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예술인복지재단의 제3차 창작준비금 지원사업이 실행됐다. 4,000명을 대상으로 300만 원씩 정액으로 지급하는 사업으로, 창작 활동을 하는 예술인들이 생활고 등의 이유로 활동을 중단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이들을 지원하는 제도다. 하지만 예술인복지재단은 지원사업 실행 과정에서 납득하기 힘든 선발 기준과 미숙한 운영으로 되레 수많은 예술인을 분노케 했다.

제3차 창작준비금의 지원 신청은 지난 9월 15일 단 하루 동안 선착순으로 진행됐다. 선착순의 원칙도 납득하기 어렵지만, 올해 마지막 사업인 이유로 지원자가 몰릴 것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청 기간 자체가 단 7시간에 불과했기에 당연히 시스템 과부하로 인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런 우려는 곧 현실이 됐고, 지원자들은 모멸감 속에서 발만 동동 구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예술인복지재단 측은 ‘원활치 못한 시스템으로 인해 예술인분들께 실망을 안겨드려 죄송하다’고 성명서를 냈지만, 이런 대응은 오히려 접수 프로그램의 기술적인 오류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존재함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이번 사태는 현재의 창작준비금 지원사업이 ‘줄 세우기 복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예술인들은 3년째 실행되고 있는 창작준비금 지원사업이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에 대한 온전한 이해 없이 보여주기식으로 진행돼왔다고 지적한다. 한정된 재원으로 모든 예술인에게 충분한 복지를 제공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선정되고 지원되는 기준만은 합리적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있었는지조차 의문이다. 더불어 선착순 등의 납득하기 어려운 기준은 이 사업이 행정 편의주의적으로 운영돼왔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예술인들은 성명서를 통해, “예술인은 복지기관에서 나눠주는 저녁밥을 먹기 위해 줄 서 있는 사람들이 아니며 나아가 국가의 재정이 이같이 분배돼선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2011년 ‘예술인 복지법’이 제정되면서 우리나라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예술인의 복지 환경 개선에 대한 국가의 책임과 역할을 법제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예술인들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 또 그것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장치에 대한 충분한 공감과 이해가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예술인 창작지원금 사업의 구체적인 개선안을 마련함은 물론, 예술인의 사회적 지위와 복지를 보장하기 위한 공론화 작업이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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