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웅크린 비극의 숨결

- 구스 반 산트(Gus van Sant)의 <엘리펀트(Elephant)>(2003)를 보고

윤정찬(자유전공학부·17)

1999년 4월 20일. 두 고등학생이 12명의 학생과 1명의 교사를 죽이고 23명의 사람들에게 부상을 입힌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은 미국 전역을 충격에 빠뜨렸다. 경찰에게 체포되기 직전 자살한 두 학생 에릭과 딜런의 범행 동기를 놓고 언론과 여러 전문가들은 열띤 논쟁을 벌였다. 집단 따돌림, 록 스타 마릴린 맨슨의 반(反)사회적 음악, 폭력적인 게임, 나치즘의 영향 등이 비극을 불러일으켰다는 분석들이 이루어졌지만, 그 어떤 분석도 본질적으로 납득 가능한 설명을 제시하지 못한 채 사건은 깊은 의문의 상처로 사람들의 가슴 한 구석에 자리 잡았다. 2003년, 아직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은 충격과 의문의 사건은 구스 반 산트(Gus van Sant)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어 <엘리펀트(Elephant)>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많은 사람들이 설명하고 이해하려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이 사건을 감독은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는가.

현실 속 영화, 영화 속 현실

이 영화의 촬영방식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영화 시작 후 몇 분 지나지 않아서 알아차릴 수 있다. 3인칭 시점에서 촬영되며 빠른 화면 전환으로 내용 전개를 해 나가는 기존의 일반적인 촬영 방식과는 다르게, 이 영화에서 카메라는 주로 인물의 등 뒤를 쫓아가는 역할을 맡는다. 극중 인물이 학교에 등교하는 과정과 교장선생님에게 혼나는 장면, 복도를 걸어가다 마주친 친구와 사소한 장난을 치는 장면까지 카메라는 묵묵히 담는다. 인물의 눈높이 각도에서 스테디캠(steady cam)으로 촬영된 장면들이 영화의 반 이상을 이룬다. 또한 영화는 주로 롱쇼트(long shot)로 구성되어 화면 전환이 빈번히 일어나지 않는다. 쇼트(shot)는 영화의 최소 단위로, 한 카메라가 한 번 돌아가는 동안 찍힌 영상의 내용이다. 차분하고 긴(long) 쇼트들을 통해 빠른 내용 전개를 지양하고 인물의 일상을 일정한 시선으로 담으려는 시도를 한다.

이렇듯 카메라의 앵글과 이동, 화면의 전환, 쇼트의 길이 등 영화의 촬영기법을 통틀어 시네마토그래피(cinematography)라 지칭한다. 박진감 넘치는 블록버스터의 잦은 화면전환과 빠른 전개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지루함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그러한 블록버스터에서는 찾을 수 없는 현실성이 구현된다. 영화 속 시간의 흐름이 실제 시간과 일치하고, 특별한 목적이 없는 듯한 일상의 사소한 일들까지 담겨있기에 <엘리펀트>는 관객들에게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이 영화가 일상에서 탈피한 판타지의 세계가 아닌, 일상과 깊게 얽혀 있는 현실을 다룬다는 것이 시네마토그래피를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다.

추악하고도 좋은 날

첫 장면은 항상 예의주시할 수 밖에 없다. 만남에 있어 첫 인상이 인상에 남고, 대화의 시작에서도 첫 마디가 중요하듯 영화의 첫 장면이 무엇을 담고 있을지는 항상 기대의 대상이며, 특히 관심을 기울여 보게 된다. <엘리펀트>의 첫 장면은 구름 낀 파란 하늘. 평온한 파란 하늘은 그 어떤 비극의 복선도 담고 있지 않다. 이러한 차분함은 첫 장면만의 특별 효과가 아니라, 뒤따라오는 장면들에서도 지속된다. 술에 취해 운전하려는 아버지를 만류하다 학교에 지각한 인물이 등장하는 다음 장면은, 표면적으로는 중요한 의미나 효과를 전혀 지니고 있지 않다고 느껴진다. 이러한 일상성은 영화의 배경음악에서 또한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영화의 극적 효과를 위한 분위기 형성에 배경음악이 기여하는 바가 크지만, <엘리펀트>에서는 배경음악이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손꼽힐 정도의 횟수만큼 사용되는 배경음악조차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일 뿐. 총기난사를 다루는 영화에서 긴장감이나 공포, 분노와 충격을 조성하는 배경음악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굉장히 이례적이다.

