼포머끼리의 고립과 관계, 더 나아가 관객과 퍼포머들의 고립과 관계는 비예측적으로 연결과 단절을 반복하며 관계의 폭을 다양하게 만들었다.(사진②) 이는 현대의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각양각색의 문제들 속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 현대인이 관객들 스스로 그 혼돈을 체감하도록 유도했다. 한 스위스 여성은 “모든 환경이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고 언급했는데, 실제로 관객들은 계속해서 사방팔방으로 이동하는 퍼포머들에게 시선을 탈취당해 지속적으로 분산됐다. 그렇게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도중 돌발적인 관계가 만들어져 즉흥성과 이번 전시의 핵심인 ‘관객과의 소통’이 두드러지기도 했다. 퍼포먼스 중 관객끼리의 언쟁으로 고성이 오갔는데, 이 때문에 퍼포머와 관객이 뒤바뀌는 순간이 발생한 것이다. 현장에 있던 일본인 관객은 “전시관을 울리는 큰 음향도 인상적이었지만 관객 둘이 싸우는 일이 발생하여 관객과 퍼포머가 뒤바뀌는 상황이 발생했는데 그 순간이 아주 흥미로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퍼포먼스의 집중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작가는 퍼포머와 퍼포먼스를 위한 도구 외의 모든 것은 무채색으로 마감해 감상에 방해 되는 요소을 과감히 배제했다. 커다란 공간을 모두 활용해 퍼포먼스를 진행한 과감함, 사방뿐만 아니라 상·하를 활용하기 위한 반 층의 유리 바닥, 풍부한 음향장치는 관객이 퍼포먼스에 충분히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왔다.

독일관의 퍼포먼스는 현대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겪는 문제와 그에 대한 성찰을 일찍이 통찰한 독일 최고의 소설 중 하나인 『파우스트』의 내용을 잘 함유하고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 조직위는 “독일관은 우리 시대의 시급한 문제를 훌륭한 구성을 통해 전하며 강렬하고 불안한 감정을 느끼게 해 관객을 긴장감 속으로 밀어 넣는다. 독일관 건축물에 부응한 임호프의 작품은 사물, 이미지, 몸, 그리고 음향의 명확한 선택에 의해 선명해진다”고 밝히며 황금사자상을 수여했다.

카셀 도큐멘타

고국을 잃고 몰려온 사람들로 앓는 유럽, 그 속내를 들여다보다 - 이은희 기자

(사진③)
(사진④)
(사진⑤)

카셀 도큐멘타는 5년마다 실험적인 현대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권위적인 행사로 1955년 파시즘의 종말과 독일 나치정권 하의 만행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됐다. 대표적인 작품으론 1982년 독일 현대미술의 거장 요셉 보이스의 공공미술프로젝트 ‘7,000그루의 떡갈나무’가 있다. 이번 전시는 최초로 아테네와 카셀에서 동시 개최됐으며 아네테에선 4월 8일부터 7월 16일까지, 카셀에선 6월 10일부터 9월 17일까지 진행됐다. 주제는 ‘아테네에서 배우다’로 이주와 다양성, 안식처에 대한 정치적 이야기를 내보였다. 160여 명의 작가와 650점이 넘는 작품이 초청된 이번 행사에선 1955년 개최장소인 ‘프리데리치아눔’과 ‘노이에노이에 갤러리’ 등 30곳이 넘는 실내 전시장을 비롯해 야외에서도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최근 다양한 정치적 사건으로 시끄러운 유럽의 가장 큰 골칫거리 중 하나인 난민 문제를 조명한 작품이 눈에 띄었다. 이라크 쿠르드족 출신 작가 히와 이케의 작업 ‘우리가 숨을 내쉴 때’(2017)는 작가 본인이 그리스에서 생활하던 시절의 난민 임시거주지를 재현한 작품이다.(사진③)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만한 크기의 노란색 관 속에 사용감이 느껴지는 물건들이 들어있었다. 수평성과 수직성을 담은 조형으로 빈부격차를 이야기하는 작업이다. ‘노이에노이에 갤러리’에선 영국 작가 테오 에셰투가 제작한 비디오 작업 ‘Atlas Fractured’(2017)를 볼 수 있었다. 인종주의의 해체를 표현한 작품으로 거대한 벽 위에 다양한 인종의 얼굴들을 여럿 겹쳐 표현했다.

‘난민’이라는 주제는 ‘이주’라는 주제로 확장된다. 아테네 현대미술관 소장품 200점이 전시된 실내전시장 ‘프리데리치아눔’엔 1997년 보따리 수백 개를 가지고 전국을 달리는 퍼포먼스를 하며 유명해진 한국 작가 김수자의 작품 ‘보따리’(2005)가 전시됐다.(사진④) 보따리가 전시장 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모습에선 떠나는 이가 급히 짐을 내려놓은 듯한 이주의 흔적을 읽을 수 있었다.

