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웹콘텐츠 플랫폼 생태계를 해부하다

우리는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2016)을 보며 주인공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고, 웹툰 캐릭터 ‘레바’로 만들어진 카카오톡 이모티콘으로 친구의 메시지에 답장한다. 이처럼 웹툰과 웹소설은 우리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하지만 이런 웹콘텐츠 시장의 어두운 면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이다. ‘레진 웹소설 서비스 종료’ ‘레진 코믹스 지각비’ ‘폭스툰 명절 휴재 의무화’ 등의 문제가 잇따라 공론화되면서 웹콘텐츠 플랫폼 생태계의 기형적 구조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웹콘텐츠 플랫폼의 불어난 몸집

웹콘텐츠가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되면서 시장 규모는 빠른 속도로 확대됐다. 현재 웹툰 작가로 활동 중인 한국웹툰작가협회 이종범 이사는 “기본적으로 만화나 장르소설은 진입 장벽이 낮아 흥미를 끌기 쉽다”며 “웹툰과 웹소설을 주축으로 하는 웹콘텐츠 시장은 이런 만화와 장르소설의 이점을 등에 업고 단기간에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고 시장의 성장 원인을 설명했다. 여기에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접근성도 더욱 높아진 것도 웹콘텐츠 시장의 성장을 가속화했다. KT경영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웹소설 시장 규모는 800억 원을 넘어섰고, 한국콘텐츠진흥원은 국내 웹툰 시장 매출이 2020년까지 1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런 콘텐츠 시장 자체의 인기는 웹콘텐츠 플랫폼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현재 대부분의 웹콘텐츠는 플랫폼을 통해 유통되고 있다. 여러 사이트를 들어가지 않고도 한 번에 다양한 작품들을 접할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소비자들은 플랫폼을 애용하게 됐고, 플랫폼은 작가들의 등용문이자 선망의 대상이 됐다. 두꺼운 독자층을 형성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플랫폼 내에서 홍보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작가들은 자신의 경제 활동을 위해 플랫폼에 진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 결과 플랫폼이 콘텐츠를 ‘거느리는’ 형태로 변화하게 됐다.

웹시장 '확대' 창작자에 대한 '학대로'

콘텐츠 그 자체보다 전문 플랫폼의 영향력이 더 커지면서 작가들의 가장 큰 고충은 인세 및 임금 지급 문제다. 레진의 경우, 연재 계약을 한 작가는 플랫폼으로부터 평균적으로 열다섯 편 분량의 세이브 원고*를 요구받는다. 세이브 원고가 없다면 작가가 무리한 마감 일정을 소화해야 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플랫폼 쪽에서는 세이브 원고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준비하는 동안 선인세가 지급되지 않고 있다. 세이브 원고를 작성하는 일 또한 창작 노동의 일환이고,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임금 미지급’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뿐만 아니라 연재를 시작한 다음 달이 돼서야 선인세를 받을 수 있어 작가는 일정 기간 무급으로 일하게 된다. 회사 상황에 따라 계약서의 선인세 지급일시와 실제 지급 일시가 일치하지 않거나 분납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작가들은 선인세가 완불될 때까지 불안해해야 하는 실정이다.

작품이 유통되는 플랫폼에서 창작자를 배제하는 업무 운영 방식 또한 문제가 있다. 지난 추석 연휴 동안 웹툰 플랫폼 ‘폭스툰’은 상여금을 지급하고 무급 휴재를 진행하는 형식으로 ‘명절 의무 휴가제’를 실시했다. 문제는 작가들과의 논의 없이 이를 통보했으며 작가들이 휴재 여부를 선택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비록 좋은 취지로 시작된 일이었으나 휴재기간 동안 휴가비로 지급되는 금액이 원고료의 절반도 되지 않아 몇몇 작가들에겐 경제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지난 6월에 있었던 ‘코미카’ 강제 연재 중단, 지난 9월 레진의 웹소설 서비스 종료 또한 일방적인 통보로 이뤄졌다. 당시 활동 중이었던 웹소설 작가 A씨는 “강제 계약해지를 당한 당사자인 내가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이 너무 절망스러웠다”며 “정신이 타들어 가는 기분에 잠조차 잘 수 없었다”고 그 당시의 심정을 전했다.

또한, 거대해진 웹콘텐츠 플랫폼이 작가들의 등용문이 되면서 플랫폼 진입을 원하는 작가 지망생들의 노동력이 착취되고 있다. 네이버 웹툰의 ‘베스트 도전 만화’나 웹소설 플랫폼 조아라의 ‘베스트 작품’과 같은 유입률이 높은 플랫폼엔 작가 지망생들의 작품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그들은 언젠가는 정식 작가로 스카우트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며 작품 연재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식 연재 중인 만화와 소설에 견주어도 손색없을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이를 보기 위해 많은 소비자가 모여들면서 해당 플랫폼은 수익을 올리게 됐다. 그러나 정작 창작자는 정식 작가 데뷔도, 창작 노동에 대한 경제적인 수입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의 근본적인 원인은 플랫폼과 창작자의 계약 환경이 공정하지 않고, 창작자가 ‘을’로서만 취급된다는 것이다. 웹콘텐츠 플랫폼의 구조상 회사에 불만을 제기하기 쉽지 않다. 작가 A씨는 “플랫폼이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해도 작가가 법적으로 대응하기 힘들다”며 “사 측이 얼마든지 계약을 파기할 수 있어 불안했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또 다른 웹소설 작가 B씨는 “작가의 작품을 폄하하는 폭언을 남발해 작가에게 돌아갈 수익 비율을 깎는 불공정 계약을 강요해도 생계가 걸린 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침묵해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탄식하며 말했다.

