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광풍을 일으키던 암호화폐 투자의 기세는 점점 꺾여가는 듯하다. 재테크에 관심이 없었던 학생, 주부 계층도 끌어들이며 열기를 더한 암호화폐 시장은 연일 하락세를 보이며 쇠락해가고 있다. 그동안 학계와 각종 커뮤니티에선 암호화폐의 가치와 장래에 대한 논쟁이 지속됐다. 더욱이 정부에서 과열된 비트코인 시장을 식히기 위한 새로운 법적 규제를 제정한 데 따라 한국의 경직된 투자 환경에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등장했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암호화폐 투자는 실패한 신화가 돼가는 모양새다.

국가 성장에 투자가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고려할 때 투자에 대한 국민적 이해와 투자 환경의 변화는 중요한 문제다. 비트코인의 등장 이후 암호화폐라는 신규 투자 분야에 대한 민간의 관심은 높아졌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전문 투자 이론은 그만큼 보급되지 못했다. 이에 『대학신문』에선 암호화폐 투자의 성격을 투자 이론으로 풀어내 보면서 몰락으로 이어진 암호화폐의 근본적 문제점을 짚어본다. 그리고 신규시장 제재가 촉발한 암호화폐의 기술적, 화폐적 논란에 대해 학계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투자와 도박, 그 이론적 경계

암호화폐 투자의 성격을 살피기 전에 암호화폐 투자를 투자로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한다. 투자의 엄밀한 의미는 무엇일까. 채준 교수(경영학과)에 따르면 투자는 원론적으로 미래의 더 큰 소비를 위해 현재 소비를 연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채준 교수는 “수중에 쥔 돈을 쓰지 않고 저축하는 것부터 등록금을 내며 대학을 다니는 것까지, 이 정의에 해당하는 모든 행위는 일종의 투자”라고 설명했다. 그중 채권이나 주식 등 금융상품을 매매하는 금융자산투자와 기업이 생산 목적으로 자본재를 구매하는 실물투자가 대표적인 투자 형태다. 특히 민간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투자라는 말은 주식 투자를 필두로 한 금융자산투자에 가깝다.

현실에서 투자가 결정되는 과정엔 수익성과 위험성이 중요하게 고려된다. 채준 교수는 “투자가 수익을 낳기 위해선 투자된 자본으로 새로운 부가가치가 창출돼야 한다”고 말했다. 주식 투자의 경우 이를 주식발행 주체 기업의 현금창출능력이라고 일컫는다. 김정욱 교수(경영학과)는 “기업의 현금창출 능력이 올라가면 주가도 오르고 주식투자자들은 주식가격상승과 배당을 통해 수익을 올리게 된다”며 주식 투자에 있어 기업의 현금창출능력을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기대수익률과 위험성은 정비례하는 경향이 존재한다. 이는 기대수익률이 보상받을 수 있는 위험을 지는 것에 대한 대가적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채준 교수는 “투자의 근본적인 원리는 고수익-고위험”이라며 “높은 이윤을 얻기 위해선 그만큼 위험을 크게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투자자는 바라는 수익의 규모에 따라 위험 부담의 크기를 합리적으로 선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누구도 자신의 투자 기간에 기업이 얼마큼의 돈을 벌 것인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김정욱 교수는 “미래 예측은 주관적 요소와 심리적 요소에 영향을 받는다”며 “월가에선 이를 강조해 ‘주식 투자는 예술’이라는 말까지 한다”고 말했다. 이에 그는 “당연히 주식투자에 도박적 성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학계에서 주식투자자들의 도박적 성향에 관한 이론적, 실증적 증거도 보고되고 있다. 시야휘 가오 교수(미국 메릴랜드대)와 시춘 린 교수(홍콩대)는 2010년 재무 분야 저명 학술지인 「Review of Financial Studies」에 로또 시장과 주식 시장의 거래량을 비교한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에서 두 교수는 ̒로또 상금이 5억 타이완 달러를 넘는 잭팟 상황에서 개인의 주식 거래량이 일관되게 5~9%가량 감소하는 것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는 개인 투자자들이 주식 투자를 흥미로운 도박행위와 대체 가능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규 기업이 자금 공모를 목적으로 설립 후 처음으로 외부투자자에게 주식을 공개하고, 이를 매도하는 업무인 IPO(Initial Public Offering)가 진행될 때, 기업 가치에 버블이 생기는 현실의 경제 현상도 투자의 도박적 성격을 지지한다. 니콜라스 바베리스 교수(미국 예일대)와 밍 후앙 교수(미국 코넬대)는 2008년 「American Economic Review」에 기고한 논문을 통해 IPO 당일에 주가가 폭등하는 현상은 투자자들이 성공확률이 낮은 사건에 과한 가중치를 두고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도박적 성향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투자이론으로 들여다본 암호화폐 시장과 그 위험

