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를 만나다 | 최윤영 교수 『민족의 통일과 다문화 사회의 갈등』

한국에서는 한민족의 분단과 한민족통일의 필연성에 대한 교육이 꾸준히 이뤄져왔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는 북핵 위협 속에서도 민족의 동질성을 믿고 통일을 꿈꾼다. 한편으로는 분단에서 비롯된 격차가 통일 이후 다양한 사회갈등을 초래할 것이라 예상한다. 하지만 대개 한민족의 연대로 통합된 한국의 모습을 그린다. 그러나 과연 통일이 한민족만의 것일까? 최윤영 교수(독어독문학과)는 통일에 앞서 한국 사회의 다문화에 대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민족의 통일과 다문화사회의 갈등』을 통해 주장한다.

지난 10년 간 최 교수는 독일 이민 작가를 연구했다. 그는 400여 명의 작가를 연구하면서 통일에 관한 일반적인 견해와 다른 경험을 발견했다. 보통 독일 통일은 ‘동독의 고난의 수레’라고 표현된다. 하지만 최 교수는 “실제로는 독일 내 이주민과 외국인노동자가 더 큰 고난을 겪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간 연구한 작품들을 정리해 통일과 다문화사회의 갈등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며 “독문학을 연구하는 한국인으로서 이주민과 같은 ‘타자’의 시각으로 통일 후 사회를 다시 바라볼 수 있었다”고 밝혔다.

독일은 통일 이후 동·서독 간 사회·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정부의 다양한 정책과 논의 가운데 국민 통합을 위한 민족적 정체성 정립이 해결책으로 제시됐다. 나치 시대에 대한 반성으로 언급이 기피됐던 민족성 담론이 통일과 함께 재등장한 것이다. 이는 동독과 서독간의 많은 갈등에도 불구하고 둘을 봉합하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독일 내 이주민들은 완벽한 타자가 됐다. 통일 후 유예기간이 지나고 구동독의 경제가 급속하게 쇠퇴하면서 동독 청년들의 불만은 이주민에게 표출됐다. 서독과의 경제적 차이로 2등 국민의 열등감을 갖던 이들은 상대적 약자인 이주민들을 경제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 결과 동독 지역이었던 호이어스베르, 로스토크 등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대규모 테러가 자행됐다.

하지만 최 교수는 당시 동독의 경우 계약노동자가 모두 귀국했기에 외국인이 매우 드물었다는 점을 언급했다. 그는 “‘외국인 없는 외국인 혐오’가 이뤄졌다”며 “외국인의 유무와 관계없이 사회갈등의 표출구로 외국인을 혐오한 것”이라고 말했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도입으로 사회적 양극화가 가속되자 외국인 혐오는 서독으로 확장됐다. 서독 지역인 묄른과 졸링겐에서도 외국인 대상 테러가 일어났다. 최 교수는 “당시 독일 사회 내부의 문제가 외국인, 이주민에게 투사됐고 이는 외국인 혐오 범죄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최윤영 교수는 외국인 핍박의 역사를 문학에서 찾았다. 최 교수가 다룬 이민문학은 이주민들의 자기체험담에서 비롯된 ‘당사자 문학’이다. 작품 속에서 다양한 국가 출신의 작가들은 소수집단으로서 독일에서 받는 차별과 애환을 표현했다. 특히 그는 통일 이후에 이주민들이 겪은 예상치 못한 차별을 담은 작품에 주목했다.

최 교수는 통일 이후 이주노동자가 느낀 ‘새로운 낯섦’의 문제를 묘사한 작가 중 하나로 홍 구르스트를 꼽았다. 기존에 동독은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을 ‘따뜻한 사회주의 형제애’로 감쌌다. 그러나 통일 후 동독은 독일민족이 아닌 외국인을 완전한 이방인으로 취급했다. 예상치 못한 차별에 회의를 느낀 구르스트는 이 감정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그는 그의 소설 『모루, 작은 코끼리』를 통해 독일 통일에서 이주민들이 겪은 자아상과 타자상의 마찰을 다뤘다. 소설 속 주인공은 베트남 출신이지만 독일 사회에 동화돼 자신이 독일의 구성원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외국인을 혐오하는 극우주의 청년들에게 위협받는다. 그리고 이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독일에 처음 온 외국인 흉내를 내고 만다. 이를 통해 구르스트는 외국인의 동화 노력을 막론하고 주류사회의 민족성 강조는 그들을 이방인으로 몰아넣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민족 담론의 대두는 같은 문화적 배경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도 가혹했다. 1세대 이주민들과 기존 독일 사람들의 사회적, 문화적 차이는 당연했지만 성인으로 성장한 2세대에게는 그렇지 않다. 최 교수는 “그들은 자신이 독일인이라고 생각하며 이국적 정체성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다문화적 정체성이 아닌 자신이 사는 곳의 ‘지역 정체성’”이라고 강조했다. 야데 카라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한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안녕, 베를린』을 통해 서베를린에서 태어난 주인공 하잔의 이야기를 전한다. 자신을 서베를린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하잔은 통일 후 처음 보는 동베를린 사람들을 신기해한다. 하지만 곧 그는 터키계 피를 지닌 자신은 모두에게 타자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야데 카라는 하잔의 이야기를 통해 통일 후 2세들의 정체성 혼란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현재 한국에서도 다문화사회에 대한 논의가 한창 진행중이다. 하지만 이 논의를 통일과 연관지어 생각하는 일은 거의 없다. 최윤영 교수는 “보통 한국의 통일은 혈통 기반에서 논의된다”며 “하지만 민족의 통일은 100만 명이 넘는 이주민의 혼란과 정체성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민족이 합쳐야 된다는 생각이 이미 민족적 배타성을 띤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에 살며 지역정체성을 찾은 외국인이 적지 않다”며 “이 상황에서 민족으로 정체성을 구분하는 일은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민족담론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다문화 사회에서 한민족의 문화도 그 중 하나”라며 “같이 사는 이주민들을 통일에 포함하며 통일 담론을 이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민족의 통일과 다문화사회의 갈등
최윤영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148쪽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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