여기에 계약서에 명시되는 ‘계약서 발설 금지 조항’의 악용이 더해지면서 작가들은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됐다. 이 조항의 본래 목적은 회사의 영업 비밀 누출을 막기 위함이다. 다만 회사의 영업과 직접 연관돼 있지 않되 법률적으로 도움을 받거나 공익을 위해서 알릴 수 있는 정보에 한해서는 이 조항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작가가 이 사실을 모르거나 혼자 그 상황을 판단하기 어렵다면 자신이 받은 불이익을 주변에 알리는 것조차 힘든 게 현실이다. 게다가 플랫폼의 눈 밖에 났다간 작품이 프로모션과 이벤트에서 제외되기도 한다. 작가들은 이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플랫폼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 일반적으로 조회수는 작가들의 수입으로 이어지는데, 작품 광고를 위한 팝업창이나 애플리케이션 알림, 홈페이지 내의 홍보 배너, 단기 할인 행사와 같은 프로모션 유무에 따라 작품 조회수가 작게는 두세 배에서 크게는 백 배 이상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B씨는 “현재 작가들의 업무환경은 근로 노동법이 없었던 시기의 노동자와 차이가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며 “이는 작가들의 생존과도 연관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금처럼 작가를 소모품처럼 사용하는 사업형태가 지속된다면 머지않아 한국 콘텐츠 산업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을 거라 생각된다”고 우려했다.


웹콘텐츠 시장 생태계가 개선되려면

창작자와 플랫폼 간의 갈등이 계속 이어진다면 웹콘텐츠 시장은 내리막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시장 사양화는 어느 날 갑자기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근래에 많은 사람이 큰 성공을 이룬 웹콘텐츠 작가들의 이야기를 보고 작가가 되길 희망하며 콘텐츠 자체의 공급은 커졌다. 하지만 거대 플랫폼과 창작자 사이의 정보 비대칭이 계속되고, 창작자의 노동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콘텐츠의 공급은 줄어들게 돼 시장은 내리막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 이종범 이사는 “이 과정에서 작가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다른 진로로 빠지게 되고, 기존의 작가들은 생계를 위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를 집중적으로 생산할 것”이라고 웹콘텐츠 다양성의 저하를 우려했다. 결국엔 대중들은 다양성을 잃은 시장을 외면하고, 점점 콘텐츠에 대한 지원조차 줄어들어 시장은 사각지대로 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종범 이사는 “현재 웹툰을 비롯한 웹콘텐츠 산업은 세계적으로 관심 받고 있는 분야”라며 “만약 창작자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 지속한다면 끓는 물 안의 개구리처럼 서서히 국제 시장에서도 밀려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웹콘텐츠 시장의 열악한 상황들을 개선하기 위해 여러 해결책이 강구되고 있다. 창작자 중심의 블로그 플랫폼인 ‘포스타입’과 같은 디지털 콘텐츠 오픈 마켓이 대표적인 대안이다. 해당 웹사이트에 창작자가 직접 가격을 책정해 블로그에 발행한 작품을 소비자는 ‘직거래’하게 되고, 플랫폼은 수수료로 수익을 내는 방식이다. 애니메이션 스트리밍 사이트인 ‘라프텔’도 웹툰과 만화 제공 서비스에 있어서 이와 같은 방식을 계획 중에 있다. 대표 김범준 씨는 “수수료 이외에 해외 진출에서의 번역이나 마케팅 부문에서 플랫폼이 수입을 낼 수 있다”며 창작자와 플랫폼이 콘텐츠를 통한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비즈니스 파트너로 함께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런 움직임과 더불어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웹콘텐츠 창작자에 대한 법적 보호가 필수적이다. 업계 당사자, 소비자, 정부 등 각계각층이 불공정 계약이 불가능한 제도를 마련하여 법적으로 창작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해야 하고 작가가 플랫폼에 있어서 ‘을’의 관계가 아닌 사업 파트너라는 점을 상기시켜야 한다. 이종범 이사는 “작가들이 노동 환경에 대해 자유롭게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며 “이 기구가 플랫폼에 대한 강력한 견제책으로 기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아가 해당 단체는 창작자와 플랫폼 사이의 분쟁이 발생할 경우 그들의 법적 대응을 적극적으로 돕고, 작가들 간의 의견 및 정보 공유가 가능해지도록 발전해야 한다.

이융희 문화연구자는 “연재를 하게 되면 평균적으로 매일 5~6시간 정도씩 작업에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며 “결국 웹소설이나 웹툰 작가를 전업으로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 창작 활동이 유희나 취미 정도로 다뤄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작가 B씨는 “작가란 직업은 회사와 개인 간의 고용 관계가 아닌 저작물을 조건으로 계약하는 프리랜서기 때문에 현재 많은 부분에서 법적 보호를 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며 “노동자로서의 생명권, 수면권 등을 포함한 건강권을 보장받아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복지와 제제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웹콘텐츠는 누군가에겐 단순한 ‘유희’지만 누군가에겐 ‘생계’며, 시장의 핵심은 ‘플랫폼’이 아닌 ‘콘텐츠’다. 최근에 잇따른 논란들을 계기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건 창작자들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그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해 줄 수 있는 웹콘텐츠 시장이 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세이브 원고: 예기치 못할 상황을 대비해 미리 작성해 두는 원고




삽화: 박진희 기자 jinyhere@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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