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서남대 폐교가 남긴 숙제를 짚어보다

지난달 28일, 전라북도 남원에 소재한 서남대가 한중대, 대구외대와 함께 최종적으로 폐교됐다. 서남대는 인문계와 이공계뿐만 아니라 의료 분야의 인재를 양성한다는 목표 하에 지역 인재 교육의 장으로 주목받았지만, 1997년 설립자인 이홍하 전 ‘서남학원’ 이사장이 교비 횡령 혐의로 구속된 후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을 수 없는 부실대학으로 지정되며 몰락하기 시작했다. 서남대를 정상화하기 위해 ‘명지의료재단’을 비롯, 서울시립대와 삼육대 등 여러 대학들이 대책을 모색했으나, 결국 지난해 12월 13일 교육부의 폐교 방침 발표로 문을 닫게 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서남대 재학생 및 교직원들은 정보를 충분히 전달받지 못했고, 이들은 하루아침에 문 닫은 학교를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서남대 폐교 그 후, 구성원들은?=학교를 잃은 학생들을 위해 교육부에서는 특별편입학조치를 마련해 전북 및 충남 지역 소재의 동일한 혹은 유사한 학과로 편입할 기회를 제공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이런 조치에 대한 정보가 충분히 공유되지 않아 유명무실한 조치에 불과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남대 의대에 재학했었던 A씨는 “전체 재학생을 대상으로 공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편입을 뒤늦게 준비해야만 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우여곡절 끝에 다른 학교로 편입된 학생들은 새로운 학교에서 자신들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에 또 다시 부딪혀야 했다. 특히 예과 및 의학과, 간호학과 학생의 경우 정부의 의료 인력 관리 차원에서 원광대와 전북대에 한시적으로 배정되며 반발이 더욱 거셌다. 전북대 의대 및 의전원 재학생과 학부모들은 특별 편입학에 반발하며 총장과 의전원을 고발했으며, 원광대 역시 구성원들이 학습권 침해를 주장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런 아픔을 뒤로한 채 원광대와 전북대에 편입한 학생들은 안정적이지 않은 향후 거취 때문에 여전히 불안해하고 있다. 목포와 순천 등 전라남도와 충청권 자치단체가 공공의료보건대학의 설립을 추진하고, 이에 맞서 원광대와 전북대 역시 서남대 인원의 영구 배정을 주장하며 서남대 의대 49명의 학생을 둘러싼 총성 없는 전쟁이 계속될 전망이다.

교직원들 역시 고충을 겪는건 마찬가지다. 교수진을 비롯한 학교 관계자들은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임금을 일절 받지 못했다. 소병율 전 서남대 의예과 교수는 “적어도 몇 년 동안 이직을 준비할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가 주어져야 하는데 그런 대처가 전혀 없었다”며 막막했던 심정을 드러냈다. 소 전 교수는 “커리큘럼 등 의과대학 교육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무작정 학교를 폐쇄하면 학생들에게 피해가 갈 수밖에 없다”며 “학생들의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한다는 교육부의 명분은 타당성이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소 전 교수를 비롯한 갈 곳 잃은 교직원들은 권리를 되찾기 위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이들이 새 둥지를 찾기까지는 요원한 상황이다.

◇서남대 부지는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까?=텅 빈 서남대 부지를 활용하는 방안 역시 주요 쟁점 중 하나다. 폐교 처분 이후 남원을 지역구로 둔 무소속 이용호 의원은 균형잡힌 의료 인력의 수급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근거로 서남대의 기존 건물과 부지를 활용해 공공보건의료대학을 설립하자는 발의안을 내놨다.

이용호 의원은 “본래 서남대 의대는 전라도 및 경상남도 등 지리산 권역의 의료 인력 수급을 위해 배정된 것”이라며 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공공의과대학 설립 가능성에 대해 이용호 의원은 “공공의료가 필요하다는데 중앙정부와 보건복지부, 지방자치단체가 모두 공감대를 이뤘다”며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이용호 의원은 “대학이 문을 닫으면 도시가 공동화 되고 지역 상권이 어려워진다”며 “서남대의 부지와 건물을 최대한 활용해 조속한 시일 내에 공공의과대학을 설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서남대 부지에 공공의과대학이 설립되면 효과적으로 지리산 권역의 의료 서비스를 보장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직격탄을 맞은 지역 경제를 활성화 하는데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공공의과대학 설립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소 전 교수는 “의과대학을 설립하려면 의사협회와 보건복지부 등 관련된 여러 기관의 승인과 협조가 필요하다”면서 “더욱이 공공의과대학을 설립하기 위해선 막대한 국고가 투자돼야 한다”며 공공의과대학 설립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향후 부지 활용 계획을 둘러싼 논란만 지속되는 가운데, 아무도 없는 교정엔 나날이 먼지만 쌓이고 있다.

◇황금알을 낳는 비리?=현행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비리 사학이 문을 닫는 경우 부동산 등의 잔여 재산을 학교법인의 정관이 지정한 자에게 넘길 수 있도록 돼있다. 이에 따라 최대 천억 원대로 추정되는 서남대의 잔여 재산은 이홍하 전 이사장의 또 다른 사학법인인 ‘신경학원’으로 귀속될 예정이다.

이를 막기 위해 지난달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설립자나 임원의 회계 부정으로 법인이 해산할 경우 잔여 재산을 국고로 귀속하도록 하는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통과됐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자유한국당이 사유재산 침해 소지를 문제시하며 반대의 목소리를 내 결국 개정안은 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서남대의 잔여재산을 국고로 환수하는 것은 당분간 어려울 전망이다.

이로써, 부실 사학이 재산을 사유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폐교를 단행해 잔여 재산이 또 다른 비리 사학으로 흘러들어가더라도 막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못한 가운데 발생하는 피해는 온전히 학생들과 교직원의 몫이 되었다. 학생들이 학습권을 박탈당하며 부실한 학교 운영의 책임을 떠안은 가운데, 비리 설립자는 막대한 재산을 돌려받으며 횡령액 변제 의무도 전혀 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비리를 저지른 사학의 잔여재산을 국고로 환수해 사학을 운영하는 재단이 다시는 부정을 저지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사학법 개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비리 당사자는 실질적으로 면책되는 가운데 폐교로 인한 피해는 오로지 학교의 주인이 되어야 할 학생과 교직원이 뒤집어쓰는 현재와 같은 대학 구조조정 방식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현 정부는 대학 정리를 명분으로 부실 대학을 퇴출시키는 지금의 대학구조조정 방식을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대학을 줄 세우고 하위권 대학에는 지원을 제한하는 현재의 대학정책은 공익을 추구하는 대학의 본질을 훼손할 수밖에 없으며, 이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과 교직원에게 돌아가게 된다는 비판이 많다. 이용호 의원은 “교육부는 사학 비리를 감독 및 관리하는 역할에 먼저 충실해야 한다”며 대학 운영의 투명성을 우선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조건 부실대학을 폐교시키기보단 근본적으로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운영되는 대학들이 투명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히 함으로써 더 이상 아무도 배움과 일의 터전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날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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