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인간의 기록, 종교의 미래를 그리다
신과 인간의 기록, 종교의 미래를 그리다
  • 박태현 기자
  • 승인 2018.03.18 03: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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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서평 | 신과 인간의 역사를 돌아보다
삽화: 손지윤 기자 unoni0310@snu.kr

역사는 신과 인간에 대한 기록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절대자의 존재가 인류의 삶에 미친 영향은 크다. 서구 학문은 전통적으로 기독교 신의 권위를 바탕으로 이뤄졌으며 인문학에선 여전히 인간과 종교를 바라보는 관점을 주요 주제로 다룬다. 신의 그림자가 학계에서 지워지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에 따라 학자들의 인식과 지식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고 이는 니체가 신의 죽음을 선언한 이후 인간의 미래에 대한 거대한 논쟁을 촉발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학자인 유발 하라리도 『호모 데우스』라는 신간으로 담론에 새로운 목소리를 더했다. 이에 『대학신문』에선 종교와 인간을 다룬 역사적 저작을 바탕으로 신과 인간의 역사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근대 종교 철학의 시발점인 신 존재 논증으로부터 출발해 신 중심 세계관이 무너지고 인본주의가 확립된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종교 인식이 어떻게 변했는지 다룬다. 그리고 인본주의마저 퇴색돼 신과 인간 중심의 이데올로기가 지워진 미래의 역사를 조망하고자 한다.

신 존재 증명과 근대 종교 인식

『성찰』에서 데카르트는 인간의 지식과 관념을 통해 신과 영혼의 존재를 논증한다. 그는 확실한 지식은 무엇인지, 그것이 어디서 오는지를 먼저 질문한다. 통념상 가장 명증하다고 여겨지는 지식은 감각에 의한 지식이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실제로는 감각하고 있지 않음에도 꿈속에서 동일한 것을 감각한다고 착각한 적이 있으며 깨어있을 때도 감각이 종종 실수를 저지른 바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 번이라도 우리를 속인 것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편이 현명하다”며 “물질적인 것을 비롯한 모든 것을 의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의심스러운 지식을 모두 지운 뒤 남는 최후의 지식은 ‘사유하고 있는 동안 나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내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 동안엔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 없다”며 “‘나는 있다, 나는 현존한다’는 명제는 내가 이것을 발언하거나 생각할 때마다 필연적으로 참이 된다”고 설명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어떤 것을 감각하거나 상상할 때, 그 대상은 참이 아닐 수 있어도 사유 양태로서 감각과 상상력은 언제나 참이다.

그러나 감각이나 상상, 관념 등은 서로 다른 실재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데카르트는 이 차이가 어디서 유래하는지 고찰한다. 그는 “전체 작용 원인 속에는 적어도 그 결과 속에 있는 것만큼의 실재성이 있어야 한다”며 “대부분의 관념은 나의 현존이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모든 물질적 사물은 크기를 가진 것의 연장(exstension)*이나 그것의 운동, 혹은 그것들의 집합에 지나지 않으므로 내가 가진 관념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무한하고 완전한 절대자에 대한 관념은 나의 현존으로부터 절대로 도출될 수 없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내 속 절대자의 관념은 무한하고 완전한 표상적 실재성을 가지고 있다”며 “아무리 내 관념들이 조작되고 합성돼도 무한성과 완전함의 관념이 유한하고 불완전한 나로부터 만들어질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데카르트는 “마찬가지로 우리 안에 있는 완전한 신의 관념을 주입한 원인은 신 자신이거나 그보다 더 우월한 존재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 존재 증명은 지식과 관념을 정당화하는 근대 철학적 사고의 바탕이 됐다. 데카르트는 “누군가를 속이는 것은 불완전함의 특징”이라며 “따라서 완전한 신은 인간을 거짓으로 속이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인간이 세계를 오성*으로 면밀히 관찰하고 사색해 얻은 지식은 의심의 여지 없는 참이다. 인간이 종종 저지르는 실수는 충분히 연구하지 않은 채 섣부른 판단을 내려서다. 데카르트는 “명증한 지식을 받아들이고 명증하지 않은 것에 관해서는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인간은 진리를 얻을 수 있으며 적어도 거짓을 참으로 간주하는 실수는 범하지 않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를 바탕으로 데카르트는 “영혼의 존재도 확정적인 지식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가 명석·판명(clear·distinction)하게 인식하는 것은 모두 그대로 신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신은 악랄한 기만자가 아니므로 신에게 부여받은 오성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간에게 알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어떤 것을 다른 어떤 것 없이 명석·판명하게 인식하면, 그것이 다른 것과 상이하다고 충분히 확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신체나 물질과 무관하게 인간의 사유하는 본질을 명증하게 알 수 있음을 증명했다. 더욱이 그는 “신체와 물질은 언제나 그 절반을 생각할 수 있지만 영혼과 정신은 절반과 부분을 생각할 수 없는 하나의 통합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정신과 영혼은 신체와 상이한 독립적 실재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과학이 신을 무너뜨리다

