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지하철 음악가들을 만나다
뉴욕의 지하철 음악가들을 만나다
  • 최상희 기자
  • 승인 2017.11.19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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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뉴욕 지하철 내 공연, 그 현장에 가다

습한 먼지와 투박한 철골 구조물로 이뤄진 뉴욕의 지하철을 가로지르다 보면 멀리서 울려 퍼지는 화음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소리를 따라가 연주를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관중이 하나둘씩 모여 무대 주위를 빽빽이 둘러서있다. 사람들은 입 모양으로 가사를 따라 하기도 하고 종종 장단에 맞춰 가벼운 춤을 추기도 한다. 이같은 풍경은 바쁜 뉴욕의 일상 속에서 활력을 더해주는 소중한 문화적 기회가 된다.

현재 뉴욕의 지하철에선 열차 운행 칸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개인이 얼마든 자유로이 음악 공연을 펼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길거리 음악이 처음부터 허용됐던 것은 아니다. 1904년 뉴욕 지하철이 처음 개통됐을 때만 해도 역내에서 행해지는 공연은 철저히 단속됐으며, 30년대엔 역내공연이 사회질서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법적으로 금지됐다. 당시 이런 제약은 지하철뿐 아니라 모든 공공장소에 적용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의 음악가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자유로운 음악성을 표출하기 위해 거리 밖으로 나왔다.

뉴욕의 지하철 역시 마찬가지였다. 끊임없이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으로 변모한 지하철은 명소가 되기 시작했다. 이에 기타리스트 로저매닝(Rodger Manning)을 중심으로 음악가들이 음악적 제한에 대해 항소했고, 마침내 1985년 승소했다. 이후 공공장소에서 행해지는 퍼포먼스에 대한 금지법이 철폐됐고, 미국의 도시교통당국 MTA(Metropolitan Transportation Authority)는 문화장려 프로젝트 ‘아트 앤 디자인’(Arts & Design)을 실시하기도 했다. 1987년엔 오디션을 통해 음악가를 뽑는 프로그램 ‘MUNY’(Music Under New York)가 공식화되면서 공연자가 체계적인 역내 공연을 진행할 환경도 마련됐다. MUNY는 선정된 음악가를 대상으로 역내 공연 위치와 시간을 배정해주는 프로그램이다. 350개가 넘는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MUNY의 연주자들은 연간 7,500개가 넘는 공연들을 제공한다.

이에 『대학신문』에선 뉴욕의 지하 곳곳에서 지역 시민들에게 음악의 기쁨을 전해주는 이들을 직접 만나 보고,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왔다.

▼ Jorge Glem

호르헤: “난 베네수엘라에서 온 호르헤라고 해. 오늘이 여기서의 내 첫날이야. 뉴욕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영어는 잘 못 해. 내 악기는 베네수엘라의 전통악기야. 여기 이렇게 4개의 줄이 있어서 ‘베네수엘라 콰트로’라고 해. 기타보단 좀 더 경쾌한 소리를 내는데, 이걸로 베네수엘라의 전통 곡을 연주하지. 내 나라의 문화를 알리기 정말 좋은 기회야. 여기 지하철은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녀서 연주하는 게 참 재밌어. 가끔 노숙자들이 기웃거리면서 내가 받은 달러 하나만 줄 수 없냐고 하긴 하지만.”

▼ Grupo Wayno

루이스: “우리 팀은 대나무 플루트, 께나, 삼포냐 같은 남미 전통 악기를 연주해. 팀에는 페루, 에콰도르, 볼리비아 출신인 친구들이 있고, 우린 유럽, 한국, 필리핀 등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남미음악을 연주했어. 솔로로 하기도 하고, 모여서 할 때도 있어. 이번엔 치토랑 내가 연주에 참여하고 있어.”

치토: “나는 20년 전쯤 가족들과 다 같이 미국에 왔는데, 그때부터 지하철에서 꾸준히 공연했어. 미국에 옛 원주민들의 음악을 알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 전통음악을 계속하고 있지.”

▼ SHESHE DANCE

아주사: “어떤 사람들은 왔다가 다시 금방 떠나고, 새로운 사람들이 또 오고. 여긴 끊임없이 순환해. 난 누가 내 자리 뺏기 전까진 이 자리에서 죽을 때까지 연주할 거야. 너무 재밌거든! 7년 전까지 난 노래를 전문적으로 부르지 않았어. 근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자식들은 다 졸업하고 직업도 잃고. 그래서 이렇게 생각했지. 못할 게 뭐 있어? 언젠가는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뉴욕에나 한번 가볼까? 그렇게 고향 테네시를 떠났지. 지금 이 일을 사랑해. 하루도 후회한 적 없어. 사람들의 환호, 지하철 냄새, 그리고 이곳의 열기는 내게 엄청난 에너지를 줘. 이곳에서의 시간은 내가 빛나는 시간이고, 또 변화를 만드는 시간이야. 여길 스쳐 지나가는 누군가는 안 좋은 하루를 보내고 있을 수 있고 언젠가 내게 힘든 하루가 찾아올 수도 있지. 밖에 폭우가 쏟아지고 있어도 스피커 하나 밑으로 끌고 와서 마음에 되새겨. ‘그래 해보자, 지금이 오늘의 하이라이트야.’ 아주 중요한 일이지, 음표 몇 개가 모든 변화를 이끌어내는 거야.”

▼ Opera Collective

조나단 그린: “내 목소리는 베이스 바리톤 전문이고, 오페라 극에서 주로 분노를 표현하는 역할을 담당해. 화나신 아버지나 악당 역할 같은 거. ‘오페라 컬렉티브’는 10년 정도 된 그룹이고, 난 지난 3월에 이 그룹을 들어왔어. 난 여기서 노래하는 걸 봉사 활동이라 생각해. 사실 지하철이 노래하기 좋은 환경은 아니야. 보다시피 여름엔 엄청 덥고, 겨울엔 끔찍하게 춥지. 그래도 여기서 노래를 하는 건 연습에 꽤 많은 도움이 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목소리, 시끄러운 열차 소리와 경쟁하면서 목소리에 힘이 생기게 되거든.”

알렉시스 크레거: “(지하철 공연은) 대중들이 어려워하는 오페라를 쉽게 들려줄 좋은 기회야. 매체에서는 주로 대중음악을 트니까 사람들이 평소에 오페라를 잘 접하기 어렵지. 섬유유연제 광고를 엄청 많이 보지 않는다면 말이야.”

카산드라 더글라스: “난 소프라노야. 따듯한 담요 같은 길고 부드러운 음을 내는 역할이지. 사람들은 흑인 여자가 오페라를 하니까 신기하게 쳐다봐. ‘와 저런 조합도 다 있네’라는 식이겠지. 하지만 난 그런 반응이 괜찮아! 내가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준다는 뜻이잖아. 사람들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내가 영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 궁극적으로 스스로에 대한 마음을 열게 하는 거지. 이런 식으로 난 사람들이랑 소통하는 것 같아. 감성적인 지성이라 해야 하나? 이건 자존심과 비판의식만으론 할 수 없고, 진심으로 나 자신이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깊이 고민하다 보면 이뤄질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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