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대 문예창작동아리 '창문' 수필 기고

무릎의 굽힘은 번번이 저릿하고 배낭끈은 어깨를 아래로 밀어냈다. 지그시, 나를 둘러싼 샛말간 것들이 점점 애꿎고 무거운 듯했지만 이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들어 올린 발을 나의 걸음나비로 옮겨 내려놓는 이 일을 앞으로 얼마나 이어나가게 될까. 용산전망대 몇 미터 전방, 군데군데 표지판은 꾸준히 명랑한 인사를 건네주었고 나는 겸연쩍게 산모롱이를 돌았다. 고지가 정말로 다가오고 있었다. 전망대에서의 풍경을 마주한 이들의 소란이 조금씩 느껴지더니 어느 한 차례의 깊은 날숨 후에는 나도 비로소 작은 소란이었다. 강물의 합류와 잠잠히 퇴적한 둥긂을 바라보다 질끈, 발걸음을 돌렸다. 아까 닿았던 나무들은 비슷한 표정으로 수군수군하고 있었고 다만 왼쪽이 오른쪽이 되어 닿아왔다. 이미 걸쳐본 돌부리와 벤치를 알아차리고 왠지 새삼스러운 갈대의 흔들림을 지나 금세 습지의 옅은 어귀에 다다랐다. 전망대와 출입구 사이가 이렇게 가까웠나 싶을 만큼 돌아오는 길은 짧았다. 이렇게

가는 길보다 오는 길이 짧았던 적이 있다. 실은 거의 늘 그랬다. 향방만 바뀌었을 뿐 거리도 같고 모양도 같은 길인데, 갈 때보다 올 때 훨씬 짧은 듯한 느낌. 어딘가에 다녀올 때 받게 되는 이 느낌은 비단 나뿐만의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이곳저곳으로 오가며 부풀린 물방울들의 배죽한 틈으로 토로하던 것 중 하나도 바로 이 느낌이었다. 나는 가만가만 생각을 틔워보았다. 가는 길이 오는 길보다 길고 오는 길이 가는 길보다 짧다. 왜? 가는 길은 오르막이고 오는 길은 내리막이어서?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 순천만습지의 용산전망대로 통하는 길도 오르막, 내리막, 평지가 섞여 있었다. 그럼, 가는 길은 처음 경험하는 길이고 오는 길은 이미 경험해본 길이어서? 혹시 올 때는 길이 병풍처럼 접히는 것이 아닐까? 덜 힘들게 해주려고 말이지. 잠시 엉뚱한 상상에 빠지다 다시 지긋하게 고민을 하다, 마침내 나는 가는 일과 오는 일 그 자체의 어디쯤에 이른다, 문득.

가는 길에는 기다림이 있고 오는 길에는 그리움이 있다. 기다리느라 가는 길이 길어지고 그리워서 오는 길이 짧아진다. 길이 기다랗도록 기다리고 길이 짤따랗도록 그립다. 길어지는 길 위에서 기다리고 짧아지는 길 위에서 그립다. 그리워한다.

간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낯선 곳으로 향하는 것이다. 얼마간의 설렘과 두려움과 기꺼움과 서러움을 함께 품는 것이다. 스르르, 혹은 스르르를 감춘 채 불쑥 마음을 먹고 내디딘 첫발로 인해 한 발짝 한 발짝을 잇는 것이다. 걸음마다 익숙지 않아 서투른 것이다. 설어서 섧기도 한 것이다. 닿고자 하는 가장 낯선 곳에 끝내 닿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어찌할 수 없는 나직한 간절함으로 발을 옮기며 그곳의 결을 상상하는 것이다. 때로 일렁일렁한 볕을 쪼이고 때로 멀거니 하얗고 뭉실한 구름을 맞는 것이다. 그곳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온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보다 익숙한 곳을 향해 되도는 것이다. 얼마간의 안도감과 아쉬움과 정다움과 섭섭함을 함께 안는 것이다. 걸음마다 제법 낯익지만 어딘가는 낯설어져 흠칫하기도 하는 것이다. 처음 닿아본 곳의 내음이 여기에도 적셔지고 있음을 느끼고 손을 조심스레 모으는 것이다. 닿아낸 먼 곳과 닿을 수 없던 더 먼 곳을 기억하는 것이다. 뭉뚝한 돌멩이를 마주하고 둥그스름한 우물물에 진 그늘을 긷는 것이다. 그곳이 그리운 것이다. 그리하여

여운이다. 그 가는 긴 길과 그 오는 짧은 길에 이어지는, 기다림과 그리움이 함께 지어낸 가장 긴 길이다. 걸음을 떼기로 처음 마음먹었을 즈음부터 조촘조촘 움터 자라고 있었을 길이다. 아무도 모르는 동안에도 나를 사붓 감싸주고 있었을 길이다. 앞과 뒤의 온 길과 머뭇거림도 머금었기에 끝나지 않을 길이다. 결말에 힘을 주는 ‘그곳에’보다 향방과 과정을 비추는 ‘그곳으로’를 좋아하는 길이다. 쉬이 보이거나 들리지 않는 무엇도 바람과 함께 나지막이 담기기에, 지나치지 못한 꽃무릇과 강아지풀도 자라는 길이다. 끝나지 않고 싶은, 끝날 수도 없는 길이다. 어쩌면