데카르트의 논증은 오랜 시간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자연과학이 발전하고 신과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는 증거들이 등장하며 담론은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갔다. 뇌를 비롯해 우리 몸의 어느 곳에서도 소멸하지 않고 나눌 수 없는 영혼은 발견되지 않았다. 애초에 영혼의 존재는 진화의 기본원리에 모순된다는 주장도 대두됐다. 모든 생물학적 실체는 단계적 진화를 거쳐 만들어졌다는 것이 현재 과학계의 정설이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에서 “생물학적 실체들은 끊임없이 결합하고 분리되는 작은 부분들로 이뤄져 있다”며 “작은 부분들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나고 이들이 자연 선택을 거치며 단계적 진화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영혼은 부분이 없고 한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가는 동안 아무것도 잃거나 흡수하지 않고 그대로여야 하기 때문에 진화를 통해 만들어질 수 없다.

혹자는 인간의 영혼은 진화하지 않았고 “어느 화창한 날 영광스러운 완전체로 출현했다”고 반박할 수도 있다. 유발 하라리는 “영혼을 지닌 최초의 아기를 가정해보자”며 “영혼의 ‘영’자도 없는 부모에게서 불멸의 영혼을 지닌 아기가 탄생하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작용의 결과가 그것이 가진 실재적 특성을 포함한 원인에서 기인한다는 데카르트의 주장과도 모순된다.

유발 하라리는 과학이 발전하면서 영혼의 존재뿐만 아니라 ‘세계는 신의 장대한 계획이며 인간은 그 속에서 정해진 역할을 수행한다’는 믿음도 부정됐다고 봤다. 그는 “현대 과학에 따르면 우주는 계획도 목적도 없는 과정”이라며 “아무 의미 없는 소음과 광기로 가득하다”고 말했다. 세계는 신의 위대한 각본을 연기하는 무대가 아니라 ‘종종 개 같은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는 곳’이 됐으며 인간은 예정된 역할 같은 것은 없음을 깨닫고 더는 구원과 결말을 갈구하지 않았다. 대신에 인간은 신의 죽음을 선언하고 원하는 모든 것을 현실 속에 구현해내려 했다. 유발 하라리는 현대 인간이 이룩한 대표적인 성과로 기아, 역병, 전쟁의 극복을 꼽았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신이 죽고 종교가 사라지면 사회는 구조적 위기를 맞는다. 유발 하라리는 “종교는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대규모 협력을 조직하는 도구”라며 “종교의 인도하는 손 없이 대규모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전통적으로 종교는 윤리와 도덕을 제시해 사회를 안정시켰다. 종교라는 제약이 사라지면 사람들은 원하는 대로 욕망을 추구하게 돼 세계에 큰 혼란이 초래된다. 더욱이 인간이 신의 위대한 각본을 연기하는 배우라는 종교의 주장을 그대로 믿던 사람은 신이 죽으면 삶의 의미를 빼앗겨 버린다. 평범하고 보잘것없어 뵈지만 신의 도구로서 나름의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했던 삶이 하루아침에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삶의 의미를 찾고 윤리와 도덕을 보존하는 문제는 인류의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현대는 삶의 의미와 목표를 잃은 사람들이 무질서하게 표류하는 세계가 돼버린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간단히 신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 이를 해결했다. 유발 하라리는 “종교는 신에 대한 믿음 따위가 아니다”라며 “종교는 인간의 사회구조에 초인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어떤 것”이라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종교의 예언자, 선지자는 신이 어떤 초인적 법을 창조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들은 자연법을 해독해 어떤 규범과 가치를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자연히, 당위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며 어떤 것은 숭고하다고 이야기하는 모든 사상은 종교다. 인간은 생명의 고귀함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인본주의라는 종교를 만들었다. 이 신흥 종교는 모든 윤리와 도덕을 인간 생명과 존엄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재편했고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부여할 권한을 개인의 내면에 부여했다. 덕분에 사회는 높은 수준의 질서와 안정을 지켜냈으며 인본주의는 세계를 지배하는 종교가 됐다.

