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렬 교수
지리학과

수년 전 영국 케임브리지대로 1년간 파견을 다녀왔다. 처음 맞이하는 연구년을 어디서 보낼까 고민하다가, 근 십여 년 동안 살아 다소 식상함이 앞섰던 미국 외에 영어가 통하는 나라 중 세계대학순위에서 최상위권에서 머무는 옥스브리지가 있는 나라 영국이 자연스럽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케임브리지대 지리학과의 교수 한 분께 문의를 했고, 그분은 학과를 통해 흔쾌히 초청장을 보내 줬다.

여기까지만의 과정으로 연구년을 보냈다면 전혀 경험하지 못했을 상황들을 현지에서 거주할 집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접하게 됐다. 케임브리지대에 먼저 연구년을 다녀온 다른 분에게 서울대와 케임브리지대 사이에 학술교류협정이 체결돼 있어 이를 통해 지원하면 물가가 비싼 케임브리지에서 비교적 저렴하게 숙소까지 받을 수 있다는 정보를 전달받았다. 약간의 우여곡절 끝에 클레어홀 칼리지로부터도 초청장을 받게 돼 케임브리지대 내 두 개의 서로 다른 기관으로부터 초청장을 받을 수 있었다.

1년간 거처 해결을 위해 지원했던 케임브리지대의 칼리지는 우리가 아는 단과대학과는 전혀 다른 기구였고, 학과를 아우르는 단과대학은 스쿨로 불렸다. 대학체계 안에서 학과와 스쿨이 각 전공 분야 나름의 학문적 전통을 바탕으로 서 있는 수직구조라면, 31개의 칼리지는 다양한 학문적 영역을 아우르는 교수, 연구원, 대학원 및 학부생들 간의 수평적인 엮음이다. 칼리지는 구성원들의 주거뿐만 아니라 식사, 교류, 여가 등 교육과 연구에 매진하는 대학인들의 생활을 지탱해주는 기본단위기도 하다. 케임브리지대의 모든 구성원은 적어도 한 학과에 속하면서 동시에 한 칼리지에 적을 둔다. 이들은 학과체계를 통해 심층적인 전공 분야 지식을 심화시켜 가는 것과 동시에, 칼리지 체계를 통해 다양하고 이질적인 학문적 배경의 사람들과 만나면서 융합적 사고를 배양해 나가고 또 전문적 지식의 범용화를 추구할 수 있다.

서울대는 학과를 중심으로 하는 수직적인 구조가 매우 견고한 대학이다. 이는 근대식 학문체계를 받아들인 후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성공적으로 분야별 인재를 배출해내는데 나름 효과적인 방식으로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러나 몇 세기 전부터 만들어진 학문체계 내 특정 분야의 배타적인 관점만으로는 갈수록 복잡해지는 현대사회를 온전히 이해하기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 시점에서 서울대도 서로 다른 학문 분야에 속한 구성원들을 아우르는 수평적 네트워크체가 필요하다. 물론 지금까지 그런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융복합과제로 학제적 연구를 장려해 보기도 했지만, 많은 경우 실제 융합이 이루어지지 않고 각자 분야별 연구를 수행한 뒤 이들을 다분히 기계적으로 묶는, 소위 무늬만 융합인 연구들이 등장하면서, 애초부터 융합형 교육을 받지 않은 전문분야의 연구자들이 모여 진정한 융합이 될지에 대한 회의가 생겼다. 한편 학생들에게 융합적 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취지에서 연합전공, 연계전공, 협동과정 등 학과장벽을 유연하게 만드는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지만, 대학으로부터의 행·재정적 지원 결여와 학생들의 취업 등 현실주의적 전공 선택에 따른 무관심 등에 의해 정말 ‘숨만 쉬고’ 있는 프로그램들도 꽤 된다고 알고 있다.

4차 산업혁명시대의 도래와 이에 따른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변화들을 많이 이야기한다. 학과단위의 전문적인 연구와 교육을 근간이 되는 축으로 하되, 단일 학문적 시각의 협소성을 보완하고 학문 영역 간의 횡적 연결성을 강화하는 네트워크체를 대학 차원에서 구성하면 어떨까. 이로써 씨줄과 날줄이 조화롭게 엮여 전문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융합성을 지향할 수 있는 21세기 서울대의 미래상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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