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문학 신간 | 공지영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장르문학이란 대개 장르소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한국에서는 순수문학의 대척점에 놓인 상업소설이나 대중소설을 일컫는 말로도 쓰인다. 이번 학기 「책」면에선 올해 신간을 발표한 대표적인 장르문학 작가와 작품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그 마지막 타자로 공지영의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를 선정했다.

소설가 공지영에 대해

공지영 작가는 한국 대중문학의 빛나는 별이다. 소위 ‘문단에서 인정받는 소설’을 쓰는 작가는 아니지만 흡입력 있는 문체와 독자의 흥미를 자극하는 서사 구성은 그의 이름을 문학사에 새겨놓았다. 그간 숱한 논란에도 공지영의 소설이 여전히 대중에게서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공 작가는 1988년 『동트는 새벽』으로 등단해 지금까지 『도가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비롯해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남겼다. 신경숙, 은희경과 더불어 90년대를 대표했던 3대 여성작가였던 그는 현재 자타공인 한국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작가 중 하나다.

동화 같은 단편으로 새로운 걸음을 내딛다

공지영 작가가 올해 4월, 『별들의 들판』 이후 13년 만에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라는 단편소설집을 출간했다. 소설집은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책에는 신작 산문을 비롯해 2000년 이후 ‘21세기 문학상’ ‘한국 소설 문학상’ ‘이상 문학상’ 등을 수상한 작품이 실려 있다. 장편소설로 유명한 작가가 단편소설집을 내는 것은 이색적이다. 이에 대해 공 작가는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책을 묶으며 단편의 우화적, 동화적 매력을 발견했다”며 “앞으로도 동화와 단편소설을 더 쓰고 싶다”고 밝혔다.

표제작인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는 재벌 가문 손녀가 겪은 기이한 일들을 그리고 있다. 강남에 건물을 여러 채 소유한 할머니 아래서 가족들은 수금하거나 땅을 보러 다니며 호화로운 삶을 살아간다. 그들은 할머니가 위독해지자 유산을 물려받기 위해 경쟁적으로 효도하기 시작한다. 이 때 판타지적 요소가 첨가되며 이야기는 흥미로운 방향으로 흘러간다. 노인의 임종이 임박할 무렵,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람 혹은 동물이 사망한다. 젊은 생명의 죽음 이후 노인은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살아난다. 주인공인 ‘나’는 이 일이 반복될 때마다 할머니의 입술이 미세하게 주문을 외우고 있음을 목격한다. 결국 ‘나’는 누군가의 죽음이 할머니의 부활과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음을 깨닫는다.

동화에 드러나는 현실 참여적 색채

공 작가는 소설로 현실의 부조리함을 고발해왔다.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의 여성의 삶(『봉순이 언니』)과 아동 성폭력 문제(『도가니』)를 비롯해 현실 사회 속 어둠을 지적하는 문학경향을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에서도 쉬이 읽어낼 수 있다. 노인이 젊은 생명을 희생해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는 모습은 현실에서 기득권 세력이 권력을 유지하는 방식과 닮아있다. 노인은 어느 밤 ‘나’와 청각장애인인 ‘나’의 여동생에게 어릴 적 가난 때문에 새끼를 막 낳은 고양이를 잡아먹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는 가난을 겪지 않은 현세대가 행복함을 알고 효도해야 하는 것을 강조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젊은 세대가 힘들게 살았던 윗세대를 위해 마땅히 희생해야 한다는 기성세대의 생각을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더욱이 고양이와 할머니 모두 굶주린 상황에서 힘이 약한 고양이가 잡아먹히고 노인이 생명을 이어가는 모습에서 갑에게 생기를 빨리는 을의 모습을 우화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이 작품 속에는 최근 한국사회의 변화도 잘 녹아있다.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속 할머니는 외할머니다. 이는 친할머니는 할머니, 외할머니는 외할머니로 구분해서 지칭했던 과거와 달리 가부장적 사회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는 한국 사회를 투영한다. 이와 더불어 부유층을 재벌 기업가문이 아닌 ‘강남 건물주’로 설정한 것도 흥미롭다. 과거 부유층의 전형적인 표상은 대기업 가문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부동산 소유 여부가 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됐다. 공 작가는 소설 속에서 변화된 현실인식을 날카롭게 묘사하고 있다.

그의 문학이 남기는 아쉬움

공지영의 새로운 소설에는 아쉬운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문단에서 노상 지적받는 감정의 과잉 문제는 여전히 극복되지 못했다. 서울에서도, 고향에서도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순례’의 이야기인 「부활 무렵」은 차라리 신파에 가깝다. 「맨발로 글목을 돌다」의 주인공인 번역가가 “너는 왜 이 책을 썼니?”라는 자아의 질문에 “대답할 새도 없이 입술이 뒤틀리며 눈물을 쏟아”내는 모습은 작위적이기도하다. 뿐만 아니라 작품 속 등장하는 어린 소녀의 목소리를 실감나게 살리지 못한 점도 아쉽다.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는 공부는 뒷전인 부잣집 소녀의 회고록이라기엔 과하게 현학적이며 낡고 전형적인 문체로 쓰였다. 여고생이 할머니를 보며 <전설의 고향>을 떠올리고 돈에 맺힌 ‘포한(抱恨)’을 말하는 부분에서 독자는 이 모든 이야기가 현실이 아닌 허구임을 명백히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지영은 여전히 독자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작가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위로가 필요하다. 그는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물의 고통을 소설로 풀어내 사람들에게 잔잔한 공감과 위안을 선사한다. 그의 작품이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결정적인 이유다. 공지영 작가의 장점이 빛바래지 않는다면 그와 그의 문학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우리 곁에서 숨 쉬며 존재할 것이다.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공지영
해냄
243쪽
12,000원









삽화: 강세령 기자

tomato94@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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