인간은 신이 될 수 있을까

인본주의에선 만물은 오로지 인간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이런 교리는 인류에게 전례 없는 수준의 번영, 건강, 평화를 주었다. 유발 하라리는 “인본주의의 계명에 따르면 인류의 다음 목표는 불멸, 행복, 신성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해당 종교의 궁극적 목표로서, 인류(Homo Sapiens)를 신(Homo Deus)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스스로 신이 되려는 인간은 역설적으로 무가치한 존재로 전락할 수도 있다. 유발 하라리는 “힘을 극대화해 인본주의의 꿈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포스트 인본주의 기술이 쏟아져 나온다”며 “그 기술들이 되려 인본주의의 근간을 흔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인류가 신 중심 세계관에서 벗어났던 이유와 흡사하다. 인본주의의 가장 큰 믿음은 인간이 지닌 자아와 자유의지가 우주에 의미를 불어넣는 원천이며 생명은 그 자체로 숭고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발 하라리는 현대 생물학이 인간 속에 물리·화학적 법칙을 따르는 유전자, 호르몬, 뉴런만 있을 뿐 단일한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설명한다. 인간 정신은 물리·화학적 환경에 따라 변하는 뇌 전류의 혼합에 지나지 않았고, 자유의지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해 자유의지는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이 아니라 욕망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다. 유발 하라리는 “인간에게 욕망은 의식의 흐름 속에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것”이라며 “욕망을 소유하고 관리하는 자유의지란 존재하지 않음이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유발 하라리는 최근 생명과학이 인간 생명이 숭고하다는 절대 전제에 도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현대 과학계에선 모든 생물이 근본적으로 데이터를 처리하는 알고리즘에 지나지 않으며 의식은 허상이거나 무가치하다고 주장한다. 알고리즘을 실행하는 계산기를 어떤 물질로 만들든 계산에는 지장이 없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비유기적, 비의식적 알고리즘이 의식적인 유기 알고리즘보다 더 뛰어나다면 후자를 전자로 대체해도 된다. 이에 유발 하라리는 “인본주의의 탯줄을 끊고 데이터와 정보를 의미와 권위의 원천으로 삼는 새로운 기술종교가 도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가 ‘데이터교’라고 표현한 이 새로운 기술종교는 ‘어떤 것의 가치는 전적으로 데이터 처리에 기여하는 바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한다. 지구상의 모든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조직하고 처리할 수 있는 ‘만물인터넷’ 기술이 탄생한다면 인간은 가치를 잃고 역사에서 밀려날 것이다.

신과 인간의 역사는 이제 인간과 기술의 역사로 바뀌 고 있다. 인간이 신이 될 것인지, 아니면 효율적인 비의식적, 무기 알고리즘의 창조 도구로 전락할 것인지 는 아직 두고 볼 일이다.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그 답은 다음 세 질문 속에 숨어있을 것이다. 유기체는 단지 알고리즘이며, 생명은 실제로 데이터 처리 과정에 불과 한가? 지능과 의식 중에 무엇이 더 가치 있는가? 의식 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이 우리보다 우 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면 사회, 정치, 일상에 어떤 변 화가 일어날 것인가?

*연장(extension): 물질이 차지하는 기하학적 부피

*오성(悟性): 인간에게 부여된 인식능력

성찰: 자연의 빛에 의한 진리 탐구, 프로그램에 대한 주석

르네 데카르트
이현복 옮김
문예출판사
325쪽
14,000원

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유발 하라리
김명주 옮김
김영사
630쪽
2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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