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주
조소과 석사과정

유럽의 3대 미술행사로 꼽히는 뮌스터프로젝트가 올해로 5번째를 맞이했다. 10년마다 한 번씩 개최되는 이 행사를 보기 위해 세계 많은 인파들이 독일의 작은 도시인 뮌스터를 찾는다. 이 세계적인 행사가 처음으로 개최된 배경은 다소 특이하다. 1974년, 뮌스터 시에서는 미국작가 조지 리키의 작품을 거액에 사들이려고 했다. 이에 시민들은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도시와 어울리지도 않는 작품을 사려한다며 비난했다. 당시 뮌스터 베스트팔렌 미술관장으로 있던 클라우스 부스만은 이 사태를 보고 공공미술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도를 높인다는 명목으로 다수의 큐레이터, 작가들을 섭외해 1977년 초대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개최한다. 이 프로젝트로 인해 미술인들의 큰 호응과 더불어 뮌스터의 시장경제가 활성화됐지만, 애당초 목적이었던 ‘공공미술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변화는 과연 잘 이루어졌는가’하는 물음표가 남는다.

언제부터인가 ‘공공미술’이라는 말이 ‘환경조형물’ ‘미술장식품’이란 말과 뒤섞여 쓰이면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존재가 됐다. 국제미술계에서 공공미술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부터다. 갤러리나 미술관에서 소수에 의해서만 향유되던 미술을 공공의 영역으로 끌어내고자 하는 시도가 ‘공공미술’이라는 용어로 불리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공공미술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된 계기는 1988년 열렸던 서울올림픽이다. 당시 정부는 올림픽을 위해 환경미화 차원에서 1%프로그램, 1%정책 등 외국의 공공미술 사례를 참고했고, 이른바 1%법(문화예술진흥법 제3장 11조 「건축물에 대한 미술장식」)을 제정함으로써 미술을 ‘전통적인 미술의 장’ 밖으로 방목시켰다. 법이 제정된 이후로 10년간 연 평균 300여 점의 작품들이 공공미술이라는 이름으로 거리에 등장했으며 연간 약 300억 원의 비용이 공공조형물에 투자됐다.(1997년 통계청 조사자료) 그렇게 들어가고 나오기를 반복한 공공조형물은 현재 서울시 안에만 4천여 점에 달한다.

이처럼 30여 년 동안 증식해온 공공미술이 우리 사회에서는 제대로 인식되고 있는가. 해외에서도 공공미술의 개념이 등장한지 50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공공미술의 ‘공공성’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나 전시장 바깥으로 나온 ‘미술’의 자질에 대한 논의나 비평이 정식으로 시도되고 있다. 공공미술이라는 매력적인 단어 뒤에 숨어있는 현실을 들여다본다면 우리에게도 이 주제에 대한 논의가 필수적일 것으로 보인다. 도심 속 건물들마다 한편에 자리하고 있는 알 수 없는 형태의 조형물들에게서 공공성을 찾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

공공미술이 ‘공공’의 의미를 고려하지 않은 ‘야외에 설치된 큰 조형물’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미술’을 행하는 주체가 이를 인지하고 변화시켜야 한다.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개최한 부스만의 공공미술에 대한 인식은 관객과 작가를 분리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1960년대 이전의 인식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곳곳에서도 공공미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기 위한 프로젝트들이 활발히 진행 중에 있다. 서울시에서 진행되고 있는 ‘시민참여 프로젝트’ ‘대학협력 공공미술 프로젝트’ 등이 그 사례다. 이러한 움직임들의 결론이 어떻게 도출될지는 알 수 없으나 앞선 오류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공공미술이 갖고 있는 본래의 의미와 목적을 항시 상기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