기다림과 그리움은 한 몸이다. 여운을 이루고 여운에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아린 몸으로서, 기다림은 그리움이 되고 그리움은 다시 기다림이 된다. 이러한 감정의 결을 따르는 가는 길과 오는 길도 한 몸이다. 오는 일도 일종의 가는 일이다. 오는 일은 원래 있었던 곳으로 되도는 일이지만, 앞서 어떤 낯선 곳에 닿은 채 그곳을 그리워하며 되도는 것이므로. 원래 있었던 곳이 나에게는 어떻게든 이전과 다른 새로운 곳, 낯익으면서도 낯선 곳이 되므로. 가는 일도 일종의 오는 일이다. 가고자 한 곳에 다다랐을 때 그곳이 마냥 낯설기만 하기보다 어딘가 낯익지 않은가. 이는 그곳을 기다리며 그곳까지 걸어간 시간으로 인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낯섦과 낯익음 또한 서로에게 맞물려 한 몸이다. 살면서 마주하는 많은 것들은 안쪽과 바깥쪽에서 이 둘을 함께 지닌다. 마음으로, 보아내고 들어내면 낯익고 낯설어서 찍고 싶은 사진과 쓰고 싶은 시가 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익숙해진 어떤 것의 낯섦은 보아내기 어렵다.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다만 함부로 내달리면 참으로 어렵다. 무뎌진다. 남아진 낯익음은 당연함과 혼동된다. 이 세상에 불가피함은 있어도 당연함은 없는데도. 다행스레 이것을 기억하고자 애쓰는 채, 그렇게 나는

낯설고도 낯익은 곳으로 간다. 낯익고도 낯선 곳으로 온다. 가고 오면서 생각한다. 산꼭대기의 우뚝한 전망대나 먼 타국의 자그마한 여관 같이 비단 흔히 어떤 장소라고 여겨지는 곳만 ‘곳’인 것은 아니라고. 이를테면 당신, 도 ‘곳’이라고. 당신과 그 언덕에 가고 싶어요, 라는 말은, 단순히 당신을 동반하여 그 언덕에 가고 싶다는 의미 너머 그 언덕뿐만 아니라 당신이라는 곳에도 가고 싶다는 의미일 수 있다고. 달과 강물 소리로 당신에게 갈게, 라고 당신도 말해준 적 있지 않은가. 그렇게 당신의 당신이 된 나, 역시 ‘곳’이었다. 그리고

곳은 곧 하나의 세상이었다. 잠잠하다가도 바닥이 팬 자리에서 물이 빙빙 돌았고 그 사이로 무엇이 잠겨 들었는지 다시 잠잠해졌다. 낮고 자욱한 안개 속 여린 물수제비가 있었다. 어느 새벽녘은 안쓰러워 천둥 번개 우르릉거렸지만 이내 따뜻한 볕뉘가 번졌다. 시름겨운 포옹이 스며들었다. 그런 하나의 세상, 듬쑥하고 먹먹한 세상이었다. 가고 옴으로써 세상과 세상은 천천히 닿아지고 있었다. 흙 묻은 어귀가 닳아지고 있었다. 세상과 세상이 닮아지고 있었다. 닮아져 낯익고도 낯설어지고 있었다. 계절이 옮아가는 속도로, 고맙고 미안한 손금들이 겹쳐진 세상은 그렇게 오래가 되어 있었다. 그렁그렁 오랜 길, 끝나지 않는 길이 되어 있었다. 다시,

간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그곳의 으스스한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기다림으로 인해 낯설면서 낯익어지는 것이다. 나라는 세상과 그 세상이 그윽이 맞닿아 스스스 맞물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간다는 것이다. 천천하게, 당신이라는 곳, 깊숙하여 어두운 그 끝내 모를 세상으로 한 발짝 한 발짝을 내딛는 것이다. 스스스 당신 세상과 나의 세상이 마침내는 여운으로 된 한 세상, 여백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함께

사랑하는 시인은,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내 안으로 들어오면 나의 머리와 가슴도, 낯익고 낯선 곳과 곳, 세상과 세상이 되어 있는 것이다. 내가 당신이 되어 있기도 한 것이다. 생각하거나 느끼는 바도 곳이어서 세상이어서 끝이 없기도 한 것이다. 늘 그 사이의 길에서 발걸음을 하고 있음을, 끝나지 않을 길의 어디쯤에서 깨닫는 것이다. 전망대에 다녀와서야 가는 길과 오는 길에 관한 생각이 시작된 것이 아니었음을. 실은 아득해진 날의 첫, 한 발짝에서부터 내내 생각하고 있었음을. 그 오랜 세상에서, 당신과, 생각하고 있었음을. 그러니 당신,

사늘한 바람결이 처음 내어준 길을 기억한다. 묵직한 기다림이 눕고 눕다가 새어 나와 지은 길이었다. 강과 강이 묵묵한 소용돌이를 이루며 만났고 작은 새를 떠나보낸 나무가 시린 가지를 뻗고 있었다. 그로부터 차근차근 걸어온 오래된 오늘, 내 손에서 당신 내가 난다. 간다. 온다. 다시 간다. 그리하여, 당신으로.

박소연
국어국문학과·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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