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6개월이 넘었다. 사회 전반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대통령이 일자리위원회를 가장 먼저 설치하면서 좋은 일자리 창출과 확대가 핵심적인 사회적 화두로 부각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첫 번째 현장방문지인 인천국제공항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한 후 공공기관 및 중앙행정기관, 교육기관, 지방공기업 등에서 다종다양한 방식으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바람직한 방향인데도 공공부문 비정규직 규모의 절반이 밀집된 학교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실패한 이후 다소 위태롭다. 워낙 밀린 숙제가 과중해 발생한 불가피한 문제일 수도 있지만 이대로는 곤란하다. 다시 찬찬히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중요성을 환기하면서 이해당사자들의 준비 정도, 사회적 합의 수준을 돌아봐야 할 때다.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 위한 천재일우의 기회

비정규노동 문제는 IMF 외환위기 이후 민주개혁 정부에서부터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지난 20여 년간 줄곧 실패해온 대표 노동정책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모토가 된 나라에서 노동자들의 삶은 하향평준화와 양극화로 치달았다.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도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각각 종합대책(주요하게 2006년, 2011년, 2016년)을 발표하며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아직까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무엇보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1,100여만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 규모와 정규직 대비 48.9%에 불과한 임금 차별을 비롯한 전방위적 격차가 심각하다. 헌법이 보장한 가장 중요한 노동기본권인 노동3권도 심각한 수준으로 무력화됐다. 전체노동자 노조 가입률이 10% 내외에 그치고 있고, 특히 노조가 필요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 가입률은 2%에도 못 미친다. 최대 다수 국민인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를 그대로 두고 한국사회 정상화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세계사에도 유례가 없는 1,700여만 명이 운집한 촛불시민혁명의 힘으로 적폐 청산과 사회 대개혁의 희망이 점점 커지고 있다. 식민과 분단, 전쟁과 독재의 기나긴 터널을 지난 한국 사회가 21세기 초입에 마주친 암초가 양극화다. 경제성장과 정치민주화를 이룬 역사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불평등 심화는 그 모든 성과를 상쇄할 정도로 치명적인 문제로 대두됐다. 이런 맥락에서 수많은 서민의 열망이 만든 천재일우의 호기를 놓쳐선 안 된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정부들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제대로 된 성과를 내는 방식으로 비정규 문제를 개선해가야 한다.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며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첫 시금석이었던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잘 매듭지은 만큼 정부 성패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집중해야 한다.

제대로 된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요건

첫째, 상시지속업무의 정규직 고용이다. 상시지속적 업무를 상용직인 정규직이 담당하는 것은 상식이다. 이러한 상식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는 것이 한국사회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이다. 왜곡된 고용관행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상시․지속적 업무에 정규직 고용을 법제화해야 한다. 기간제한 방식으로 돼 있는 현재의 기간제법을 사용사유제한 방식으로 바꾸고 기간제 사용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상시 지속적 업무는 정규직을 고용하도록 법규정에 명시해야 한다.

둘째, 간접고용의 직접고용화다. 노무도급 중심의 외주 업무를 직영화하는 것이다. 상시지속적 업무에 정규직을 고용하는 원칙은 간접고용에도 적용돼야 한다. 2011년 정부 조사에 의하면, 공공부문이 민간위탁을 하는 이유는 ‘비용 절감 및 경영효율화’(32%) ‘정원 확보 곤란’(32%) ‘전문 인력 및 시설 활용’(24%) ‘인사노무관리 용이함’(8%) ‘일시적 업무 증가’(3%) 등이다. 상식적인 외주화 이유는 ‘전문 인력 및 시설 활용’과 ‘일시적 업무 증가’ 등 27%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저임금에 기초한 비용 절감 논리와 총정원제 등 공공기관에 정원 확보가 곤란한 제도적 한계 때문이다. 이러한 잘못된 간접고용 활용을 시정해 업무의 상시지속성을 고려해 직접고용으로 전환해야 마땅하다. 간접고용 해법의 핵심은 직영화다. 그동안 비용 논리에 따라서 외주화한 업무를 이제는 공공성을 이유로 직영화하는 것만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셋째, 정규직화 과정에서 이해당사자와의 충분한 협의 보장이다. 무엇보다도 비정규직 정규직화 과정에서 당사자 및 노동조합과의 충분하고 긴밀한 협의가 필요하다. 단체장, 기관장이 아무리 선의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도 일관된 기준 하에서 시행할 경우 다양하고 복합적인 사업장의 상황을 고려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서울시를 비롯한 기존의 정규직화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단지 실적 쌓기, 보여주기 식의 고용 개선이 아니라면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규직 전환 이후의 불필요한 갈등과 소모적 논쟁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이해당사자 간의 충분한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

