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건축학과 석사과정

올해 봄 학기에 ‘서울대학교 캠퍼스 마스터플랜’에 참여하면서 가졌던 생각들을 갖고 글을 꾸려나가고자 한다. 서울대에선 관악 캠퍼스뿐만 아니라 연건을 포함한 평창, 홍천 등의 서울대 소유의 모든 캠퍼스 영역을 대상으로, 학교의 물리적 제반 환경들에 대한 5년 단위 기본 계획을 수립해오고 있다. 국내 최대 면적을 자랑하는 캠퍼스의 건물, 조경, 교통, 오픈스페이스 등의 전 영역을 다루는 그 방대한 작업에서 필자의 담당 교수님이 맡은 부분, 즉 필자가 맡게 됐던 부분은 관악 캠퍼스의 중심부와 주변부 계획이었다. 그리고 캠퍼스에서 가장 오래됐으며 동시에 가장 상징적인 건물이라 할 수 있는 중앙도서관, 행정관, 학생회관 등이 모여 있는 이 영역을 다루면서 필연적으로 캠퍼스의 정체성에 관한 논의를 마주하게 됐다.

서울대 캠퍼스를 대변하는 정체성과 대표적인 이미지를 생각했을 때 무엇이 머릿속에 그려지는가? 아마 많은 사람들이 정문의 조형물을 이야기할 것이다. 실제로 학교의 공식 문양에서부터 신입생들의 과 잠바에까지 가장 널리 사랑받는 아이콘이다. 혹자는 학교의 어느 곳에서나 눈에 들어오는 관악산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에 반해 캠퍼스 중심부는 캠퍼스 구성원들에게는 친숙한 공간이지만 대외적인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고, 전체적으로 건물들이 강한 통합적인 이미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기에 방향을 전환해 시각적으로 그들과 겨루기보다는 다른 방식의 정체성, 바로 ‘캠퍼스 중심부 이용자들의 고유한 생활 방식’이라는 무형의 가치를 위한 물리적 환경 계획을 제안했다. 서울대에서 생활한 사람들이면 누구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으며 다른 학교의 사람들도 서울대라고 하면 바로 떠오를 만한 일상의 모습과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건물, 오픈스페이스, 도로 등의 물리적 환경이야말로 하나의 학교를 대변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생각이 논의의 바탕이 됐다.

하지만 생활의 방식이라는 말은 너무 광범위하고 정의가 분명하지 못하다. 서울대 캠퍼스에서만 가능한 고유한 생활의 방식이라 하면 머릿속에 바로 그려지는 장면이 있는가? 마스터플랜에서도 결국 구체적인 생활의 양태를 제시하는 것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그리고 사실 물리적 환경만을 제공하는 것으로 사람들의 삶을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는 물리적인 환경의 변화에 앞서 삶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지가 선행하고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생활이란 의지를 통해서 ‘실천’돼야만 하는 것이다.

마스터플랜에서는 기존의 건물들과 중정을 이용해 구성원 간의 가장 단순한 시각적인 소통에서부터, 동아리나 과 활동 등의 밀도 높은 소통들을 더욱 활성화하기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렇다면 독자들이 원하는 정체성은 무엇인가? 캠퍼스의 무형의 정체성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건축가들보다는 생생한 이용자들의 아이디어와 도움이 필요하다. 만약 지금 캠퍼스 안에서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밖으로 나가 캠퍼스를 걸으며 가볍게 대학 생활의 모습을 상상하며 잠시 머리를 식히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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