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영 부편집장

한창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 문제가 다시 인터넷을 달구고 있을 무렵이었다. 포털에 올라온 메인 뉴스를 눌러보다 ‘[청와대갤러리]② 미술품 미스터리, 기자회견장 천장 방패연은 왜 만들었나?’(조선비즈 10월 11일자)라는 기사를 보게 됐다. 관심 있게 본 기사는 두 번째 연재기사로, 청와대가 보유하고 있는 미술 작품들의 관리 현황에 대한 내용이었다. 청와대 내부에 설치된 작업을 중심으로 관리 상황과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었는데, 그 깊이나 내용적인 부분에서 아쉬움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청와대를 떠올렸을 때 생각하지 못한 부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그러나 해당 기사에는 생각보다 비난에 가까운 비판적인 댓글이 많이 달렸다. 그중 공감도가 두 번째로 높았던 ‘이런 쓰레기. 기사 쓸 게 그리 없나? 읽고 나니 한심하다!’를 비롯해 기사의 소재적 부분을 폄하하는 댓글들은 다소 유감스러웠다.

미술 전공자라서 회의감을 느끼는 것일 수도 있겠다. 미대 학부생으로서 5년간 지켜보며 느낀 점이 있다. 사회에서 가시적인 문제로 불거지지 않은 예술에 대한 논의는 그것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늘 다른 사안들에 밀릴 때가 더 많다는 점이다. 사안의 가치가 비교적 덜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해당 기사의 댓글도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사안에 따라 우선순위는 있다 한들 메인 이슈가 하위의 사안들의 가치를 무(無)로 만들 수는 없다. 사안들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댓글에 마음이 썩 좋지 않았던 진짜 이유다.

‘막말이 오가는 인터넷상에 달린 댓글 몇 개에 뭐 그리 마음 상해하느냐’라고 말한다면, 어쩌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미술 관련된 기사 소재가 쓸 것이 없어 쓰냐는 얘기를 들을 정도의 가치로 보인다는 것은, 또 그런 관점에서 달린 댓글이 500개가 넘는 공감을 받고 있다는 것은 한편으로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대변한다. 기사 제목에 ‘청와대 갤러리’가 명시돼 있음에도 사람들은 BBK 수사 내용을 요구하며 해당 기사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댓글이 주를 이뤘다. BBK 수사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궁금한 것은 청와대에 어떤 작품이 있는지, 관리 실태가 어떤지는 취재할 필요가 없는 중요하지 않은 사안이냐는 것이다.

사회에서 큰 사안이 있으면 그에 집중함은 마땅하나 그렇다고 다른 사건들의 가치를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그런 사회 분위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사회는 각각의 가치를 쉬이 저울질하곤 한다. 그 과정에서 예술 분야는 댓글 창에서 그랬듯 사람들의 관심에서 ‘밀릴’ 것이다. 그리고 매번 그랬듯 그렇게 가려지다가 언젠가 사건이 터졌을 때야 비로소 그것이 ‘문제’로 다뤄질 것이다. 전 정부의 블랙리스트 사건이나 예술계 내 성추행 사건처럼, 혹은 언젠가 작가가 아사한 채로 발견됐듯 그것은 예술이 아닌, 작품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학부를 마칠 때가 되면 몇몇 교수들은 많은 학생들이 작가로 ‘살아남길’ 바란다고 말한다. 금전적인 문제를 비롯한 각종 차별과 드러난 문제만을 생각했는데 아마 살아남기 위해서 견뎌야 하는 것은 그것만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혹시 살아남지 못하더라도 이상주의자인 나는 예술이, 미술이 언제 어떻게 다뤄져도 이상하지 않은 사회에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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