비정규직이 마주한 정글이 공동체가 되려면

중앙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 핵심은 명료하다. 상시지속 업무에서 간접고용까지 포괄해 직접고용 정규직화하라는 것이다. 달리 해석될 여지없이 상시지속 업무인지 먼저 따져 직접고용 정규직화 대상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 핵심과 주변 업무로 이분화해 외주화와 아웃소싱 방식으로 비정규직을 양산해온 그간의 잘못된 관행을 시정하려면 제대로 된 정규직화 기준을 적용하고 실행해야 한다. 다만 졸속으로 그치거나 보여주기식 성과주의로 치우쳐선 곤란하다. 실현 가능한 해법과 대안을 촘촘하고 기민하게 모색하고 실현 방도를 찾아야 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관련 자회사 방식 정규직화 논란이 뜨겁다. 기본적으로는 상시지속 업무인 경우 직접고용 정규직화가 가장 나은 대안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걸림돌이 있다. 임금체계와 복지 수준을 당장 진성 정규직 수준으로 맞추기가 어렵기 때문에 과도기적으로 우회하는 경로가 필요할 수도 있다. 기존 정규직 노동자들의 반발과 기관별 수익의 편차도 무시 못하는 변수다. 결국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표준으로 하면서 어떤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화를 용인할 것이냐가 관건이다. 자회사 방식 정규직화가 가능하려면 3가지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불법파견과 위장도급 같은 간접고용 논란에서 자유로워야 하고, 경영 전문성 및 효율성이 확보돼야 하며, 정규직화 취지를 반영한 노동권이 보장돼야 한다. 무엇보다 정규직화의 본질적 내용인 고용안정과 적정임금, 원청기관 정규직과의 차별 금지, 노동조합 활동 보장이 가능해야 한다. 제대로 설계된 자회사 요건을 염두에 둔다면 역설적으로 자회사보다는 대부분 직접고용 정규직화하는게 낫다.

지속가능한 양질의 정규직화를 실현할 재원 마련과 청년 선호 일자리를 둘러싼 논란도 곳곳에서 뜨겁다. 특정한 정답을 찾을 수 없는 복잡다단한 이해관계가 얽힌 난제인 만큼 사회적 합의가 필수다. 유일한 사회적 대화 기구인 노사정위원회 활동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노사 대표성이 담보되는 근본적인 대안 모색을 원점에서 다시 해야 한다. 소모적 논란을 최소화하고 이해당사자들과 정부 간 협의와 합의를 통해 실행가능한 합리적 대안을 찾을 때 한국사회의 숙의민주주의도 한 차원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고용의 질이 더욱 열악한 민간부문까지 염두에 둔다면, 양질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모델 확산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정부가 모범적인 공익 사용자로 자기 직분을 다하면 민간부문의 왜곡된 문제들도 시정해갈 수 있으므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한국 사회를 정글이 아닌 공동체로 바꾸는 핵심적인 계기다. 학교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실패한 만큼 대통령이 직접 인천국제공항공사를 비롯한 핵심 기관은 챙겨야 한다. 전략 없는 각개약진이 아니라 세밀한 단계별 로드맵으로 양질의 정규직화가 가능한 곳에서부터 성과 있게 정규직화를 실현해가야 한다. 정규직 노조들도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선도할 수 있도록 입장을 혁신해야 한다. 비정규직 당사자들의 노조 조직률 제고도 핵심 요건이다. 시행착오가 허용되지 않는 중차대한 국면인 만큼 노사정 모두 실사구시적 관점으로 정규직화의 요건을 세심하게 갖춰나가면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힘 쏟아야 한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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