암호화폐 투자도 미래의 더 큰 수익을 기대하며 위험을 감수한다는 점에선 일반 투자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암호화폐 투자는 여타 금융상품투자와 달리 변동성이 매우 커 도박적 성격과 그에 따른 위험이 극대화된다. 이는 암호화폐가 주식 투자처럼 부가가치를 만드는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정욱 교수는 “현재로서는 암호화폐라는 재화의 가치가 본질적으로 매우 불확실하다”며 “내재적 가치에 따라 책정된 가격이 존재하지 않아 수요 변화에 따라 가격이 급등락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재화의 근본적 가치가 달라지지 않아도 이상 열기로 가격이 급변하는 것은 도박적 투자의 한 특징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암호화폐 투자에는 엄청난 위험이 따른다.

암호화폐 투자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전통적 IPO 투자처럼 암호화폐를 만드는 기업의 ICO(Initial Coin Offering) 단계에 투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익히 알려진 암호화폐 거래다.

◇ICO 투자의 위험=ICO는 암호화폐 개발 업체에서 투자 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자사에서 개발한 암호화폐의 일부를 현금이나 다른 암호화폐를 받고 넘겨주는 것이다. 암호화폐를 만드는 기업의 기술에 투자하는 것으로 볼 수 있어 암호화폐 매매보다 일반적인 투자 개념에 더 부합된다. 2017년 9월 금융위는 우리나라에서 ICO를 금지한다고 발표했으나 아직 법제화된 바는 없다.

ICO는 IPO에 비해 실패할 위험이 훨씬 크다. 벤처기업 중에서도 성공적으로 살아남은 소수의 건전한 기업들만이 IPO를 하게 된다. 또 상장을 위한 엄격한 조건과 심사도 마련돼 있다. 그러나 ICO의 경우 상장심사나 규제, 감독기관 없이 가상화폐의 미래가치에 대한 전망 하나로 투자자금을 모집한다. 그 과정에서 전문 투자자들 이외에 개인들도 쉽게 참여할 수 있어 특히 문제가 된다. 김정욱 교수는 “암호화폐 투자자 상당수가 코인 열풍이 몰아치며 코인 가격이 오를 거라는 막연한 기대로 뛰어든 사람들”이라며 “전문분야 지식이 없는 이들이 효과적인 관리, 감독자가 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심지어 벤처 캐피탈리스트나 엔젤 투자자*의 관리하에 있는 전통적 재화를 만드는 기업도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며 암호화폐를 만드는 벤처기업의 ICO는 심각한 실패를 낳을 수 있음을 지적했다.

ICO 참여 기업이 만들고 있는 암호화폐라는 재화의 가치가 불안정한 것도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어떤 회사가 가진 기술의 가치는 회사가 생산한 재화의 가치에 연동된다. 만일 암호화폐의 가치가 불확실하다면 회사는 기술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블록체인에 기반을 둔 다른 획기적인 상품을 개발해 내야만 한다. 김정욱 교수는 “이런 투자가 갖는 불확실성은 일반 재화를 만드는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경우보다 결코 작지 않다”고 밝혔다. 또 “설혹 어느 기업이 획기적인 블록체인 기술 기반 제품을 만들어 생존한다더라도 그 기업이 내가 투자한 기업일 확률은 낮다”고 덧붙였다.

◇암호화폐 거래가 갖는 위험=암호화폐 투자의 다른 방식은 이미 발행된 암호화폐를 사고파는 것이다. 작금의 상황에서 암호화폐에 투자한다는 것은 이를 일컫는다. 김정욱 교수는 암호화폐 거래의 경우 투자 수익은 블록체인 기술에서 파생된 상품의 가격 변화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현재 암호화폐 투자가 수익을 내려면 암호화폐를 구매한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에 판매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시장에 끊임없이 투자자들이 유입돼야 하고 결국 거대한 버블이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암호화폐 투자로 인한 버블은 신규 투자자의 폭발적인 유입을 막는 장치가 없어 기존의 버블에 비해 더 위험하다”고 경고하며 20세기 말 IT 버블의 사례를 들었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인터넷 관련 분야가 성장하며 IT 기업의 주가는 치솟았다. 결국 신규투자자들이 고액의 주식을 사는 것에 자금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에 투자자 유입이 줄었고 버블도 꺼졌다. 그런데 주식 한 주를 쪼개어 거래할 수는 없는 것과 달리 암호화폐는 코인 하나를 몇십만 분의 일로 나누어 거래할 수 있다. 따라서 암호화폐 시장에선 소규모 무지한 투자자들이 코인 열풍에 휩쓸려 유입되기 쉽다. 김정욱 교수는 “이것이 암호화폐의 휘발성과 그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더욱 염려스러운 이유”라고 주장했다.

