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 교수
약학과

약속 시각에 맞춰 도착한 김영철 교수(약학과)의 연구실에선 논문 수정 과정이 한창이었다. 인터뷰 중에 그의 지도학생들이 찾아와 발걸음을 돌리기도 했다. 이미 쉬지 않고 30여 년 달려온 연구의 길이지만, 그에겐 멈추고자 하는 기색이 없었다. 김 교수는 코끝에 안경을 걸친 채 때론 천장을 바라보며, 때론 시선을 마주치며 천천히 질문에 답해나갔다. 그는 정년의 소감을 묻는 질문에 특히나 오랫동안 고민했다. 침묵 끝에 오 교수는 “아쉬움은 있지만, 미련은 없다”며 정년의 소회를 밝혔다. 짧은 소감이었을지는 모르지만 그가 걸어온 길은 결코 짧지 않았다.

김영철 교수가 미국 유학을 떠났을 당시 미국 약학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야는 화학물질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독성학이었다. 독성학은 산업혁명 이후 무분별하게 쏟아져 나온 화학물질에 대한 뒤늦은 경각심에 막 태동하고 있었다. 김 교수는 “교수가 되겠다는 욕심이 있었더라면 한국에서 주류가 아닌 학문을 연구하진 못했을 것”이라며 “평생 연구만 하며 살아도 되겠다는 마음을 먹은 뒤였기에 하고 싶은 공부를 택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몇 년 뒤 서울대가 독성학 전공을 개설하려 했을 때 동문 중 독성학을 전공한 이는 그밖에 없었다. 김 교수는 “결국 교수가 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도리어 나를 교수로 만들었다”며 웃었다.

김 교수는 35년간 이뤄온 자신의 연구 인생을 ‘인간이 만든 물질이 인간에게 해가 되지 않게 노력한 것’이라고 정리했다. 특히 그는 다양한 산업물질이 간에 미치는 영향에 집중해 간세포가 어떻게 독성 물질을 해독하는지에 관심을 갖고 연구에 열중하고 있다. 최근 그는 활성산소로 인해 생기는 산화적 스트레스를 해독하는 물질을 찾아 연구 중이다. “외계인이 침략하지 않는 이상 인류는 인류의 손에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오 교수의 말에는 산업의 발전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연구의 발전속도에 대한 진심 어린 우려가 들어있었다. 그는 앞으로 새로 생겨난 산업물질을 연구하고 평가하는 일에 부단히 힘쓸 것을 후학들에게 부탁했다.

김영철 교수는 연구활동만큼 그에게 중요한 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돕는 일을 꼽았다. “기운 가세 때문에 연구자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할 것으로 생각해 좌절감을 가지고 살았었다”고 회상한 김 교수는 “방황하고 좌절하는 학생들을 보면 내 어린 시절이 생각나 눈에 밟힌다”고 했다. 그는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보면 지나치기 힘들어 따로 불러내 이야기를 나누며 고민했다”며 “앞으로도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은 주저하지 말고 내 연구실 문을 두들겨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쉬지 않고 연구를 계속해온 결과 김영철 교수의 이름 아래 발표된 논문은 170편이 넘는다. 하지만 정작 김 교수는 그의 연구성과를 묻는 말에 대단할 것이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내 논문들이 그 자체로 완전한 결과를 냈는지 모르겠다”며 “내 연구가 다른 이들에게 아이디어가 돼 다른 연구들이 계속된다면 그것으로 과학자의 사명을 다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앞으로 아내와 여행을 다니며 잠깐 쉴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의 연구만은 후학에게로 이어져 멈추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사진: 박성민 기자 seongmin41@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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