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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신문고에서 참여민주주의의 미래를 보다취재 | 청와대 국민청원제도의 의의와 개선 방향

조선시대 대궐 밖 문루에 걸려 있던 신문고는 부조리한 일을 겪은 백성들이 임금에게 직접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리고 2017년 대한민국에서 또 다른 신문고가 나타났다. 국민과 여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청와대 국민청원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제도는 온라인으로 간편한 절차만 거치면 국민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서, 국민과의 소통을 중요시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지난 8월 19일 도입됐다. 출범 이후 낙태죄 폐지, 권역외상센터 지원 확대, 조두순 출소 반대 등 다양한 청원이 제기됐으며, 이 중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낙태죄 폐지’와 ‘소년법 폐지’에 대해선 조국 민정수석이 직접 답변하기도 했다. 『대학신문』에서는 이와 같이 여론의 장으로 떠오른 청와대 국민청원제도의 의의를 살펴보고, 한계점과 이에 따른 개선 방향을 고민해보고자 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선 누구나 간편하게 자신의 의견을 청원할 수 있다. 사진출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아고라를 꿈꾸는 시민들, 청와대 홈페이지에 모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제도가 폭발적인 인기를 끈 배경으론 먼저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실망이 거론된다. 김의영 교수(정치외교학부)는 “국회와 정부로 대표되는 기존 대의민주제 권력기관들이 국민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이를 정책이나 법률과 같은 가시적 성과로 환원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며 “이에 실망한 시민들이 직접 목소리를 낼 필요성을 느낀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겨울의 대규모 촛불집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조기대선까지 이어진 일련의 정치적 상황이 이 제도의 폭발적 인기에 기여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민기 교수(숭실대 언론홍보학과)는 “시민들이 힘을 모으면 정권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자신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지면서 정치적 효능감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청원제도는 간편한 절차와 정부가 책임지고 답변할 것이라는 시민들의 기대 덕분에 정치적 효능감이 충족되는 장이 됐다. 이미 제도적인 청원이 가능하도록 마련된 ‘청원법’과 청와대의 국민청원제도와 유사한 국민권익위원회의 ‘국민신문고’가 있었지만 청와대 국민청원제도와 비교해 절차가 까다롭고, 실제로 정책에 반영될지 불투명해 지금까지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었다. 더불어 청와대는 한 달 안에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청원에 대해선 청와대 수석비서관이나 관련 부처 장관이 책임 있는 답변을 하도록 규정함으로써 시민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했다. 김민기 교수는 “20만 명을 넘으면 답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의견을 모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너도나도 청원에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제도는 SNS 계정으로 로그인만 하면 누구나 청원할 수 있기 때문에 그동안 정치에 참여하지 못했던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원활한 창구로 자리를 잡고 있다. 실제로 오늘(4일)을 기준으로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가 개설된 지 겨우 100여일이 조금 넘었지만 5만 건이 넘는 청원이 올라오며 하루 평균 500여 건의 청원이 이뤄지고 있다. 이 가운데 1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청원도 8건이나 되며, 가장 많은 동의를 얻은 조두순 출소 반대 청원은 무려 6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 한국행정연구원 서원석 연구위원은 “각자 삶에 바빠 직접 정치에 참여할 수 없던 시민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갈 길은 멀지만 밝은 미래

이처럼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제도지만 도입 초기인 만큼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우선 무분별한 청원 내용이 문제로 지적된다. 실제로 청원 게시판에는 군내 위안부를 창설해야 한다는 등의 몰상식한 청원이 올라와 논란이 일기도 했고, 배용준 부부의 특혜의혹을 조사해 달라는 등의 지나치게 지엽적인 청원들이 상당하다. 자유한국당에 대한 위헌정당 심판 청구 요구와 같은 비현실적인 청원들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김의영 교수는 “정제되는 과정이 없기 때문에 선정적인 의제에 대한 청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어떤 방향으로 개선해나가야 할까. 청원을 실명으로만 가능하도록 제한을 둬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익명의 자유에 위배된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이 참여해 선별하는 방식으로 가야한다는 지적이 많다. 김의영 교수는 “올라온 청원에 대해 전문가들이 논의한 후, 이 가운데 의미가 있는 청원을 식별해 여과하는 역할을 하는 심의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더욱이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제도가 전체 국민의 여론을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실제로 하나의 청원에 대해 같은 사람이 중복해서 여러 번 동의할 수 있기 때문에, 특정 청원이 전체 여론과 비교해 과도하게 지지받을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서원석 연구위원은 “특정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반영시키고자 사람을 동원해서 여론을 왜곡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김민기 교수는 “동일 IP에 대해선 오직 한 번의 동의가 가능하도록 제한하는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현재 청와대는 한 달 안에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청원에 대해서만 당국이 답변을 내놓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이 제한을 철폐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참여정부 시절 운영됐던 국민참여마당 제작에 참여했던 민경배 교수(경희사이버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는 “양적 지표만으로 판단하고 그 기준을 충족하는 청원에 대해서만 답변하면 대중의 관심을 받는 청원에 대해서만 논의가 집중되는 여론 쏠림이 발생할 수 있다”며 “다수의 동의를 받지 못했더라도 의미 있는 청원 역시 발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서라도 청원게시판을 여론에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들이 참여해 유의미한 청원을 찾아 이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김민기 교수는 “답변 기준을 완화해 대중의 관심을 받진 못했더라도 가치 있는 청원에 대해서는 답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청와대 국민청원제도는 많은 우려와 한계점들을 안고 있지만, 앞으로의 전망은 밝다. 김의영 교수는 “부작용이 있지만 이 때문에 이 제도를 포기한다면 그건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라며 “시간이 지나면서 청와대 국민청원제도를 통해 여러 정책들이 시행된다면 게시판도 정화되는 등 이 제도가 안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궁극적으론 청와대 국민청원제도 외에도 다양한 여론을 수렴할 공론장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민경배 교수는 “정권 초기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모든 공론장의 기능을 독점하고 있다”며 “대통령이 아닌 국회가 응답할 부분에 대해선 국회 국민청원 게시판에 청원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공론장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며 길이 들어 그 소리가 점차 풍성해지는 신문고의 북소리처럼, 아직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앞으로 우리 사회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창구로서 제 역할을 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제도의 앞날을 기대해 본다.

이용진 기자  lyj1998sky@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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