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금서,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먼 길’?
6월 항쟁 전후 마르크스, 레닌 원전과 북한 방문기 및 북한 관련 서적이 본격적으로 출판됐다.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 외교 정책에 따른 소련, 중국과의 교류에 의해 사회주의 사상 서적에 대한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또 ‘북한 바로 알기 운동’에 따라 북한 방문기와 주체철학 이론서, 김일성 전기 등이 출간됐다. 이에 당황한 정부는 사회주의 사상서와 북한 관련 서적을 국가보안법에 따라 이적표현물로 분류하고 압수, 수색에 나섰다.
6공화국 이후 국가보안법 이용 ‘합법적 통제’ 이뤄져
당시 이적표현물로 분류된 북한관련 서적에는 독일 여류작가 루이제 린저의 『또 하나의 조국: 루이제 린저의 북한방문기』(1988, 공동체)가 있다. 1980년에 북한을 방문한 작가가 당시 북한의 실상에 대한 감상을 쓴 이 책이 금서로 지정된 이유에 대해 출판평론가 박천홍씨는 “정부가 반공 교육을 통해 주입한 ‘헐벗고 비이성적인 국가’라는 북한의 이미지를 깰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이 위험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주의 사상 서적인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1989, 백의)과 『공산당 선언』(1989, 백산서당) 역시 금서로 지정됐다. 인권사랑방의 김명수씨는 “사회주의 사상서를 접하는 사람에게는 정부 당국이 북한의 간첩이라는 혐의를 씌웠다”며 “이러한 통제 방식은 분단국가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전히 ‘이적표현물’ 지정된 미해금도서 남아있어
1990년대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이후 금서에 대한 통제가 많이 완화되긴 했지만 ‘금서’는 여전히 존재한다. 이적표현물로 분류된 미해금 도서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으로 선정된 조정래의 『태백산맥』(1986,해냄)역시 현재까지 이적표현물로 분류된 상태다. 이와 관련해 지난 10월 26일 국정 감사에서 공안문제연구소는 1988년 설립된 이후 지금까지 8만여 종에 이르는 출판물에 대한 감정을 실시해 5만여 종의 출판물을 이적표현물로 지정해왔음을 시인했다.
풀빛 출판사의 나병식 대표는 “오늘날에도 금서를 통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국가보안법이라는 형태로 여전히 남아있다”며 “국가보안법의 이적표현물 조항이 폐지되지 않는 한 통제는 얼마든지 강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현재 금서의 존재에 대해 인권사랑방의 김명수씨는 “금서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아직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는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