도큐멘타는 결국 난민들이 이주해 형성된 세계가 ‘다양성’을 갖춘 사회이길 바라는 희망을 내세운다. 프리데리치아눔 안에 전시된 로렌짜 보트너의 드로잉과 사진 작업이 이런 다양성을 잘 보여준다.(사진⑤) 로렌짜는 어린 시절 사고로 양팔을 잃었지만 인공 팔을 거부했다. 대신 발레나 재즈, 탭댄스 등에 흥미를 키우며 발과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배웠다. 도시 중심에는 작가 마르타 미누힌의 야외조각 ‘책의 파르테논’(1983)이 우뚝 서 있다. 해당 작품은 고대 그리스 신전 구조물에 행사 기간 기부받은 책이 붙어있는 구조로 나치가 금서를 불태웠던 장소에 세워졌다. 사상과 자유에 대한 억압에 저항하고 자유를 전파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구조물 사이를 지나며 직접 감상할 수 있게 돼 있어, 사람들이 줄을 서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김나연 씨(조소과·12)는 “다른 문화권의 정치적 탄압, 변방, 여성, 난민 등 다양한 담론을 보여줌으로써 이런 문제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생각해보고 내 상황에도 비춰 볼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실험성 강한 작품을 전시하는 카셀이 선택한 주제에 걸맞게 작품은 무거웠고 감상자를 엄숙한 감정 상태로 몰아넣었다. 조소를 전공하는 대학원생 정아사란 씨는 “유럽권 사람들이 현시대에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주제를 조망할 수 있어 좋았다”고 감상을 밝혔다. 한편 의미에 짓눌려 그럴싸한 보여주기에 그쳤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미술이론을 전공하는 학생 박시내 씨는 “주제가 직접적으로 난민 문제 같은 현대의 정치적 사안과 맞닿아있는데 기획과 작업이 그 현실에 접근하는 방식이 섬세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예컨대 김수자 작가의 ‘보따리’(2005)는 난민 텐트에 난민들의 이름을 적어놓은 작품 옆에 전시됐으며, 작가의 제작의도인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삶의 이야기’와 달리 도큐멘타의 ‘이주’라는 주제에 억지로 끌어다 쓴 꼴이 됐다. 이신후 씨(건축과·11)는 “5년간 일어난 다양한 일들과 그에 대한 작업을 한 주제로 엮는 것 자체가 무리였던 것으로 보인다”며 “파르테논의 메인 작업과 여타 아테네에 관련된 작업은 진부한 방식의 시각적 차용처럼 보인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번 카셀 도큐멘타는 ‘아테네에서 배우다’라는 주제 아래 유럽이 당면한 이주와 다양성, 안식처 문제를 담은 여러 작업을 다뤘지만 감상자들로 하여금 그 주제들을 환기시키는 데에만 그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주제에 맞춰 별개의 작업이 전시됐을 뿐, 주제에 대한 깊은 사고로 이어지는 데까지는 기획 측면에서 한계가 있었던 듯하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5년 뒤의 카셀 도큐멘타를 기대해보자.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석고의 몸을 벗어낸 조각, 공공을 생각하다 - 조수지 기자

(사진⑥ 중앙의 청동 조각)
(사진⑦)
(사진⑧)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10년에 한 번씩 독일 북서쪽의 작은 대학도시 뮌스터 전체가 공공예술의 전시장이자 토론장이 되는 축제다. 1977년에 시작해 올해로 5회째를 맞은 이 무료 개방 축제는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공공미술 축제로, 많은 공공예술제의 모델이 돼왔다. 2016년 하반기부터 공개 토론회가 진행된 올해 축제는 6월 10일 개막해 10월 1일 막을 내렸다. ‘매혹적으로 늙은, 짜릿하게 젊은’이란 주제로 디지털 시대 소외된 몸을 탐구한다는 기획 하에 39점의 작품이 출품됐으며 도시 곳곳에 산발적으로 전시돼 보물찾기하듯 찾아나서야 했다.

◇현대미술에 대한 거부감, 새로운 현대미술의 나체를 만들다=이 유서 깊은 현대 공공미술 축제는 아이러니하게도 현대미술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계기로 탄생했다. 1977년 전후 도시 재건을 진행하던 주민들은 모더니즘의 거장 헨리 무어의 조각 작품(사진⑥ 중앙의 청동 조각)전시를 거부했다. 형체가 추상적인 모더니즘 작품의 특성이 당시의 보편적인 미감에 반했기 때문이다. 뮌스터 ‘베스트팔렌 미술관’ 관장 클라우스부만은 대중이 모더니즘 미술과 친숙해질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근현대 조각사를 망라하는 작품들을 뮌스터의 공공장소 곳곳에 전시한 대규모 야외조각전을 기획했다.