정부규제는 암호화폐의 위험을 막을 수 있을까?

◇투자자 보호를 위한 안전장치=투자가 가진 위험성과 도박적 성격 때문에 각국 정부는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 안전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 주식 투자의 경우 회사들에 엄격한 상장기준이 요구된다. 회사가 상장된 이후에도 정기적, 비정기적으로 투자자들에게 회사 관련 정보를 공시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더욱이 주식 시장의 가격 등락 폭이 지나치게 클 경우 거래를 일시적으로 제한하는 조치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 같은 안전장치에도 주식 투자는 여전히 채권을 비롯한 여타 금융상품보다 변동성과 위험성이 크다. 지난 2001년 미국의 거대 에너지 기업 ‘엔론’이 분식 회계*와 주가 조작 등 불법행위를 저질러 투자자들에게 수백억 달러의 손실을 입힌 바 있듯이 안전장치가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에 투자론에서는 투자 기간이 단기간일 경우 주식과 같은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를 피하거나 비중을 낮게 가져갈 것을 권한다.

암호화폐는 주식보다 위험성이 큰 자산이다. 따라서 암호화폐 시장이 과열되는 양상을 보이자 정부에서도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 법적 조치를 내놓았다. 지난 12월 정부는 보도 자료를 통해 “시장 과열을 막기 위해 1인당 거래 한도 설정을 검토하고 있다”며 “은행 실명확인 시스템을 구축할 때까지 암호계좌 발급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후 법무부에서 암호화폐를 ‘사기성 버블’ ‘불법 도박 행위’로 규정하고 암호화폐 폐쇄법안 설명 자료를 발표했다. 거래소 전면 폐지 가능성도 언급되며 정부에서 암호화폐 시장을 죽이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결국 지난 1월 23일 정부는 공식 발표를 통해 실명이 확인된 사람들에게만 암호화폐 거래를 허용해주는 거래 실명제를 1월 30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실명확인을 엄격하게 진행한다는 전제 하에 암호화폐 신규투자도 허용됐다. 당국은 이를 통해 청소년과 국내에 거주하지 않는 외국인을 가려낼 뿐만 아니라 암호화폐로 자금세탁을 하려는 행위도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정부 차원에서 거래를 관리하면서 암호화폐 거래에 양도소득세를 부과하고 거래 한도를 설정하기 위한 기초자료를 작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해당 규제의 실질적인 효과에 대해 학계에서는 회의적인 물음도 제기되고 있다. 일본 금융청 히미노 료조 차관은 지난해 12월 1일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제10차 금융감독 협력 세미나’에서 ‘거래소 관리, 감독을 위해 거래소 인가제를 도입했더니 이것이 마치 정부가 코인을 인증했다는 오해를 야기해 오히려 투기가 조장됐다’고 말했다. 이에 일본처럼 정부의 규제 발표 이후 투기성 자본 유입이 심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더욱이 시장 과열을 억제하기 위해 거래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다. 채준 교수는 “카지노에 가지 못하게 한다고 도박이 없어지진 않는다”며 “투자는 개인의 자유의지로 남겨두되 그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알려주고 범법행위만을 처벌하는 방식으로 규제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 정부의 규제 발표에 대한 더 근본적인 비판은 그것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인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을 저해하며 암호화폐의 잠재적 가치를 잠식시킨다는 것이다. 해당 주장은 과연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은 분리될 수 없는가’ ‘암호화폐는 활용 가치가 있는가’ 라는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폐의 분리 가능성=지난 1월 18일 <가상화폐, 신세계인가 신기루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JTBC 긴급 토론회에서 정재승 교수(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는 ‘암호화폐는 규제하면서 기반이 되는 블록체인 기술만을 발전시키자는 것은 생태계에 꽃은 좋은데 벌은 죽이자는 이야기’라며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거래가 성립하기 위해선 채굴을 도와주고 장부를 기입한 사람에게 보상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블록체인협회 김진화 대표는 ‘이때 인센티브로서 가장 잘 기능할 수 있는 게 암호화폐’라며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폐가 필수불가결한 관계를 맺는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염헌영 교수(컴퓨터공학부)는 “이는 암호화폐 생태계에 한정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염 교수는 “비트코인, 암호화폐 생태계는 블록체인 기술이 구현되는 수많은 사례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며 “암호화폐는 블록체인 기술 없이 운용되지 않지만 블록체인 기술 자체는 암호화폐 없이 존재할 수 있고 충분히 잘 쓰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블록체인 기술은 분산된 장부를 한 개인이 독점하지 않고 공유하면서 정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게 하는 기술이다. 장부에 새로운 정보가 기입되려면 장부를 가진 구성원들이 모두 동의를 받는, 이른바 분산된 동의 프로토콜 과정을 거친다. 이에 특권을 가진 소수가 임의로 정보를 조작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암호화폐는 이런 아이디어를 화폐 발행과 거래에 적용한 것이다. 화폐에 대한 독점적 지위를 가진 중앙은행이 담합과 조작을 할 수 있다고 의심해보자. 이 문제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거래 장부를 작성해놓고 누군가 해시 퍼즐*을 풀어 결괏값을 계산해 놓기만 하면 해결된다. 장부에 점 하나만 추가돼도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계산된 결과를 서로 비교해보면 어느 장부에서 조작이 일어났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계산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모되기 때문에 보상으로서 암호화폐를 지급한다.

