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흥식 교수
의학과

정성스럽게 진열된 저서들로 가득한 분당 서울대학교병원 연구실에서 만난 강흥식 교수(의학과)는 엑스레이 사진을 분석하며 환자들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생각보다 덤덤하고 벌써 정년인가 싶다”며 “마음은 아직도 청춘인 것 같다”고 정년 퇴임 소감을 전했다. 이어 강 교수는 “운 좋게도 뛰어난 후임들을 만나 퇴임 후 학계에 대한 걱정은 없다”고 말했다.

강흥식 교수는 방사선과학을 전공해 지금은 근골격계 전문 영상의학과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내가 방사선과학을 전공할 당시엔 서울대에 이 분야 교수가 3명뿐이었다”며 “앞으로 기술이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방사선과학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이후 강 교수의 기대대로 방사선 과학 분야는 MRI의 등장 이후 의학계에서 입지가 매우 강해졌다. 그는 “과거와 달리 세상이 워낙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에 유망했던 분야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흥식 교수가 방사선과학을 전공으로 선택했을 때는 방사선과학 전공의들의 입지도 크지 않았다고 한다. MRI가 개발되기 전 방사선과학과는 엑스레이를 분석하는 역할만을 했기 때문이다. 불모지였던 방사선과학 분야 중에서도 정형외과의 영향이 컸던 근골격계를 전공한 강 교수는 “엑스레이는 원래 정형외과에서 담당하던 분야였기에 정형외과의 텃세가 심한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MRI 발명 후에는 영상을 판독하려면 영상 형성 원리를 잘 알아야 하고 해부학 분야의 깊은 지식이 있어야 했기 때문에 정형외과 의사들이 판독하기엔 무리가 있었다”며 “MRI 사진을 보여주면 정형외과 의사들이 깜짝 놀라곤 했다”고 밝혔다.

강흥식 교수는 『MRI of the Extremities: An Anatomic Atlas』라는 책을 출판하면서 방사선과학계에서 이름을 알렸다. 그는 “당시 MRI 판독법을 사진과 그림으로 설명한 책이 꼭 필요했지만 아무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며 자신의 책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 책은 의학계 최고 권위 학술지인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북리뷰가 게재되는 등 MRI 판독 분야의 교본으로 인정받았다.

강흥식 교수는 한국 의학계가 많이 발전했지만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전에는 한국 의사가 타 논문에 인용되는 빈도가 매우 높은 SCI급 논문을 쓰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지만 지금은 레지던트 과정 의사들도 SCI급 논문을 많이 쓴다”면서도 “한국은 교수들의 평가가 논문 수를 기준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정작 속을 들여다보면 논문의 질이 낮은 경우가 많고, 학계의 흐름을 바꿀 정도의 논문이 매우 드물다”고 말했다. 그가 제정한 ‘강흥식 근골격영상의학상’은 근골격 영상의학 분야 논문을 SCI급 저널에 제1저자로 가장 많이 발표한 연구자에게 주는 상이다. 강 교수는 “논문을 많이 쓴 사람보다 질이 좋은 논문을 쓴 사람에게, 그중에서도 연구를 도맡아 한 제1저자에게 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후배 의사들에게 전할 말을 묻자 의사가 의사 본연의 임무에서 벗어나 경제적인 이윤만을 중시해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강흥식 교수는 “의사가 환자와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는 자세가 필요한데, 의사가 환자를 을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며 “환자를 배려해 비싼 검사나 약 없이 치료하는 의사가 돼야 한다”고 전했다.

사진: 대학신문 snupress@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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