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보연
교육학과 박사수료

봄이다. 3월은 캠퍼스의 한 해 중 가장 생동감 있는 때다. 뿌듯한 마음으로 입학식을 치러낸 상기된 모습의 신입생들이 곳곳에 가득한 모습이 꽃들보다도 먼저 캠퍼스에 봄이 왔음을 알린다. 시간을 거슬러 신입생 시절을 기억해 보면, 그 봄에 나는 ‘서울대생’이 되었다는 생각에 벅찼고 또 무척이나 설렜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봄에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추운 꽃샘추위를 겪었다. 신입생이 되었던 해의 5월,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났고, 내게 엄마 같았던 이모는 갑작스레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셨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세상이 유리처럼 깨져 낱낱이 흩어지는 듯했다. 새벽녘이면 들리는 부모님의 흐느낌과 한숨에 나 또한 잠을 못 이루었고, 혹시나 부모님이 절망 끝에 삶의 끈을 놓아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기도할 때면 그 어떤 감정도 언어화하지 못했고, 통곡하듯 절망 속에 눈물과 신음을 쏟아낼 뿐이었다. 일주일이면 이삼일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과외, 아르바이트, 학교생활을 병행했다.

벌써 그 봄으로부터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지났다. 산다는 것은 영화처럼 단시간에 결말이 나는 것이 아니어서 부모님은 아직까지도 고군분투하고 계시고, 나 또한 그때의 힘듦에서 시작된 상처가 여전히 남아 때때로 마음을 휘저어둠을 느낀다. 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변화의 연속이어서 그 국면마다 약간의 기쁨과 동시에 또 다른 차원의 어려움과 괴로움이 찾아온다. 가만 보면 산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누구의 삶이나 그런 것 같다. 아마도 오늘을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이 급작스러운 혹은 오래된 자신만의 어려움으로 인해 나와 같이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심리학 분야의 저명한 학자인 캐롤 드웩(Carol Dweck)은 어떤 사람이 역경을 이겨내고 회복하는 것은 상황 자체나 사람의 자질보다는 그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른 것이라고 말한다. 드웩은 사람들이 ‘마인드 셋’이라고도 불리는 개인의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고정적인 신념과 향상적인 신념으로 나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개인의 신념에 따라 자신이 마주한 상황을 불변하는 고정적인 것, 혹은 노력을 통해 변화 가능한 것으로 달리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일련의 연구들은 고정적인 신념을 가진 사람들과는 달리, 향상적인 신념을 가진 경우에는 노력을 값진 것으로 여기고, 다양한 전략을 통해 자신의 목표를 지속해서 성취해 가려는 경향이 크며, 특히나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도전적인 상황에서는 이런 경향성이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고 밝혔다.

내 삶의 추운 봄을 이겨낼 수 있던 것 또한 긍정적인 변화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릴지라도 어려움은 지나갈 것이며, 다가올 새날은 지금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작은 믿음이, 오늘 내가 겪는 괴로움이 언젠가 다른 누군가에게 힘을 주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이 나를 버티게 했고, 성장하게 했다. 물론 이런 믿음을 갖고 헤쳐 나갈 수 있었던 바탕에 여전히 하나하나 이름을 떠올리며 감사드리는 분들의 지지와 도움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삶이 아픈 누군가가 있다면, 긍정적인 변화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말라 전하고 싶다. 꽃샘추위가 지나면 푸르른 여름이 온다. 다시금 겨울이 오고, 누구나 죽음으로 귀결되는 것이 삶이지만서도, 해를 거듭해 성장하고 성숙하여 맞이하는 겨울은 시리기보다 고즈넉하고, 그 후에 맞이하는 생의 끝은 슬프기보다 아름다울 것이라 믿는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