미장센(Mise-en-scene)은 "장면 속에 무엇인가를 놓는다"라는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용어로, 카메라에 찍혀 화면 속에 담길 모든 조형적인 요소를 의미한다. 화면 속 세트, 인물의 의상과 분장, 사물의 배치, 조명, 배우의 연기와 동선의 배열, 효과음과 배경음악까지 미장센에 포함된다. 영화의 배경은 평범한 미국 고등학교이며, 돋보이는 의상을 입거나 분장을 한 인물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실제로 감독은 배우들을 캐스팅 할 때 관객들이 스타라고 알고 있는 유명배우가 아니라, 일반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고등학생 배우들을 뽑았다고 한다. 영화의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마치 일상의 한 토막을 잘라내어 화면에 붙여 놓은듯한 평이한 미장센이 사용된다. 수많은 사상자를 남기고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을 다룬 영화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미장센의 중립성은 일상적임을 넘어 역설적으로까지 느껴진다.

실제로 감독은 단지 일상성과 현실성을 부여할 목적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의도적이고 강력한 역설을 영화 중간에 삽입한다. 두 학생이 인터넷으로 총을 구매하는 장면 직후, 1분 여 간 구름 낀 하늘이 다시 등장한다. 총을 구매하는 것은 곧 있을 총기난사를 암시하는 비극적인 일인데, 아무 맥락 없이 푸른 하늘과 구름의 화면이 나오고, 이후 영화는 다시 다른 인물의 일상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보여준다. 이러한 역설은 이후 총을 쏘며 학교의 복도를 따라 내려가던 인물이 혼자서 중얼거린 대사에서도 드러난다. 이미 몇 명을 총으로 죽이고 난 후 그는 "So foul and fair a day I have not seen(이렇게 추악하고도 좋은 날은 처음 봤다)"라고 혼잣말을 한다. 이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Macbeth)>에서 주인공 맥베스가 처음으로 뱉은 대사로, 문학에서 역설의 대표적 예로 꼽힌다. 구석에 몰린 커플에게 총을 겨누며 누구를 먼저 죽일지 장난 식으로 노래를 부르는 인물에게서 줌 아웃(zoom out)하며 영화가 끝나는가 싶더니, 푸른 하늘과 둥둥 떠다니는 구름들이 또다시 등장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마지막 장면의 배경에는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선들을 따라서, 드러나는 전체

영화 제작자가 고민하는 것은 영화에 담을 내용뿐만 아니라,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 즉 서사(narrative) 또한 신중히 선택할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용을 전개하는 방식이 있는 반면, 역순행적 구조 등 영화의 장면들을 편집하여 시간의 흐름과 다르게 배치하는 영화들도 있다. 영화 <메멘토(Memento)>는 시간의 흐름과는 일치하지 않는 서사방식을 택해 성공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 등, 어떤 서사 방식을 사용하는지는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다.

<엘리펀트>의 서사는 인물 중심적이라 하고 싶다. 누구의 이야기가 다뤄질 것인지명시 후 영화는 진행된다. 초반 검은 화면에 "John"이라는 이름을 흰 글자로 쓰고는, 등장인물John의 관점에서 하루를 풀어나간다. 오직 John만을 집요하게 쫓아가는 카메라를 통해 그 인물이 사는 하루를 보여준다. 그러다 검은 화면에 흰 글자로 다른 인물의 이름이 나오고, 그 후에는 그 인물의 삶만을 보여준다. 총기 난사를 한 두 학생은 영화가 시작되고 20분이 지나서야 처음 등장하는데, 이들의 이야기도 다른 학생들의 이야기와 같은 방식으로 전개된다. 영화의 서사 방식은 총기 난사를 계획하는 두 학생의 대화든, 잘생긴 남자아이들에 대해 떠들며 방과 후 쇼핑 계획을 세우는 여학생들의 수다든, 같은 중요성과 비중을 두고 풀어 나간다.