현대미술에 대한 거부에서 출발한 조각 축제는 새로운 현대미술의 면면을 긴 호흡으로 꾸준히 비춰내고 있다. 현대로 오면서 미술은 물감이나 석고 같은 매체에 갇히지 않고, 퍼포먼스와 행위가 벌어지는 장소 자체까지 포괄하기에 이르렀다.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역시 회차를 거듭하면서 석고상들을 대체하는 다양한 형태의 작품으로 채워졌다.

◇일상으로 스며든 공공 예술, 작품이 되는 마을=‘프로젝트’라는 단어가 암시하듯, 이 축제는 단순히 작가를 초청해 작품을 전시하는 수준을 넘어 일상적인 공간에 공공이 참여할 수 있는 작품을 고민한다. 도시의 다양한 지형과 사적에 대한 작가들의 해석은 작품의 독립적인 가치만큼이나 중요하다. 바그너와 드 부르카의 ‘Bye Bye Deutschland! Eine Lebensmelodie’(2017)는 뮌스터의 터줏대감 격인 뮤직펍을 통째로 빌려 독일의 70, 80년대를 관통했던 음악을 추적한 영상을 상영해주는 프로젝트고(사진⑦) 알렉산드라 피리치의 ‘Leaking Territories’(2017)는 오래된 옛 시청사 내부에서 퍼포머들이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뮌스터에서 발생한 다양한 사건에 대해 설명해주는 퍼포먼스다.

작가들의 해석을 바탕으로 이질감 없이 녹아든 작품은 마을을 구성하는 경관이 된다. 말 그대로 도시 전체가 미술작품이 되기 때문에 뮌스터로 들어선 행인은 단지 발품을 팔아 온종일 걷기만 해도 관람객이 될 수 있다. 2007년에 이어 올해도 방문한 아이작 씨는 “어떤 사람들은 쉼 없이 돌아다녀야 겨우 몇 작품을 볼 수 있는 이 프로젝트에 실망하기도 한다”며 “하지만 미술관에서 벗어나 예술과 하나 된 마을을 구석구석 구경하면서 마을 자체를 재발견하는 경험에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관람객들은 온종일 뮌스터의 도심과 외곽지역을 헤매면서 아기자기한 대학도시의 다양한 매력을 살펴볼 수 있다.

긴 호흡으로 작품을 구상하는 과정은 주민들의 삶 속에서 변화를 일궈내기도 했다. 아이제 에크만의 ‘On Water’(2017)는 뮌스터의 공업지대와 대학지대를 가르는 강 위를 건널 수 있도록 놓은 철골 다리다.(사진⑧) 거대한 구조물을 구상하고 실제 제작을 이행하면서 주민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토론을 거쳤다. 제레미 델러의 ‘To the Earth and It Will Tell You’(2007-2017)는 십 년에 걸쳐 50여 가정의 주민들과 시민 정원 기록을 진행한 대규모 프로젝트다. 십 년의 시간이 차곡차곡 쌓인 초록색 정원일지들은 그 자체로 훌륭한 지역적 사료가 됐다. 정원사 L씨는 “10년 동안 정원에도, 내 삶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며 “꾸준히 기록해 쌓인 자료 덕분에 시간을 쌓은 기분이다”고 소감을 말했다.

◇과거를 기억하며 동시대를 항해하는 프로젝트=긴 호흡으로 차근히 발전하는 프로젝트는 나이테를 쌓아 올리듯 지난 행사의 작품들을 철저히 관리한다. 매 행사 전시된 작품 중 일부는 시민들과 관의 토론을 바탕으로 ‘공공 컬렉션’으로 선정돼 철저히 관리된다. 예컨대 1977년 최초 개막 당시 전시된 저명한 미니멀리스트 도널드 저드의 작품 ‘Ohne Titel’(1976-77)은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현재까지도 강변을 지키고 있다.

과거에 굳건히 발 디딘 축제는 동시대를 따라잡으려는 노력 역시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이번 프로젝트엔 지난 10년간 눈부시게 발전한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한 비디오 아트가 다수 출품됐으며 관람객과 상호작용하는 인터렉티브 작품이 많았다. 그룹 ‘CAMP’의 ‘Matrix’(2017)는 뮌스터 공공극장의 야외 천장에 전깃줄을 달아 스위치를 누르면 주변 환경이 감응하게 만든 작품이다. 옆 교회 건물에서 종이 치자 놀란 메리엄 씨는 “내 작은 행위로 먼 곳의 사람들까지 감지할 수 있는 변화를 일으킨다는 점이 흥미롭다”고 소감을 말했다. 더불어 이번 축제에선 지도 어플리케이션 ‘SP17-Navi’를 개발해 비교적 원활히 장소를 찾을 수 있게 했다.

