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대학신문을 읽고
‘대학’신문과 대학‘신문’ 사이에서
  • 대학신문
  • 승인 2018.03.11 05:43
  • 수정 2018.03.11 05:43
  • 댓글 0

어느덧 관악에서 열한 번째 정규학기를 맞는다. 그간 여럿의 눈물이 관악을 적셨다. 학생은 학교의 주인으로서 당당한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학생의 자격을 부정당하고서 분노의 눈물을 흘렸다. 학내 노동자들은 인간다운 노동조건과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이라는 당연한 권리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을 당하고서 고통의 눈물을 흘렸다. 총장은 학교의 미래와 교육의 참뜻을 생각하느라 많은 고민을 했다면서 악어의 눈물을 흘렸다. 그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눈물은 지금도 관악을 적시고 있다.

『대학신문』 1957호에서도 그 눈물을 찾아볼 수 있다. 그간 학내 구성원으로서의 당연한 자격을 인정받지 못해 분루를 삼켰던 휴학생과 대학원 연구생은 총장선출과정에서만큼은 충분한 목소리를 내고자 분투하고 있다(1면). 임용권을 침해당한 의대 정신과 조교수는 자신이 흘린 눈물을 제대로 보상받고자 소송을 이어가는 중이다(2면). 인권교육에서조차 존재를 배제당하는 성 소수자(3면)와 마음 놓고 아플 수조차 없는 의료취약계층 및 재난적 의료 가구(5면)의 절박한 외침도 들린다. 분명한 피해자인데도 후안무치한 가해자와 무책임한 2차가해로 고통받아야 했던 ‘미투’ 운동 참여자들의 아픔(7면)은 여러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평창올림픽 자원봉사자로 선정됐다가 개인 사정으로 활동을 취소한 터라 올림픽 현장에서 실제 활동한 봉사자들의 고충(10면)에도 마음이 쓰였다. 학내외의 약자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대변하려는 『대학신문』의 노력이 느껴졌다.

한편 언론은 경성뉴스를 충분히 무겁게 전하고, 연성뉴스를 적절히 가볍게 전하고, 양자를 알맞게 버무려서 각각의 맛을 살려야 한다. 그것이 언론이 정도(正道)를 지키는 가장 쉬운 길이자 가장 어려운 길이다. 지난주 『대학신문』에서는 우리나라 소주의 역사를 다룬 6면 기사가 그 조화를 잘 이루어내어 좋았다.

다만 단신에 가까운 입학식 기사를 머리기사로 배치한 것은 아쉽다. 3월 첫 호가 갖는 상징성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입학식 이모저모를 더 생생히 전하는 기사를 1면에 실었다면 보다 내실 있는 지면 구성이 됐을 것이다. 2면 기사들과 3면의 인권교육 의무화 관련 논란을 다룬 기사의 중요도가 결코 낮지 않았기에 이번 머리기사가 주는 아쉬움은 더 크다.

아울러 편집 측면에선 눈이 나쁜 독자들의 눈물을 고려하여 활자 크기를 키워줄 것을 제안한다. 올해 첫 신문부터 활자 크기를 키운 모 주요 일간지 최근호를 읽어봤는데, 작은 부분이지만 신문 읽기가 몰라보게 편해졌음을 느꼈다. 『대학신문』에서도 그 작지만 큰 청량감을 느껴보고 싶다. 큰 활자가 주는 편안함에 이끌려 더 많은 독자가 『대학신문』을 열독할 때, 『대학신문』은 더욱 접근성 좋은 언론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무릇 언론 보도는 사회의 공기(air)이자 공기(公器)다. 눈물 짓는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그를 울리는 강자를 꾸짖는 언론의 예봉은 모든 민주시민의 삶에 꼭 필요하다. 그러나 정작 시민들은 그 가치의 소중함을 쉬이 잊곤 한다. 민주사회의 선봉에 서야 할 책무를 짊어진 공간인 대학에서조차 그럴진대, 대학언론의 책임은 더욱 막중하다. 독자는 건강한 비판의 가치를 잊더라도 『대학신문』은 그 소중함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지켜내야 한다. 『대학신문』이 언론의 가치에 걸맞은 공기다운 보도로써 무심한 독자를 불러 모아 각성하게 하는 공론장이 되기를 희망한다.

최효재
법학전문대학원 석사과정·17

대학신문  snupress@snu.kr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대학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많이 본 뉴스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