각각의 등장인물을 다룬 시퀀스(seq -uence)는 선형(linear) 구조의 서사방식으로 전개된다. 각자의 이야기는 서로 독립적인 선으로 꿋꿋하게 그어진다. 때로 인물들이 복도에서 서로를 만나 간단한 대화를 주고받는데, 그 때 선들은 잠시 교차했다 다시 각기 갈 길을 간다. 이러한 교점들을 그리는 장면들은 인상적이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복도에서 John이 Elias를 만나 사진을 찍고, 그 옆으로 Michelle이 뛰어 지나가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은 John의 관점, Elias의 관점, 그리고 Michelle의 관점에서 각각 전개된다. 따라서 영화 전체에서 이 장면은 세 번이나 등장하지만, 세 번 모두 다른 관점에서 동일한 장면을 바라보는 것이다. 카메라의 초점 또한 한 인물에게만 집중되고 다른 인물이나 배경은 흐릿하게 처리되기 때문에 같은 상황도 각자의 입장에서는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이 있고 지나치는 것들도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이렇듯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시간의 선적(linear) 흐름 안에서 자신이 중점적으로 본 것들만 알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무감각하다. 그렇기에 어떤 사건에 대한 이해도 완전하지 못하고 편중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선들이 어떻게 교차하고 뻗어 나가는지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나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2차원 공간에서 하나의 선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차원으로 올라와 시간을 앞으로 돌려보기도 하고 뒤로 진행시켜 보기도 하며 각각의 선들이 구성하고 있는 전체를 볼 수 있다면 사건의 전모를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함이 현실이지만, 영화에서만은 현실의 한계를 극복하여 더 높은 차원에서 통시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엘리펀트>의 서사 방식은 차원의 이동을 통해 사건의 종합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해 주는 장치로서 작용한다.

각각의 선들이 교차하다가도 제 갈 길을 나아가며 영화는 흘러가지만, 결국 모든 선들은 한 점으로 모인다. 각자의 길을 가던 인물들을 따로 쫓던 영화는, 마지막 15분간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닥치는 사건인 총격을 그린다. 각각의 선들은 모두 처음에는 무관한 듯 보였다. 영화의 서사 방식에서도 총기 난사가 반드시 일어날 이유와 원인이 제시되지 않고, 선들은 흘러가다 보니 어느새 한 점으로 모여 있었다. 이렇듯 이 영화에는 인과성이 결여되어있다. 인과성의 결여를 비판하는 비평가들도 있지만, 그것이 곧 현실을 더 잘 드러내는 것이리라. 현실에서 개개인이 경험하는 일들은 반드시 일어나기로 예정 되어 있어서라기보다는, 살다 보니 어쩌다 닥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콜럼바인 고등학교의 학생들도 각자의 일상을 살아가다가 어느새 총격 사건에 도달해 있었을 것이다. 그들 각자의 관점에서 인과성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영화의 서사가 어느 특별한 선에 더 주목하지 않기에, 영웅과 악당도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영화와 소설에서는 영웅과 악당,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이 암묵적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는 각각의 인물을 소개하고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인과적인 행동들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형성되는데, <엘리펀트>는 그러한 과정이 없다. 예를 들어 총격이 진행되는 도중 감독은 Benny라는 새로운 인물을 갑자기 등장시킨다. Benny는 건장한 흑인 학생으로 남들이 학교 밖으로 도망칠 때 혼자서 학교 안쪽으로 들어간다. 어떤 여학생의 탈출을 도와주고 남은 사람이 없는지 살피며 총격을 가하는 학생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는 그의 발걸음에서 관객들은 일말의 희망을 본다. 카메라는 4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오직 Benny만을 쫓으며, 도움이 필요할 때 등장한 영웅이 비극을 완화시키고 선의 승리를 가져오기를 바라는 관객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듯하다. 드디어 Benny가 교장선생님을 총기로 위협하는 학생을 발견하고 뒤에서 조용히 접근 하는 그 때. 총을 든 학생은 휙 돌아서 머뭇거림 없이 Benny를 쏘고, 다시 교장과의 대화로 돌아간다. 너무나도 허무하게 쓰러지는 Benny와 함께 관객의 기대 또한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장면에서까지 영화는 지극히 현실적이며, 현실에서 미리 정해진 영웅이나 악당 따위는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코끼리를 찾아라