염헌영 교수는 연산 작업을 할 사람을 사전에 정해놓거나 구성원끼리 분산된 동의 프로토콜을 진행하자고 약속하면 암호화폐의 필요성은 소멸한다고 봤다. 또 구성원이 실시간으로 필요한 정보를 얻고 이에 대한 완벽한 보안이 이뤄지는 것 자체에서 자발적인 참여 동기를 찾을 수도 있다. 그는 보상이 꼭 필요하다면 수수료가 그 기능을 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염헌영 교수는 “거래를 장부에 기록하고 이를 계산하는 사람에게 개인이 일반 화폐로 수수료를 지급하면 된다”며 “지금도 암호화폐를 거래할 때 거래소에 비트코인을 수수료로 지급하는데 비트코인보다 일반 화폐가 더 안정적인 보상체계로서 기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암호화폐가 현실에서 쓰이는 양상을 보아도 블록체인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염헌영 교수는 “초기에 암호화폐는 익명성이 필요한 분야에 널리 쓰였다”며 “자본 이동을 엄격히 제한하는 중국에서 무역업자들이 수익을 신고하지 않기 위해 비트코인을 사용한 게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이외 나머지는 거의 투기성 자본으로 활용되는데 이들은 블록체인 기술과 전혀 무관하다”고 덧붙였다. 더욱이 최근 일본의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대규모의 암호화폐가 해킹된 사례를 봐도 암호화폐 자체는 보안이 완벽한 블록체인 기술과 완전히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암호화폐의 화폐로서의 가치=암호화폐 규제에 대한 다른 핵심은 암호화폐가 화폐로서 가치가 있느냐, 현재 가치가 없더라도 앞으로 발전한다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느냐다. 김영식 교수(경제학부)는 화폐가 갖춰야 할 두 가지 조건으로 신뢰와 거래 기록의 기능을 꼽았다. 사람들이 그 화폐가 가치가 있다고 믿어야 하며 화폐가 이전에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 거래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김영식 교수는 “얼핏 암호화폐는 두 필요조건을 만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통상적인 화폐에 비교해 발생하는 자원비용이 과도하다는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난 1년간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채굴에 사용된 전력비용은 시리아와 아제르바이잔 같은 중동 국가가 1년 동안 소비한 전력비용과 같다. 염헌영 교수는 “이같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암호화폐를 채굴해 얻는 가치가 그 돈으로 학문과 산업에 투자해서 얻을 수 있는 가치보다 더 큰지는 의문”이라고 밝혔다.

