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에서 인간으로: 현대의 괴물 이야기
괴물에서 인간으로: 현대의 괴물 이야기
  • 이현정 기자
  • 승인 2018.03.18 04: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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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엔 흉터가 가득하고 머리에 못이 박힌 초록빛 괴물. 사람들이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대개 떠올리는 모습이다. 1818년 출간돼 2018년 출판 200주년을 맞는 『프랑켄슈타인: 현대의 프로메테우스』(이하 『프랑켄슈타인』)는 생명 창조를 욕망하는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이 통제되지 않는 기괴한 생명을 만들어 생긴 비극에 대한 이야기다. SF소설로 평가되는 이 소설은 200년간 연극, 영화,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로 각색돼왔다. 또한 『프랑켄슈타인』은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생명윤리 등 여러 분야의 연구대상이 되며 과학기술이 끊임없이 발전하는 현대 시대에서 더욱 조명받고 있다. 『대학신문』에선 『프랑켄슈타인』 200주년을 맞아 이 소설이 포스트휴먼 시대에 던지는 화두를 알아보고자 한다.

19세기에 시작된 괴물의 이야기

1816년 여름 메리 셸리는 시인이자 과학자인 그의 남편 퍼시 셸리, 의학박사인 존 폴리모리와 시인 바이런 등 친구들과 함께 스위스로 여행을 떠난다. 그들은 숙소에서 심심풀이로 각자 무서운 이야기를 지어내 서로 나눈다. 이 과정에서 메리 셸리가 지어낸 이야기가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시작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단순한 괴기 혹은 공포 소설이 아니다. 소설 속에는 당대 최신 과학기술 및 연구부터 과학으로 인해 발생할 여러 문제, 과학자의 오만함과 책임의식 같이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논의되는 중요한 주제가 들어있다.

당시 지식에서 소외되기 십상이었던 여성이 19살의 어린 나이로 이 같은 소설을 쓸 수 있었던 이유는 메리 셸리가 자라온 배경에 있다. 그의 아버지, 윌리엄 고드윈은 유명한 사상가이자 최초의 아나키스트라고 불리는 극좌파였다. 손현주 HK연구교수(인문학연구원)는 “고드윈은 라틴어, 그리스어, 최신 사상 및 고전 같이 당시 남성만 받을 수 있던 학문을 셸리에게 직접 교육했다”며 이런 가정환경이 훗날 메리 셸리가 『프랑켄슈타인』을 쓰는 기반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교육을 받은 셸리는 당대 이뤄지던 최신 과학실험이나 연구를 이해할 수 있었고, 교육을 받으며 형성한 인맥을 통해 학계의 최신 정보를 빨리 접할 수 있었다. 손 연구원은 “스위스를 여행하면서 폴리도리는 당시 최신 의학 이야기를 주제로 셸리와 대화했고, 지식이 있던 셸리는 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천현득 교수(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도 “당시 과학혁명이 일어났지만 일반 대중들에게는 그 영향이 간접적이었을 것이다”라며 대중에 비해 셸리가 최신 정보에 접근하기 유리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실제로 메리 셸리가 작성한 1831년 판 『프랑켄슈타인』 서문에는 다윈의 자연발생설, 갈바니의 전기실험 같은 당시 유행하던 과학적 연구와 실험이 등장한다.

메리 셸리의 지식을 기반으로 작성된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출판 당시 큰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뒤늦게 저자가 남성이 아닌 여성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비판을 받기 시작한다. 손 교수는 “‘극좌파’라고 할 수 있는 고드윈이 아버지였던 점, 양갓집 여자가 글을 썼다는 점과 여자가 썼음에도 글이 여성스럽지 못하다는 점”이 비판의 이유가 됐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소설의 플롯은 끊임없이 다양한 매체로 재생산됐지만, 1970년대 이후에야 비로소 이 소설에 대한 문학적 연구가 시작됐다. 이로 인해 『프랑켄슈타인』 초기 연구는 페미니즘 비평이 주가 됐다. 손 교수는 “소외됐던 대부분의 여성 작가가 70년대 이후 주목받기 시작했다”며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도 출판 150여 년이 지나서야 문학작품으로서 재발굴됐다”고 설명했다. 뒤늦게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문학작품으로의 논의는 생명윤리 논의로도 이어졌다. 메리 셸리가 서문에서 지적했던 과학자의 오만, 생명윤리 문제가 연구대상이 된 것이다.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현재는 작품에 대한 포스트휴먼적 관점에서의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포스트휴먼 시대, 괴물이 인간이 되다

