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시대’라는 표현이 익숙할 정도로 ‘혐오’가 사회적 화두이다. 서점에서는 카롤린 엠케의 『혐오 사회』, 마사 너스바움의 『혐오와 수치심』, 주디스 버틀러의 『혐오 발언』, 우에노 지즈코의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제러미 월드론의 『혐오표현, 자유는 어떻게 해악이 되는가?』 등 혐오를 표제에 내세운 책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이들 책의 부제들을 종합해보면 혐오는 너와 나를 격분시키고,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증오의 감정이다.

특히 여성혐오, ‘여혐’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들이 오가고 있다. 여성혐오에는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혐오와 멸시, 편견뿐만 아니라 여성의 자기혐오까지 포함된다. 여성혐오가 일상화된 풍토 속에서, 여성은 대상화되며,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에 대한 외침은 공허한 독백이 되기 쉽다.

올해 열린 페루 미인대회에서는 여성의 신체를 사이즈로 수치화하는 대신, 여성혐오 살인사건 및 성폭력 실태와 관련된 통계를 언급해 화제가 됐다. 미국에서는 유명 여성 배우들이 성폭력 피해 사실을 연이어 폭로하면서, 성폭력 고발 운동인 ‘미투(#Me Too) 캠페인’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도 이미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얼마 전 『대학신문』에 기고된 조연정 문학평론가의 글에서도 지적됐지만, 작년 “#문단_내_성폭력” 사태를 거친 한국 문단에서는 여성작가들의 목소리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대학신문』 11월 20일자) 리벤지 포르노와 데이트 폭력을 포함한 성범죄 및 성폭력, 성차별 등의 문제가 꾸준히 작품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대학 캠퍼스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작년, 여성의 몸을 품평하는 ‘단톡방 성희롱’을 고발한 대자보가 보도된 바 있다. 이렇듯 여성혐오에 대한 폭로가 사회적 관심사가 되고 있는 것은 더 이상 반(反)여성혐오에 대한 외침이 독백이 아닐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여성혐오에 저항하기 위해 ‘미러링’(Mirroring)을 구사하는 이들도 있다. 미러링은 여성혐오 발언을 반사해서 보여주는 것으로, 흔히 여성혐오 발언에 성별을 바꾸는 방식을 일컫는다. 이는 주디스 버틀러가 혐오 발언에 대한 저항으로 제시한 ‘되받아치기’와 관련이 있다. 버틀러는 『혐오 발언』에서 되받아쳐 말하기를 통해 혐오 발언이 그 차별적 기원과 맥락으로부터 이탈되고, 그 의미가 전복될 수 있다고 봤다. 그런데 현재 여성혐오에 대한 미러링이 유발한 ‘불쾌함’ 또한 논쟁적이다. 한편에서는 미러링이 사회를 분열시키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처럼 혐오에 혐오로 응수하는 폭력적인 행위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미러링은 여성혐오와 다를 바 없는 남성혐오임을 지적한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이러한 논란 자체가 미러링이 의도한 사회적 효과라고 말한다.

물론 무조건적인 혐오는 사회적 문제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농담처럼 치부되어 온 여성혐오 발언의 유구한 역사를 감안하면, 혐오가 비로소 사회적 문제로 부상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혐오의 표현을 두고 논쟁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차별적인 사회구조 자체에는 주목하지 않는 점도 문제다. 혐오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이 그 어느 때보다 예민한 지금. 지금이 바로, 일상적으로 벌어져 왔지만 문제화되지 못했던 수많은 혐오의 언행들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볼 때다.

유예현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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