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산돌커뮤니케이션 석금호 디자이너를 만나다

활자가 넘쳐나는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에겐 상상도 하지 못할 먼 옛날의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우리나라는 30년 전만 해도 다른 나라에서 수입한 기계와 글꼴이 없으면 한글로 된 책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 이야기를 무색하게 할 만큼 생활 속에서 한글 글꼴의 사용이 다양해지고 자연스러워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이가 있다. 바로 ‘산돌커뮤니케이션’의 석금호 전 대표다. 현재는 대표이사 자리를 내려놓고 사외이사를 지내고 있는 그를 혜화동 산돌커뮤니케이션 사옥에서 만났다.

석금호 전 대표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자기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끝나지 않으면 내가 가야 할 길을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글 글꼴 개발의 싹을 틔우다

한글 글꼴 개발의 시작은 국산 글꼴을 만들어야겠다는 석 씨의 다짐에서 비롯됐다. 미국 잡지사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아트 디렉터로 일하던 시절, 그는 일본에서 기계와 한글을 수입해야만 잡지를 펴낼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당시 우리나라엔 자력으로 글꼴을 만들고 출판해낼 만한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한글 글꼴을 사와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웠다”는 석 전 대표는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한 끝에 어렵게 사표를 내고 직장을 나와 조그마한 작업실을 얻어 글꼴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이 일에 뛰어들게 된 계기를 밝혔다. 한글이 다른 어떤 지적 자산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하다는 믿음이 있었던 그는 대학에 강의를 다니고 책 표지 디자인을 병행하는 고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남는 시간에 글꼴 작업을 계속해왔다. 석금호 씨는 “그 당시 앞으로 한글이 우리나라 브랜드 이미지의 최전선에 오를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석금호 씨는 한글의 구조를 장점으로 활용했다. 사실 한글 글꼴을 만드는 작업은 다른 언어에 비해 까다롭다. 한글은 초성, 중성, 종성을 모아쓰고, 대칭을 이루는 글자가 거의 없어 디자인 측면에선 글자의 시각적인 균형을 잡기가 힘든 문자기 때문이다. 그는 “선형적인 틀 안에서밖에 변화를 주지 못하는 다른 언어와는 달리 한글의 모아쓰기 구조는 무궁무진한 변화 가능성을 지닌다”며 “같은 글자라도 초성, 중성, 종성의 위치를 다르게 배열하면 글자의 모양과 느낌이 달라진다”고 직접 그림을 그려 보이며 설명했다. 이어 그는 “한글의 이런 특성은 독창적이고 예술적인 감각으로 글꼴을 만드는 작업에 다양성을 더해준다”고 덧붙였다.

글꼴을 수입하던 나라에서 수출하는 나라로

다양한 국산 글꼴을 배포한 석 전 대표는 산돌커뮤니케이션이 만든 글꼴을 외국에도 알리기 시작했다. 현재 ‘마이크로소프트 워드’에 한글 기본 글꼴로 등록돼있는 ‘맑은 고딕’ 글꼴과 아이폰, 아이패드의 ‘산돌고딕네오’ 글꼴 등이 그 노력의 결실이다. 산돌커뮤니케이션이 맑은 고딕을 만들기 이전에 마이크로소프트 워드에 등록돼 있던 공식 한글 글꼴은 일본의 ‘나루체’를 한글화한 ‘굴림체’였다. 산돌커뮤니케이션은 디자인의 정체성이 일본이 아닌 우리나라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국 마이크로소프트사와 함께 새 글꼴을 개발하려 했다. 미국 본사가 예산을 편성해주지 않아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 전 대표는 포기하지 않고 1년 후 직접 미국 시애틀에 있는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 찾아갔다. 그는 그곳에서 산돌커뮤니케이션이 가진 노하우와 기술, 그간 작업해왔던 글꼴들을 소개하며 새 글꼴 개발에 대한 예산을 편성해달라고 설득했다. 결국 석 전 대표는 그 자리에서 마이크로소프트사와 글꼴 디자인에 대한 계약을 체결하고, 마이크로소프트가 공인한 한글 글꼴 컨설턴트로 인증까지 받을 수 있었다.

석 전 대표와 산돌커뮤니케이션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글꼴은 마이크로소프트를 시작으로 애플, 구글, 인텔 등의 외국 기업에 수출되기 시작했다. 석 전 대표는 “애플이 먼저 우리 회사에 연락을 해 와서 글꼴에 대한 라이선스를 판매하지 않겠느냐고 했을 때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고 당시 소회를 밝혔다. 지난 2012년, 그는 30년 전 한국에 기계와 함께 글꼴을 수출한 일본 기업 ‘모리사와’에 한글 글꼴을 수출하기 위해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30년 만에 모리사와와 대등한 위치에서 협력관계를 맺고 산돌커뮤니케이션이 만든 글꼴을 일본 시장에 독점 납품하게 돼 감회가 새로웠다”고 당시의 벅찼던 감정을 말했다. 석 전 대표는 “앞으론 외국 기업들과 더욱 활발하게 접촉해서 한글을 적극적으로 공급할 것이다”며 한글 글꼴 홍보에 대한 식지 않는 열정을 내비쳤다.

순수했던 학창시절로의 추억여행을 가능하게 하다

한글 글꼴을 해외에 수출하며 한글의 위상을 높인 석 전 대표는 글꼴 개발을 넘어 한국 고유의 감성을 담은 아이템을 개발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와 감성이 그 가치에 비해 저평가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는 그는 “우리 고유의 문화가 큰 행복을 갖다 줄 수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아이템을 개발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이템 제작 초기에 산돌커뮤니케이션은 한글로만 디자인된 넥타이와 명함지갑, 티셔츠 등을 선보였지만 큰 반응은 없었다. 석 씨는 “기대했던 것만큼의 반응이 오지 않아 한국인만의 감성이 담겨있으면서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한 다른 것을 찾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여러 콘텐츠를 물색하던 중 석 전 대표는 옛날 교과서의 ‘철수와 영희’를 보게 됐고, 이는 요즘 문구 시장과 카카오톡 이모티콘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바른생활 시리즈’의 시작이 됐다.

‘철수와 영희’는 석 전 대표의 바람대로 우리 것의 소중함을 알리는 데 성공했다. 그는 “사람들이 잠재의식 속에서 우리 고유의 정서를 그리워하는 것 같다”며 “이를 통해 많은 이들이 즐거움과 안도감을 느끼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바른생활 시리즈’의 인기몰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다. 이어 “나도 옛날 교과서 속 ‘철수와 영희’의 순박한 표정을 본 순간 그들과 동질감을 느껴 어린 시절로의 추억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며 ‘철수와 영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석 전 대표는 “직접 ‘철수와 영희’를 보지 못한 10대 학생들에게 ‘바른생활 시리즈’가 인기를 얻는다는 건 이 콘텐츠 속에 한국인만이 느낄 수 있는 고유한 감성이 담겨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그는 모두가 향수를 느끼며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우리만의 정서를 먼 옛날의 것에서 찾은 게 아니라, 불과 20~30년 전의 교과서에서 찾았다. 석 전 대표는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지던 시각적 유산을 되살림으로써 사람들이 우리의 정서가 담긴 소중한 콘텐츠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것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석 전 대표는 ‘한글 글꼴만큼은 한국인의 손에서 만들어져야 한다’는 일념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의 결심은 한국이 글꼴을 수입하는 나라에서 수출하는 나라로 도약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걷겠노라 결심하며 ‘맨땅에 헤딩’을 했던 석 전 대표처럼,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결심한 일을 용기 있게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사진: 신하정 기자 hshin15@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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