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권민주 기자 kmj4742@snu.kr

얼마 전 청와대에서 정부 개헌안을 발의하겠다고 발표한 뒤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16일 자유한국당에서 여야 합의를 거친 뒤 6월에 개헌안을 발의하겠다고 나서면서 그동안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었던 개헌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이런 움직임은 그동안 국회에서 지지부진하던 개헌 논의를 다시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우선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수차례 있었던 개헌 논의와 같이 이번에도 역시 개헌 논의는 각 정치 주체의 정략에 따라서만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자유한국당은 작년 대선 전에는 대선과 동시에 개헌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대선 후엔 반대로 개헌 시기를 늦추려는 모습을 보이며 지금까지 이미 수차례 개헌 시기에 대한 입장을 변경해왔다. 이런 개헌에 대한 입장 변경은 개헌 자체를 위해서라기보다는 6월 지방선거에서의 유불리에 대한 고려를 통해 이뤄졌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또한, 이번 결정으로 자유한국당이 국회 내 개헌 논의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건 사실이나, 국무총리를 국회에서 선출한다는 방향 외엔 개헌안 내용에 대해선 아직 구체적으로 밝힐 단계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볼 때 권력구조에 관한 내용 이외의 구체적인 내용이 마련되지 않은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사실상 개헌 논의에서 손을 떼고 있다가 정부가 나서자 어쩔 수 없이 움직인 상황에서 과연 6월까지 개헌안이 나올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이번 결정도 단순히 지방선거를 위한 포석에 그치는 것은 아닌지, 개헌 국민투표와 지방선거 동시 실시가 불발될 경우 이후 개헌 논의를 지속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부분이다.

여당과 청와대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 개헌안을 밀어붙이는 현재의 모습 역시 정략적인 판단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물론 대선 전부터 이어져 온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 투표를 하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킨다는 명분은 있다. 그러나 개헌 시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제로 개헌이 성사되는지 여부다. 정부 개헌안에 대해 긍정적 반응을 보이는 야당이 전무한 정국에서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정부 개헌안 발의를 밀어붙이는 것은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개헌 자체보다는 개헌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상황에 대비해 그에 대한 책임론에서 벗어나려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개헌에 대한 논의가 정치 권력과 가장 관련이 있는 권력 구조 개편에 대한 논의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 또한 개헌 논의가 정략적 판단 안에 갇혀있는 것으로 보여 실망스럽다. 현재 개헌을 둘러싼 논의 대부분은 권력 구조 개편에 관한 것이다. 물론 헌법 개정안에는 권력 구조 개편뿐 아니라 지방분권이나 기본권 관련 조항 등도 수정될 것이다. 하지만 권력 구조 개편에 가려 그것들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든다. 국무총리를 누가 정할 건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헌법의 일부이다. 헌법엔 그 시대의 가치가 담겨야하고 개헌은 그 과정이다. 하지만 권력 구조 개편에 매몰된 정부와 국회가 그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쉽게 고개를 끄덕이기 힘들다.

1987년 이후 수많은 헌법 개정 시도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뒤에는 대부분 정치적인 의도가 짙게 깔렸었고 결국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대부분 제대로 된 논의도 못 한 채 좌절됐다. 현재 개헌에 대한 찬성 여론은 과거 그 어느 때 보다 높다. 하지만 개헌 논의가 정략이 난무하는 권력 쟁탈전으로 변질된다면 과거 그랬던 것처럼 여론은 언제든 등을 돌릴 것이다.

여동하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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