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 해외취재
나성에 가다해외 | Humans in Los Angeles

25년 전, 4월 29일의 로스앤젤레스에서는 흑인 폭동이 일어났다. 백인 거주지역으로 향하는 길이 차단되면서 폭동의 인파는 인근의 한인타운으로 향했으며, 결국 수많은 한인 피해자를 낳았다. 올해는 그 429폭동이 25주년을 맞는 해이자 트럼프가 취임한 첫 해다. ‘나성특별시’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해외 거주 한인이 많은 로스앤젤레스, 2017년의 한국인들은 그 곳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대학신문』이 직접 방문해 들어보았다.

Sunny, 10년 거주
LA의 한인타운에서 오랜 시간 악세서리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써니 씨는, 사진에 찍히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셨으나 인터뷰에 응해주셨다.

“일단은 언어에서 오는 고충이 많았어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열심히, 또 성실히 살면 문제 없을거라고 생각하려 하지만, 시민권자가 아닌 영주권자로서 불안한 마음은 계속 가지고 있어요.”

김도형, 6년 / 박채연, 11년 / 박선하, 6년 / 권예은, 6년 5개월 거주
미국에서 대학교에 다니며, 마음이 맞는 친구들이 모여 ‘비디’(VIDI)라는 이름의 잡지를 발행하고 있는 네 명의 친구들을 우연히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미국에서 보낸 학창시절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도형: “LA폭동에서 한인타운을 지켜온 사람들은 지금까지 한인을 위해 인권운동을 하고, 비로소 한인이 국회까지 진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됐어. 하지만 어른들한테는 미쳤던 그 영향이 우리 세대에까진 미치질 못했어. 트럼프에 대해서? 내 생각이지만, 미국인 아닌 사람에게 자기 세금이 들어가는 것이 싫어서 트럼프를 뽑았다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진짜가 아닌데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정부는) 영주권, 시민권자들이 아닌 사람들한테 세금을 거의 안 써. 그건 어떻게 보면 말이 안 돼. 핑계야. 보기 싫어서. 진짜 그곳에 들어가는 세금은 막 말해서 우리가 내는 세금에서 몇 센트밖에 안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있어.”
예은: “미국에서 사는 한국인 학생들은 2세 아니면 FoB(Free on Board)으로 구분지어져요. 인종이 다르더라도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유학생 티가 나는 학생을 여기선 FoB이라고 불러요. FoB처럼 보이는 것이 싫어서 앞머리를 기르다가 그런 구분이 다분히 인종차별적이라고 느끼곤 ‘내가 왜 신경써야하지?’ 싶어서 다시 앞머리를 내렸어요.”
채연: “많은 사람들이 다른 인종에 대해서 자기가 가진 편견에 따라 생각하는 것 같아요. 우리와 같은 동양인도 그런 편견에 의해 길을 다닐 때마다 ‘강남스타일’ 노래를 들어야 하고요. 예전에 저는 알마니안을 싫어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차를 폐차시켜야 할 정도의 큰 사고가 났을 때 한 알마니안이 도움을 줬었어요. 그 때 저 또한 특정 인종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음을 깨달았어요.”
선하: “‘아시안피버’라는 말이 있어요. 아시안 여성들을 성적 대상화하는 말이에요. 저는 그런 형태의 인종차별을 정말 심하게 당했어요. 제 핸드폰을 남자 라커룸에 던져놓는다던지, 어떻게든 친해지고, 적응하고 싶어서 웃고 있으면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왜 웃냐?’ 며 조롱당한 적도 있어요. 정말 안 좋은 기억이지만 그래도 이제는 많이 나아진 편이에요.”

김이슬, 35년 거주
한인타운의 한 쇼핑센터에서 어머니와 함께 버블티를 나눠 마시고 있던 김이슬 씨는 35년 전 부터 미국에서 살아왔다. 한국인 노인들은 한인타운이 가장 안전하다는 생각에 그 밖을 벗어날 수 없음을 아쉬워 했다.

"오빠가 미군이라 처음 왔다가 35년 째 이 곳에 눌러 붙어서 살고 있어. 트럼프가 대통령 된 이후에 의료보험 같은 경우도 걱정이 많고. 25년 전 폭동도 TV로 접한 사람들은 얼마나 심각한지도 못느끼고 무섭다고만 생각했을거야. 이제는 살았던 사람도 점점 잊어버렸을 거고….

이 동네는 총기사고도 그렇고 항상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지만 우리같은 사람들은 뉴스로만 겨우 그런 사건들을 접하는데, 항상 상기하면서 살아야 해.”

이유진, 1년 거주
미국의 한 회사에서 일하게 돼 미국에 온 이유진 씨는 한국과는 다른 문화를 크게 실감하고 있었다.

“인종차별이 많이 나아졌다곤 하지만 여전히 은연중에 느껴지는 인종 간 위계가 있어요. 바닷가를 걷다 보면 차에 탄 백인 남자들이 휘파람 부는 식의 캣콜링도 잦고요. 아니면 우버풀*을 탈 때 백인도 타고 멕시칸도 타고, 다양한 인종이 섞여서 탈 때가 있는데 운전 같이 가면서 얘기를 하잖아요. 같은 백인끼리는 서로 인사도 나누는데 나한테만 말을 안거는 경우가 있어요.

반대로, 한국인이 멕시칸을 차별하는 경우도 잦아요. 회사에서 야근을 한다거나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는 ‘너 멕시칸이냐?’는 식의 심한 농담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백인에겐 멕시칸, 흑인, 아시안이 다 같은 취급을 받아요.”

*우버풀 : 택시 어플 ‘우버’에서 목적지가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한 대의 택시를 공유하는 기능.

LA의 사람들은 트럼프의 취임 이후로, 그리고 폭동 이후 25년이 지금까지 자신이 사는 세상에서 크게 바뀐 것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다들 조금씩 마음 속의 불안을 안고 있거나, 혹은 크고 작은 인종차별을 겪고 있었다. 또한 한국 사회의 자잘한 문제점들이 LA에서도 마찬가지로 보여지고 있었다. 과연 언제쯤 모든 사람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김명주 전임기자  diane1114@snu.kr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많이 본 뉴스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