암호화폐가 화폐이기 위한 필요조건을 만족한다고 해도 화폐가 수행하는 기본적인 기능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무가치하다는 의견도 있다. 김정욱 교수는 “화폐는 가치척도의 기능을 가지고 일반적 수용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암호화폐의 가격은 변동성이 매우 심하기 때문에 다른 재화의 가치를 나타내는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 암호화폐가 일반적 수용성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화폐가 수용되기 위해선 가치에 대한 보장이 이뤄져야 한다. 금본위제*에서는 금이라는 재화가, 불태환지폐*시대에는 정부가 이를 보장했다. 이와 달리 암호화폐는 지급이나 화폐의 가치를 보장하는 주체가 없다. 김정욱 교수는 “이미 각국 화폐를 기초로 전자결제가 가능한 상황”이라며 “신생기업이 발행한 가치도 보장되지 않는 화폐가 국내와 국제 거래에서 쓰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JTBC 긴급 토론회에서 김진화 대표는 ‘지금으로선 암호화폐 체계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기술적인 문제들은 빠른 속도로 해결되고 있다’며 앞으로의 무궁한 발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진화 대표는 ‘지금은 중앙권력의 통제를 벗어나서 개인의 신뢰를 바탕으로 거래가 이뤄지는 새로운 금융경제체제를 만드는 과정’이라며 암호화폐가 그 속에서 기존의 화폐는 하지 못했던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김정욱 교수는 “이는 화폐의 역사, 진화과정에 대한 이해 부족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반박했다. 김 교수는 “자유주의적 사고의 극단에서 화폐를 민간은행이 창출해 유통하자는 ‘Free Banking System’ 시도는 19세기 미국을 비롯해 여러 시대에 여러 나라에서 있었다”며 “그 모두가 실패했음을 역사가 말해준다”고 지적했다. 민간 발행 화폐에는 앞서 언급한 문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암호화폐는 다른 투자 대상에 비해 도박적 성격과 위험성이 과도하다. 법적, 화폐적 관점에서도 미흡한 부분이 있다. 이런 내재적 한계는 암호화폐 가치의 폭락으로 이어져 큰 파문을 일으켰다. 따라서 암호화폐의 투자를 결정할 때에는 신중해야 한다. 물론 투자를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다.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한 가치를 발견하거나 내게 지금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돈이 있다면 ‘베팅’해볼 수 있다. 그러나 그에 따른 책임은 전적으로 본인이 져야할 것이다.

◇암호 vs 가상=비트코인을 필두로 새로 나타난 전자 발명품은 가상화폐, 암호화폐, 가상증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여러 용어가 난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어떤 용어가 학문적으로 엄밀하고 정확한 것일까?

현재 일반적으로 쓰이는 가상화폐는 매우 포괄적인 개념이다. 기존에 사용되던 사이버 머니와 게임 머니, 심지어는 금융 사기범들이 발행하는 인조 화폐도 개념적으론 가상화폐라고 말할 수 있다.

◇화폐 vs 증표=학계에선 암호화폐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본 기사에서 논의되는 블록체인 기술에 따른 화폐의 원어는 ‘cryptocurrency’이다. 이는 발명품에 공개키와 개인키의 이중구조로 보안이 이뤄지는 RSA 알고리즘이 사용되고 이른바 채굴 과정에서 해시 퍼즐을 푸는 연산 작업이 이뤄진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따라서 가상화폐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고 암호화폐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암호화폐는 실제로 화폐가 아니기에 화폐라는 용어를 써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비트코인 등은 화폐로서의 성격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다.(기사 본문 참조) 따라서 암호증표라는 표현이 발명품의 특성을 기술적으로 더 정확하게 기술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비트코인을 처음 고안한 사람들이 이 발명품을 화폐라고 불렀기 때문에 그 뜻을 존중해 암호화폐라는 용어를 사용해도 무방하다.

*엔젤 투자자: 기술력은 있으나 창업을 위한 자금이 부족한 초기 단계의 벤처기업에 투자해 첨단산업 육성에 밑거름 역할을 하는 투자자금을 제공하는 개인

*분식 회계: 공개회사 내부 경영진과 관련 타기업 및 연관자들이 매출액을 과장하거나 자산 가치를 허위로 공시하는 등 재무 변화를 허위로 조작하는 행위

*해시 퍼즐: 간단한 풀잇법 없이 정답 확인에 많은 작업이 소요되는 퍼즐. 채굴자들은 여러 해시를 대입해보며 퍼즐을 풀고 가장 먼저 퍼즐을 푼 사람이 다음 블록 생성의 동의자가 된다.

*금본위제: 화폐의 가치를 금으로 나타내는 것. 화폐를 금으로 태환할 수 있다.

*불태환지폐: 금과 화폐의 교환이 보증되지 않는 지폐. 중앙 은행의 신용에 의해 유통되는 지폐라고 하여 신용 지폐라고도 불린다.

삽화: 강세령 기자 tomato94@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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