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프로 이어붙인 ‘얼굴들의 풍경’
테이프로 이어붙인 ‘얼굴들의 풍경’
  • 정명은 기자
  • 승인 2017.10.22 06: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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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테이프 아티스트’ 조윤진 씨를 만나다

박스테이프는 조각 난 것들을 이어 붙이거나 봉투, 박스 등을 단단히 매어 봉할 때 주로 쓰는 도구다.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이 박스테이프가 어떤 사람의 손끝에선 예술 작품이 된다. 바로 ‘테이프 아티스트’로 알려진 조윤진 씨의 이야기다. 인터뷰를 위해 방문한 조윤진 작가의 작업실엔 그간의 작품 활동을 보여주는 듯 형형색색의 테이프가 어지럽게 쌓여있었다. 이 테이프를 겹치고 구겨가며 독자적인 자신만의 작품 스타일을 만들어 온 조윤진 씨를 만나봤다.

지난 19일(목)부터 이달 말까지 이어지는 개인전 ‘얼굴의 풍경’에 전시될 작품들 앞에서 장난기 있게 웃어보이는 조윤진 씨.

모든 것이 ‘영감 투성이’라는 조윤진 씨. 그가 테이프를 작품의 도구로 선택하게 된 것은 일상적인 것들을 그만의 시선으로 새롭게 보는 그의 태도에서 비롯됐다. 그는 우연히 겹쳐진 테이프에서 다른 색깔이 생기는 것을 보고 미술 도구로서의 가능성을 봤다. 유년시절부터 평범하지 않은 것, 색다른 것을 좋아했다는 조윤진 씨에게 일상적이면서도 미술 도구로서 일반적이지 않은 테이프는 흥미로운 작품의 소재였다.

조윤진 씨는 이 테이프를 재료삼아 만나고 싶은 인물들을 그려왔다. 떨어져 있는 것을 하나로 이어주는 테이프처럼 만나고 싶지만 만날 수 없는 인물을 테이프로 작업하면서 그 인물과 자신을 이어왔다. 그가 그린 인물화의 기본적인 윤곽은 기존의 이미지를 기초로 하지만 그가 입힌 색은 작가가 새롭게 해석한 색채로 구성된다. 조윤진 씨는 “서양화가 엘리자베스 페이튼의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많이 받았다”며 “인물을 본인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그림체로 그 인물을 풀어낸 것이 인상 깊었다”라고 자신의 작품에 영감을 준 작가에 대해 소개하기도 했다.

유명인사의 인물화라는 익숙한 이미지를 테이프라는 독특한 재료로 그린 그의 작품은 친근하면서도 새롭다. 한정적인 색을 가진 테이프라는 재료로 인물을 표현하기 때문에 기존의 인물화와는 다른 색다른 인물화가 만들어진다. 그는 “테이프도 충분히 물감과 같은 미술 재료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테이프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파란색이 없다면 빨간색을 써서 파란색을 표현하라’는 피카소의 말에 힌트를 얻었다는 그는 테이프를 여러 겹으로 붙여가며 원하는 색을 찾아냈다. 조윤진 씨는 “똑같이 두 가지 색의 테이프를 겹쳐 그리더라도 어느 것을 먼저 붙였는지에 따라 최종적으로 보이는 색이 다르다”며 그가 찾은 테이프의 다채로움에 대해 설명했다. 물감처럼 색이 다양하지 않지만 테이프를 겹쳐 붙이는 순서와 색의 배치에 따라 다양한 색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조윤진 씨는 “한정적인 색을 가진 테이프라는 재료가 작품 활동을 하는것에 장애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이것이 되려 매력적으로 느껴졌다”며 개구지게 웃어보였다.

Matilda, 보드에 박스테이프, 54 X 39cm, 2014 (사진제공: 조윤진 씨)

조윤진 씨는 미술이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림에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는 비평가들의 글로 인해 대중들에게 미술은 고급스럽고 어려운 것이라는 편견이 생겼다”며 “대중은 쉽게 와 닿지 않는 것을 멀리한다”고 현재 순수미술이 대중에게 외면 받는 이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우리 일상의 모든 것이 시각디자인이기에 모든 것은 영감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이를 누구나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윤진 씨는 미술에 대한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자신이 운영하는 화실의 수강생들에게 미술을 가르친다. 그의 미술 수업엔 그림에 대한 비평보다는 과정에 대한 칭찬이, 기법에 대한 설명보다는 자신이 느끼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주가 된다. 조윤진 씨는 “화실의 수강생들을 동료처럼 생각한다”며 “가르침을 주는 것을 넘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영감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테이프 아티스트라는 확실한 입지를 다진 그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자신에 대한 확신과 반복적인 연습의 결과다. 조윤진 씨는 “미대를 졸업하면 바로 화가가 될 줄 알았다”며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몰라 오랫동안 방황하기도 했다”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다. 이어 그는 “시간을 들여 완성한 작품을 아무도 찾아주지 않을까 불안감하기도 했다”며 “그런 불안감이 자신을 채찍질해 그림을 거르는 날이 없이 꾸준히 연습하고 고민했다”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그림이 잘 안 될 때에는 선이라도 하루에 하나씩 긋는 연습을 하며, 조윤진 씨는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위해 지금까지 계속 정진해온 것이다.

그는 지금도 계속해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있다. 조윤진 씨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자신을 ‘테이프 작가’에 국한시키지 말아달라는 당부의 말을 전했다. 그는 “연필로 작업하는 작가를 소묘작가라고 소개하지 않듯 자신도 재료만으로 설명되지 않기를 원한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조윤진 씨는 “테이프는 재료의 한 종류이므로 더욱 흥미로운 재료를 만난다면 그것으로 작업할 것”이라 말해 언제든지 새로운 변화를 시도할 의지를 내보였다. 화가 조윤진의 끊임없는 도전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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