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이들에게

서영채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교수

무사히 학업을 마치고 기쁜 마음으로 학교를 떠나는 학생들에게 덕담 한마디 건네는 일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겠습니다. 주어진 일 열심히 하면서, 남들 생각도 좀 하면서, 서울대를 나왔다는 것이 대단한 벼슬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국민 세금으로 덕을 봤으니 그런 생각 잊지 마시고, 좋은 일 하면서 잘들 사시기 바랍니다.

제가 정작 마음이 쓰이는 사람들은 길 잃은 사람들입니다. 졸업하는 마당에 길 잃은 사람이라니요! 신입생들에게라면, 한 작가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해줄 수 있겠습니다. 그때 내가 길을 잃지 않았다면 어디서 그런 아름다운 꽃을 만날 수 있었겠냐고, 제대로 길을 잃어야 나이 들어서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거라고. 기운이 넘치는 신입생이라면 무슨 말을 해도 자기식으로 알아듣고 소화할 것이기 때문에 그래도 괜찮겠다 싶어요. 하지만 졸업을 하는 데도 길을 잃었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어렵군요.

문득 기억 속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제가 마음으로 존경했던 한 선생님이 어느 날 혼자인 듯 투덜거렸습니다. 학교에게 당신께 학부생들 면담을 하라고 한다고, 그런 것은 인생을 제대로 살고 인생이 뭔지도 좀 알고, 뭐 그런 사람이나 할 수 있는 거지, 내가 그런 걸 어떻게 하겠냐고. 우연히 그 자리에 있게 된 저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 선생님이야말로 가장 확실하고 단단하게 자기 길을 가고 있는 분으로 보였던 탓입니다.

그 무렵 처음 뵙게 된 또 한 선생님은 첫 발성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내가 참 울분이 많아요.” 성공적으로 커리어를 마치고 은퇴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동안 이뤄낸 업적으로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선생님이 입에 올리신 울분이라는 단어가 아이러니나 농담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들어보니 구구절절이 진짜 울분들이었고 어떤 대목에서는 매우 공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이상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렇게 훌륭한 분이 아직도 울분에 대해 말씀하시다니.

두 선생님은 그 후로도 지침 없이 당신들의 길을 가셨습니다. 한 분은 길이 없다고 생각해선지 좌충우돌, 몸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면서 길을 뚫어 나가셨고, 또 한 분은 길이 있는데 다른 사람들과 자기 운명이 부당하게 그 길을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해선지 분투심을 발휘하여 길을 만들어 가셨습니다. 당자들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시겠지만, 두 분은 모두 존경받아야 마땅한 분입니다. 최소한 제게는 그렇습니다.

생각해보니, 저는 한 번도 길을 잃은 적이 없었군요. 길이 저를 잃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런 건 길한테 물어봐야 알겠지만, 어쨌거나 그게 저의 일은 아닌 것 같군요.

이렇게 말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통쾌할까요. 인생에 대한 저런 시적 오만은 사랑받아 마땅합니다. 저런 사람에겐 길이라는 것 자체가 아예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라면,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고, 뼈저린 후회를 마음에 묻고 사는 것이 상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예외가 아님은 물론입니다. 몇 번의 강렬한 행운이 저 자신을 버틸 수 있게 해줬을 뿐입니다. 그래서 길 잃은 사람들에게 저는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별로 없습니다. 길을 찾는 일에 관한 한 저는 아무런 이야기도 못 합니다.

그러니 여기까지 읽어온 분들께 미안하지 않을 수 없군요. 길 잃은 사람들이 나 말고도 적지 않다는 사실에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길을 잃었다는 걸 알고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합니다. 정말로 곤란한 것은 길을 잃었으면서도 그런 줄 모르는 사람들이니까요. 정말 이런 정도밖에 없을까 싶어 괴로운 마음을 쥐어짜 보니, 길을 잃고 헤맸던 시간들이 불쑥 한 마디 덧붙여주네요. 길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라고, 방향을 놓치지 않으면 길은 반드시 나타난다고, 앞에서가 아니면 당신이 걸어가는 뒤에서라도 생겨나기 마련이라고요. 바라건대, 포스가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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