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
교수생명과학부

올해 들어 우리 대학의 총장 선출 방식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성낙인 총장이 지난 3월말 모든 교수가 참여하는 방식을 선호한다고 밝혔고, 교수협의회도 현행보다는 더 높은 비율로 교수가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는 조사 결과를 밝혔다. 학내 뜨거운 이슈에 대해 많은 이들이 원한다는 방식에 이견을 내기 조심스럽지만, 조만간 퇴직하는 사람으로서 학내 구성원들에게 읍소하는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

서울대는 총장, 학장, 학부(과)장 등 대부분의 지도자를 직접선거로 뽑는다. 그런데 선진국의 어느 최고 대학도 이런 방법으로 지도부를 구성하진 않는다. 이들 나라들은 민주주의가 만개한 사회인데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대학의 총장이나 학장을 교수 직선제로 뽑아서는 학교가 제대로 운영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대엔 지금 23개의 단과대학과 이에 준하는 대학원들이 있고, 이들은 다시 여러 학부(과)로 구성돼 있다. 서로 다른 대학이나 학부들은 목표나 학문적 방법론이 매우 다르다. 그런데 대학의 자원은 제한돼 있다. 결국 단과대학 사이 혹은 같은 대학 내에서도 학부 간에 공간, 예산, 교수 및 학생 정원 등 모든 면에서 상호 충돌이 불가피하다. 예를 들어 유휴 공간에 건물을 지을 때 어느 대학이 사용할지, 교수 50명을 뽑을 예산이 대학본부에 있을 때 어느 분야에 배정할지 등 중요 사안들에서 대립과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총장이나 학장을 직접선거로 뽑는다면 필연적으로 대학은 정치화하고, 운영은 고비용·저효율 구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총장 후보들이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민원이나 숙원사업 해결을 약속하기 때문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꼭 추진해야할 사업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대 상황에 따라 대학이나 학부의 구조 조정이 필요할 때가 있다. 어떤 전공이나 대학은 이제 서울대에서 덜 필요할 수 있고, 반면에 어떤 분야는 새롭게 만들거나 집중적으로 키워야 한다. 이 모든 작업은 누군가의 원성을 들을 수밖에 없으니 어느 후보가 이를 공약으로 내세우거나 추진할 수 있겠는가.

1986년 6월 항쟁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하며 군사독재 시절에 겪었던 정치적 핍박에 대한 반작용으로 총장 직선제는 시작됐다. 그러나 30년이 지나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직선제는 이제 적절한 방법으로 바뀌어야할 때가 됐다. 우리는 지난 총장의 선출과정에서 진통을 겪었다. 개인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그는 정당하게 도입된 3단계 과정을 거쳐 합법적으로 총장이 됐건만, 교수들로 구성된 정책평가단에서 2위를 한 후보라는 이유로 정통성 시비를 건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심지어 이를 민주와 반민주 구도로까지 몰고 간 교수도 있었다. 서울대가 아직도 군사 독재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피터팬’이란 말인가.

서울대의 가장 큰 자산은 대한민국 최고의 학생들과 교수들이다. 우리가 비록 인프라나 돈은 부족하지만, 이런 인재들의 명석함과 추진력을 잘만 이끌어 준다면 우리는 일등 국가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가장 큰 걸림돌은 우리 대학교의 전근대적 의사결정 구조와 운영체계, 특히 우리 지도부의 선출 방식에 있다.

서울대가 21세기의 빠른 변화에 대응하고 글로벌 경쟁 구도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려면 비전과 추진력을 가진 사람을 총장으로 뽑아, 그가 가진 권한을 제대로 행사해 개혁과 발전을 이루도록 해줘야 한다. 그러려면 총장은 이해 기관들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선출돼야 한다. 교수에 의한 직선제는 물론 간선제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민주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선진국의 일류 대학들이 하듯 10여 명 내외로 구성된 위원회가 총장 선발을 주도하고 이사회가 최종 결정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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