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문을 나서며
나는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욕심쟁이였다. 가만히 따라가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자꾸 일을 벌였다. 20대 초반의 나의 불타는 열정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해 여러 번 소진을 경험하기도 했다. 때로는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때로는 정신적으로 고갈돼서 내가 나를 제어할 수 없던 적도 있었다. 이유 없는 휴학도 해보고, 한 학기를 엉망으로 망쳐버리기도 하고, 무엇을 했는지 잘 기억조차 나지 않는 심심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런 의미에서, 그다지 성공적으로 대학 생활을 했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시간이 나를 만들어 줬다고 생각한다. 예상치 못한 장애물을 만나고, 나 스스로 지쳐 쓰러지기도 하고, 때로는 넘어졌던 여러 가지 경험들은 곧 나를 비춰 주는 거울이었다. 넘어질 때마다 지친 몸과 마음을 돌아보며 다독일 수 있었고, 다시 일어나는 경험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성공적이지 못한 순간들이 모여 나를 만들었기 때문에, 결국 나의 대학 생활은 성공적이었다.
이런 성공적인 실패 경험들이 4년간 차곡차곡 모여, 평생을 바치고 싶은 꿈의 윤곽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몸담아왔던, 곁에서 지켜봐 왔던 장면들이 겹쳐지며 ‘스포츠를 삶으로 가져오는 것’에 대한 목표를 세웠다. 체육활동이 주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학교 곳곳에서 느껴왔기 때문이다. 교내외 체육활동에 참여하고, 학내 체육활동 소식을 전하고, 체육 관련 행사를 지원하면서 느낀 것은 ‘하는 사람만 한다’는 것이었다. 기존에 운동을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무대를 만들어 주는 데 그칠 뿐, 새로운 참여를 끌어내서 지속적인 참여로 발전시키는 데는 한계가 느껴졌다.
지난해 겨울, 학부 생활을 1년 남겨두고 나의 대학 생활을 돌아보며 여느 때보다도 진지하게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나는 대학에서 무엇을 배웠으며, 체육교육을 공부하는 나는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내가 경험하고 공부한 내용을 종합하고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배운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두 가지 단기 목표를 세웠다. 첫 번째 목표는, 나의 앎을 정리하고 철학을 확고히 정립하기 위해 중등임용시험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 목표는 교내에 초심자들을 위한 운동부를 만들어 스포츠를 즐기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것이었다.
수업에서 책에서 배운 동기부여, 팀 빌딩, 리더십과 응집력 등의 내용을 직접 현실에 적용하면서 서울대학교 여자 핸드볼팀을 만들었다. 공부가 배움으로 전환되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크레파스를 구매하여 홍보 포스터를 만들고, 기존 핸드볼부 구성원들의 도움을 받아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시작했다. 팀원을 모집하고 훈련을 진행하고, 대회를 준비하면서 수험생답지 않은 1년을 보냈다. 시험준비에 방해가 될 것을 각오하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돌아보니 이것이 가장 큰 공부가 되었다.
그동안 대학 생활을 통해 배운 모든 것들이 하나로 융합되어, 실체화되는 모습을 바라보는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제대로 운동 한번 해본 적 없던 다양한 전공의 여학우들이 핸드볼 경기를 뛸 수 있게 되고, 팀 안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팀워크를 만들어 가는 것이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그리고 스포츠가 팀원들의 삶 속으로 녹아 들어가는 모습에서 내 꿈의 축소판을 보았다. 이제 나는 꿈을 향한 용기와 희망을 품고 교문을 나선다.
교문 밖에는 생각지도 못한 장애물들과 닦이지 않은 험한 길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욕심을 가지되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지름길을 찾지 않고 조금은 돌아가는 길을 즐기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예상치 못한 풍경에 놀라기도 하고, 잠시 쉬어가며 바람 냄새 흙냄새에 흠뻑 젖어보기도 하는 그런 길을 걸으며 소소한 행복들로 삶을 채워나가고 싶다. 교문을 나서는 모든 이들이 자신의 행복을 만들어 나가길, 때로는 돌아가는 길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기를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