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손지윤 기자 unoni0310@snu.kr

지난주 수요일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작년 경주 지진 이후 약 1년 만에 경북 포항에서 규모 5.4의 강진이 일어났다. 지진이 일어나자마자 각종 매체에서는 지진이 일어난 포항의 상황을 신속하게 보도했다. 유리창이 깨지고 건물 벽이 무너지는 등의 피해 상황을 여실히 볼 수 있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수많은 이재민들이 귀가도 못 한 채 혹시나 다시 강진이 오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다.

지진이 일어나고 많은 사람들이 발생 지역의 피해 상황에 관심을 기울이는 한편 다른 한쪽에서는 다음 날 실시 예정이었던 수능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지진 소식이 전해진 후 사람들은 “수능에도 영향이 가는 것 아니냐” “다음 날까지 여진이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수능을 제대로 치를 수 있겠는가” 등의 수능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이에 낮 시간까지만 해도 수능은 예정대로 실시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던 정부는 같은 날 밤 지진으로 인한 안전상의 문제와 시험을 강행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형평성 문제 때문에 수능을 일주일 연기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정부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었겠지만 이러한 결정으로 인해 교육현장뿐만 아니라 전 사회적으로 많은 혼란이 초래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이번 사태의 직격탄을 맞게 된 수험생들은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수험생들 사이에선 ‘물수능’과 ‘불수능’에 이어 드디어 ‘땅수능’까지 왔다는 자조적인 농담이 들리기도 한다. 매년 수능 난이도에 흔들리는 게 수험생의 숙명이라지만 올해 수험생들은 수능 일정 그 자체에 흔들리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제3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말도 언급하기 조심스러워질 정도로 그들이 받은 정신적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앞서 말했듯 지진 발생 후 수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많았으나 진짜로 수능이 연기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아마 손에 꼽을 정도였을 것이다. 정부에서도 처음엔 감히 수능 연기라는 방침을 꺼낼 수도 없었지만 대통령이 제안하고 나서야 그에 대한 검토를 시작했다고 한다. 지진이 났어도 그 때문에 수능을 연기할 수 있다는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우리 사회에서 수능, 더 나아가서 입시는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수능 연기 발표 후 그에 대한 반응들을 소개하는 기사들을 훑어보던 중 눈에 들어온 것이 우리 자식이 이날만을 위해 10여 년을 달려왔는데 그걸 또 일주일을 미룰 수 있냐는 반응이었다. 지극히 평범하고 그 심정이 충분히 이해되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말 자체보다도 이러한 반응을 평범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나 자신, 그리고 이 사회가 무서워졌다. 새삼스럽지만 우리 사회가 수능까지 남은 시간이 단지 일주일 연장되는 것만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이 고통 받아야 하는, 그리고 이처럼 일주일 연장되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인고의 시간을 많게는 10년 이상 동안 어린 아이들에게 강요해야 하는 사회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우리도 한 때는 그들처럼 수능 혹은 입시를 앞에 두고 오랜 시간 고통을 받았을 터인데 ‘왜 이러한 시스템은 고쳐지지 않는 걸까’하고 답이 보이지 않는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이렇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찰나에 눈에 들어온 것은 한 수험생의 인터뷰 내용이었다. 수능이 연기된 것은 힘든 일이지만 포항 사람들을 생각하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일이라는 그의 말을 보고 ‘언젠가는 우리 사회가 변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막연하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희망을 느끼며 글을 줄인다.

여동하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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