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1월 4조 695억 원 규모의 ‘2018년도 과학기술·정보통신(ICT) 분야 R&D 사업 종합시행계획’을 발표했다. 2017년도 예산과 비교하면 640억 원이 줄어들었다. 2016년에 이어 연구예산이 2년 만에 다시 감액된 것이다. 이로 인해 정부 지원이 불가피한 차세대 기술 개발 중 일부 사업에는 제동이 걸렸다.

대표 사례로 무선 양자암호통신 분야가 있다. 양자암호통신은 원천적으로 해킹이 불가능하다는 특성 때문에 군사 목적은 물론 은행 간 금융 거래나 투표 결과 전송에도 활용될 수 있어 차세대 통신 기술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대 투자국인 중국은 양자통신위성으로 세계를 연결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고, 미국도 국방과 사이버 안보 목적으로 정부와 산업계가 힘을 합쳐 연간 1조 원 이상을 양자정보 관련 기술 개발에 투자하는 등 세계 각국이 공격적으로 투자를 늘리는 중이다.

하지만 정보통신기술 강국이라는 위상이 무색하게도 우리나라 정부는 재정 효율화의 잣대를 내밀며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6년까지 양자암호통신 관련 기술 개발에 2,040억 원을 투입한다는 예산안을 기획재정부에 제출했다. 기획재정부는 경제성이 없고 기술력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예산 편성을 거절했고 신규 연구비를 배정하지 않았다. 정부에서 실시한 예비타당성 평가 결과가 나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양자암호통신 기술 개발 사업은 중단된 상태다.

우리나라는 2016년 기준 GDP 대비 4.24%를 연구개발에 투자했다. 세계 최대 규모지만 질적으로는 부실하다. OECD 보고서 ‘2016년 주요 과학기술 지표’에 따르면 R&D 투자에서 정부·공공재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24.7%로, OECD 평균(32.5%)은 물론 미국(34.7%)이나 독일(29.2%)보다 낮다. 같은 해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은 ‘2016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조사·분석보고서’에서 정부 R&D 예산의 68.1%가 기초 연구나 개발 연구가 아닌 응용연구에 투자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기초과학 연구에 대한 정책집행자들의 근시안적 사고를 여실히 보여준다. R&D 사업은 특성상 파급효과를 가늠하기 어렵고 성과를 거두는 데 오랜 기간이 걸린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목표와 효과가 구체적인지만 따지다 보니 창의적, 도전적인 차세대 기초 기술 연구는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기초 기술 연구의 목표는 지식을 증진하고 기술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연구 경쟁에 한발 늦었다고 기초연구에 대해 지원을 끊어버리는 것은 해당 분야의 발전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과 같다.

여론에 따라 예산을 추경한다고 해도 연구비 집행이 지연되는 동안의 연구 공백은 피할 수 없다. 연구가 중단되면 기술 개발에 차질이 생겨 손해가 발생한다. 정부가 기초기술 연구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지금 같은 태도를 유지한다면 양자 관련 기술은 물론 앞으로 발전할 차세대 기술들도 같은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기초 기술 연구 개발에 투자를 늘리고 규모를 키우지 않는 이상 세계 주요국가와의 기술 격차는 좁혀지지 않을 것이다. 경제성보다는 미래를 내다볼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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