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이들에게

강연수
의학과·15

지금까지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졸업을 축하합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건네야 하는 말일 테죠. 지금 졸업을 마주하고 얼마나 만감이 교차할지 지금의 저로선 헤아릴 도리가 없습니다. 졸업에 대한 기대와 학교에서의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떠난다는 후련함,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불안감. 서울대에 처음 합격했을 때 밀려오던 수많은 감정과는 또 다른 감정이겠죠? 이 하나하나의 감정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지도를 보며 학교를 익혀가던 새내기 시절부터 건물 사이를 오가는데 어떤 길이 가장 빠른지를 알려줄 수 있게 된 고학년 시절까지 켜켜이 쌓여 온 것일 겁니다. 이제 이 감정들을 껴안고 대학생이라는 신분을 떠나 나아갈 선배들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졸업을 준비하던 모습이 기억나네요. 조금이나마 어깨너머로 지켜본 것이 전부지만 모든 것을 쏟아내며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이 대단했고 존경스러웠습니다. 그 모습에서 학교 구석구석에 선배들이 보낸 시간 동안 쌓인 웃음, 눈물, 한숨들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선배들의 모습들, 길을 잃었을 때 도움을 주던 손길, 후배의 고민에 진지하게 답해주던 따뜻함, 동아리를 걱정하며 보여줬던 열정이 생각났습니다. 이런 기억 덕분에 이제 선배들이 졸업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제가 울어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선배들 자신의 서울대에서 보냈던 눈부신 시간은 어땠나요? 서울대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자신의 세상이 한층 넓어지던 그때를 기억하시나요? 대학에서 처음으로 겪을 수 있던 수많은 일과 감정.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얼굴들을 보고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는 사실에 부풀어 오르던 기대감. 신입생 환영회에서 동기들, 선배들을 처음 만나는 순간의 설렘. 주량을 알겠다고 처음 도전적으로 술을 들이키던 때의 신남과 일말의 걱정. 우연히 본 동아리 홍보지에 끌려서 시작한 동아리 활동에 대한 떨림. 대학생이 되기 전 로망이었던 미팅에 나갔을 때의 긴장감. 배낭 하나만 들고 떠나려고 마음먹은 날 이루지 못하던 밤잠. 장터를 준비하고 진행하며 동기들과 느꼈던 유대감. 또 처음으로 경험하는 부정적인 감정들도 있었죠. 밤새 레포트를 작성하고 시험을 위해 공부하던 때의 초조함. 원하던 수업을 놓치고 새로 시간표를 짜던 때의 허탈감.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슬픔. 부조리함을 느끼고 이를 바꾸기 위해 나섰던 때의 두려움. 나의 힘이 미약하단 것을 느꼈을 때의 무력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나섰던 순간의 벅참. 처음 맞이했던 이 감정들은 지금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나요? 졸업이 다가올수록 얕은 색채였던 감정들은 터지고, 때론 섞이고 사그라들기도 하며 더 깊은 색채를 띠고, 더 다양해져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색채들은 졸업 후에 나아가, 하나의 그림을 그려낼 밑바탕이 돼줄 것입니다.

선배들은 이 서울대를 출발선 삼아서 새로운 길을 떠나겠죠. 저는 여기서 감히 한 가지를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선배들이 서울대에서 지냈던, 그 순간들이 빛났다고 행복했다고 여기더라도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선배들의 ‘지금’에 최선을 다해 부딪치고, 그 ‘순간’에 오롯이 매진하시면 좋겠습니다. 서울대에서 보낸 시간은 추억으로 남겨두고 현재에 매진해 어떤 방향으로든 앞으로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어떤 방향이든 좋습니다.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처럼 인생을 나아가는 것에 옳은 방향은 없으니까요. 그저 한 획, 한 획에 집중해 계속 그려나가는 것이 중요할 뿐입니다. 선배들이 그동안 서울대에서 쌓은 경험, 인연들은 선배들이 나아가는 그 길을 계속 나아갈 수 있고 후회가 없도록 다양한 색채로 물들이는 것을 도와줄 것입니다.

각자만의 다양한 길을 나아가주십시오. 그동안 쌓은 선배들만의 색채로 각자만의 그림을 그려내 주십시오. 우리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어 우리만의 다양한 길을 나아가겠습니다. 다양한 그림을 그려내겠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길을 나아가는 선배들의 앞날에 축복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번, 수고 많으셨고 졸업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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