너무 당연한 것은 쉽게 보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모든 답이 주어진 영화들을 보며 관객은 큰 어려움 없이 이야기를 따라가지만, 더 생각해 볼 여지가 없기에 관객에게 남는 것 또한 적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엘리펀트>를 본 관객은 무엇이 비극을 불러 왔는지 한 번 더 고민해보게 된다. 확연히 드러나는 인과성의 흐름을 볼 수 없기에 관객은 구체적인 상황을 뜯어 살핀다. 멈춰서 한 번 더 생각을 해야 비로소 비극을 초래했을 수도 있는 일상의 작은 돌기들을 볼 수 있다. 교장선생님이 지각을 한 아이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는 시선, 체육복 반바지를 입지 않았다고 들어야 되는 꾸지람, 별 생각 없이 수업시간에 자행되는 따돌림으로 상처 받고 소외 받는 아이들, 사회적 소수자 집단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과 무관심 등 중요하게 생각지 않고 넘어갔던 일상의 여러 문제들이 영화가 끝난 후에야 서서히 떠오른다. 일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시네마토그래피는 목적 없이 사용된 것 같았지만, 사실은 관객에게 스스로 답을 찾아보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관객은 비극의 원인이 해당 학생들이 정신병이 있는 악당이어서, 나치의 프로파간다를 봐서, 아니면 폭력적인 음악과 게임에 노출되었기 때문이라는 등 특별하고 비일상적인 것에 있지 않고, 일상 속 어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미장센에서 드러나는 역설은 사람들이 항상 구별 지어 생각한 일상과 비극, 선과 악을 교차 편집하여 그 벽을 허문다. 어느 하루가 좋으면서도 추악할 수 있듯, 구름 낀 하늘과 베토벤소나타의 일상에서도 총격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 둘은 본질적으로는 다르지 않으며 모두 같은 층위의 현실에서 기인함을 영화는 밝히고자 한다. 그렇지만 비극의 원인이 일상의 어느 부분인지는 단정지을 수 없으며,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종합적이고 전체적인 관찰과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

영어에 "Elephant in the room"이라는 표현이 있다. 직역하면 거실 안 코끼리라는 뜻으로, 분명히 존재하지만 사람들이 논하기 꺼려하는 문제를 뜻한다. 일상의 공간인 거실 안에 코끼리는 분명히 자리 잡고 있는데, 이를 못 본 체 넘어가는 사람들을 비판할 때도 이 표현이 쓰일 수 있을 것이다. 부서진 가구들을 보며 그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자리 잡고 있는 거실 속 코끼리의 존재를 상기시켜줄 필요가 있다.

이 표현을 이해한다면, 영화의 제목 <엘리펀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다가올 것이다. 문제의 원인을 특별한 데서 찾는 이들에게 사실은 일상 속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영화는 넌지시 말하고 있다. 또한 그 문제를 진정 이해하려면 다양한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접근해보는 시도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자신만의 관점에서 사회 문제를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결론 짓는 사람들은 코끼리 다리를 만지며 제각기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 맹인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맹인들이 코끼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느리고 비효율적이라도 더듬어보고 서로 인지한 바를 나누는 섬세한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이 귀찮다고 자신의 판단만을 믿는 맹인은 어리석을 뿐더러,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예비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한, 추악하면서도 아름다운 일상 속 깊이 거실의 코끼리는 절제된 파멸의 호흡을 내뱉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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