1987년부터 네 차례 프로젝트를 관람했다는 피츠제럴드 씨는 “10년마다 열리는 축제의 특성 상 매회 그동안 현대미술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며 “이번 전시에선 즉각적으로 상호 소통이 가능해진 디지털 매체를 많이 사용함으로써 지난 십 년의 변화를 담아내려 고심한 흔적이 묻어나왔다”고 총평했다. 긴 호흡으로 공공예술의 개념뿐만 아니라 예술의 개념까지 꾸준히 담아내는 축제, 10년 뒤엔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왜 독일인가?

- 조수지 기자

올해 현대미술계의 이목은 독일에 쏠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90년대 이후 독일은 뉴욕에 이은 새로운 현대미술의 배양지라 불리고 있다. 다양한 사회·정치적 배경으로 인해 독일로 이주한 예술가들이 형성한 독일 현대 미술은 다문화적인 미술 경향을 보인다. 신하순 교수(동양화과)는 “특히 베를린은 독일이 유럽문화의 중심지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저력을 보여준 곳”이라며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베를린의 문화공간은 완성 단계로 접어든다”고 평했다.

독일 현대미술은 나치즘과 독일의 만행에 대한 역사적 반성에서 출발했다. 세계대전 패전 후 침묵에 빠진 독일 미술계를 깨운 것은 70년대 전위적인 개념미술가 요셉 보이스다. 그는 독일의 뼈아픈 역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하며, 대형 화면 위로 대상을 강하게 표현하는 ‘신표현주의’(Neo-expressionism)를 통해 독일인이 행한 인종차별과 전쟁 부상자들의 핏자국이 그대로 드러나는 작품을 그렸다. 요셉 보이스를 중심으로 뒤셀도르프에 후학이 형성되면서 독일 미술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됐고, 이후 현대미술의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추상회화와 사진을 통해 전쟁을 언급하며 사회 문제에 대한 주의를 환기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 이후 독일에선 다문화적 경향의 미술이 본격적으로 배양되기 시작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곧 제2차 세계 대전 최후 잔재의 붕괴를 상징했다. 동독과 서독 사이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해지자,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로 실력을 쌓아온 동독의 미술가들이 서독으로 대거 이주하며 추상성을 강화시켜 나갔다. 이후 독일이 국가적 차원에서 마련한 아티스트에 대한 혜택은 세계 미술인들의 이주를 가속화했다. 미술대학 학비를 면제하고 아티스트 스튜디오를 무상 대여해주는 선진적인 제도를 마련한 것이다. 이렇게 모여든 미술인들은 자유로운 창작환경에서 다양성을 꽃피울 수 있었다. 서울대 미술관 ‘MoA’ 정신영 학예연구사는 “작가 개인이 상업성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색을 강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는 분위기가 비교적 지배적인 편”이라고 설명했다.

지면에 소개한 세 전시는 이같은 ‘독일 현대 미술’의 경향을 반영해 사회·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주제를 기획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은 고전 텍스트 『파우스트』를 재해석해 현대인의 분열된 모습을 잘 짜인 퍼포먼스로 풀어냈다. 이런 시도는 권위 있는 국민문학을 실체 없는 일시적 존재로 전복시킨 시도로 평가할 수도 있다. 정신영 학예연구사는 “여성작가가 계몽주의 백인남성의 권위를 뒤집는 시도”라고 평했다. 고대 도시 아테네를 이상향으로 설정한 카셀 도큐멘타는 유럽 최대 문제로 부상한 난민 문제에 주목했다. 난민이란 소재에서 출발해 그들의 이주가 최종적으로 지향할 다양성이라는 주제로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층위의 전시를 기획했다. 뮌스터의 경우 공공의 서사 위에서 지난 10년간 눈부신 발전을 이룬 디지털 시대의 상호작용에 집중했다. 이를 위해 시민과 긴밀히 협력해 긴 호흡으로 작품을 기획했고 관객과 작품이 직접 상호작용하는 인터렉티브 아트에 집중했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주제를 선정하다보니, 이를 다루는 과정에서 주제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다는 비판도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같은 시도를 통해 현대 미술이 동시대를 비추며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 바탕엔 역사에 대한 반성을 단단하게 딛고 선 ‘독일’이라는 상상적 공동체가 있다. 상업성에서 탈피해 역사와 사회에 대해 발언하려는 노력을 그치지 않는 예술가들의 움직임, 앞으로의 독일 현대미술이 기대되는 이유다.

글·사진: 이종건 전임기자 jonggu@snu.kr

이은희 전임기자 amon0726@snu.kr

조수지 기자 s4kribb@snu.kr

삽화: 이은희 전임기자 amon0726@snu.kr

레이아웃: 조수지 기자 s4kribb@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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