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희 취재부장

선생님은 종종 “저출산 시대에 여학생들은 어머니가 될 존재기 때문에 귀하게 대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입을 뗐다. 그의 이야기는 “모성애는 평범한 언어로는 형용하기 어려운 신성한 어떤 것”이라는 주장을 거쳐 경험담에 비춘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우리 시대 격언’에 이르러 끝이 났다.

선생님은 우리가 여학생들을 소중한 존재로 여기겠다는 자신의 말에 공감하고 환영할 것이라 굳게 믿는 표정이었다. 그의 말을 해석해보자면, 선생님이 말한 ‘귀하게 대접받을 여학생들’은 “앞으로 엄마가 될 사람들”이기 때문에 살아갈 이유가 있다. 진정한 여성은 오직 앞으로 임신할 여성, 현재 임신할 수 있고 임신할 의지가 있는 여성, 임신 후 출산해 아이를 기르는 여성뿐이며 모두 어머니가 됐거나 될 것이라는 점에서 존재 의의를 갖는다.

그 말을 들은 건 몇 년 전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여성을 생명을 품는 그릇 정도로 취급하는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하철 공익광고에서는 “뱃속의 아이가 이 나라의 미래”이기 때문에 임산부를 배려하자는 말이 흘러나오고, 정부는 ‘저출산 극복 프로젝트’랍시고 지역별로 가임기 여성이 몇 명이나 되는지 전국 순위를 매긴다. 모두 저출산의 원인을 아이를 안 낳는 여성들에게서 찾고 있다. 아이를 낳지 않아도 따가운 시선을 받는데 요즘은 ‘맘충’이라는 단어까지 횡행한다. 아이를 낳아 길러도 ‘벌레’가 되는 시대에, 그 선생님을 탓하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1.17명, 올해는 1.03명으로 더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다들 저출산이 문제라고 한다. 앞으로 고령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생산 가능한 경제활동인구는 큰 폭으로 떨어져 마침내 한국이라는 나라가 없어지고 말 것이라는 한국인 소멸론까지 등장하고 있다. 저출산이 국가의 존립마저 좌우하다니 저출산 문제의 위력, 정말 무시무시하다.

그런데 정말 저출산은 문제인가? 맹랑한 상상을 해본다. 노동력이 귀해진 그곳에서는 경쟁적 입시 체제도, 비정규직도, 지금 같은 취업전쟁도 사라지지 않을까? 학연, 지연, 혈연이 무슨 대수랴. 노동력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소위 말하는 ‘스펙’이 될 것이다. 청년들이 더 이상 공무원 시험에만 매달리지 않아도 될 테고 인격까지 위계화하는 비정규직 차별도 줄어들 것이다. 사람이 적어지니 인구밀도도 낮아지고 환경문제도 덜 생겨 삶의 질이 높아지지 않을까. 경제활동 인구 감소가 우려된다고? 그렇다면 “한국 사람이 낳아야 한국 사람”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 문제를 겪고 있는 독일은 난민 포용 정책을 펼치고 있고 일본도 초고령사회의 대응책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거 받아들이고 있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는 출산을 미래 인력의 공급 수단으로 보고, 여성의 몸을 재생산의 도구로 취급하는 국가주의적 인식이 팽배해왔다. 여전히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 애국하는 것” “아이를 안 낳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등의 말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출산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지우는 문제는 물론, 저출산은 당연히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생각에도 물음을 던져본다.

저출산은 ‘여성’의 문제인가?

아니, 저출산은 정말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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