소설 『프랑켄슈타인』 속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생명 창조를 꿈꾸는 과학자다. 그는 시체 조각을 이어 붙여 인간의 형상을 만들고, 전기를 가해 마침내 생명을 만들어낸다. 창조된 생명은 이름 대신 ‘괴물’(Creature)이라 불린다. 『프랑켄슈타인』이 포스트휴먼적 관점에서 논의되기 위해선 ‘괴물’은 곧 포스트휴먼이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이 전제는 ‘포스트휴먼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포스트휴먼’이라는 용어는 학계에서 아직 명확히 정의되지 않은 개념이다. 천현득 교수는 “아직 포스트휴먼에 대해 정립된 정의는 없다”며 “다만 학계 전반에서 어느 정도 동의하는 것은 트랜스휴머니즘, 포스트휴머니즘으로 포스트휴먼을 이해하는 두 가지 방식”이라고 밝혔다.

트랜스휴머니즘은 인간을 과학기술과 결합해 있는 존재로 여긴다. 인간은 기술을 발전시키며 신체적 능력, 지적 능력, 문화적 능력 등 다양한 능력을 향상해왔다. 천 교수는 “인류가 기계를 통해 능력을 키워온 것을 긍정하고 더욱 능력을 향상하려는 것”이 트랜스휴머니즘이라 설명했다. 홍성욱 교수(협동과정 과학사 및 과학철학)는 트랜스휴머니즘은 “인간은 변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개입해 변화 속도를 높이는 것은 문제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변화 과정 중심에 있는 인간이 바로 ‘트랜스휴먼’이다. 신상규 교수(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는 트랜스휴먼은 “성형 수술, 인공장기, 프로스테시스 시술 같이 과학기술을 통해 일정 부분이 비인간적인 요소로 변화하는 과정 중에 있는 인간”이라고 말했다. 트랜스휴머니즘 관점에서는 변화과정을 지나 완전히 기존 인간에서 벗어난 이를 ‘포스트휴먼’이라고 부른다.

반면 포스트휴머니즘은 기술적 측면보다 철학적 측면이 강조된다. 트랜스휴머니즘이 기술을 통해 실질적인 인간의 능력을 향상하는 것이라면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간에 대한 정의나 관념을 바꾸는 것이다. 천 교수는 이를 “트랜스휴머니즘이 포스트휴먼-이즘(Posthuman-ism)이라면 포스트휴머니즘은 포스트-휴머니즘(Post-humanism)”이라고 표현했다. 즉, 포스트휴머니즘은 근대에 확립된 인간 중심의 휴머니즘을 넘어서려는 시도다. 신 교수는 “휴머니즘은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이라고 지적하며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위계를 만들어내는 휴머니즘을 대체할 새로운 가치체계를 모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때 ‘포스트휴먼’은 인공적으로 변화된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같이 근대적 인간상이 포착되지 않는 것까지 포함한다”고 덧붙였다. 포스트휴먼을 정의하는 두 갈래는 엄연히 다르지만, 기존의 인간관을 초월한다는 본질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괴물은 포스트휴먼, 즉, 기존의 인간을 초월한 존재인가’라는 의문점이 생긴다. 조수남 강사(협동과정 과학사 및 과학철학)는 “괴물은 능력의 향상을 위해 인공물을 결합한 형태가 아니다”라며 괴물을 포스트휴먼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괴물의 신체는 시체를 이어붙인 것이지만 피부, 근육, 혈관 등 인간의 신체와 동일한 요소로 이뤄져 있다. ‘전기’가 괴물을 되살리긴 했지만 살아난 이후 괴물은 인간과 같이 혈관에 흐르는 피로 생명을 유지한다. 전기는 단지 괴물을 탄생시키는 방아쇠 역할에 불과했다. 당시 전기는 갈바니즘*의 영향으로 생명의 비밀을 밝힐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과학적 요소로 꼽혔다. 조 강사는 “당시는 뇌에서 전기가 나와 생체를 움직인다는 생각이 주요했다”며 “이는 수많은 학자의 생체전기연구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생체전기연구는 죽은 개, 원숭이나 고양이 같은 시체에 전기를 흘려보내고 반응을 보는 식으로 이뤄졌다. 전기충격을 가해 실제로 팔다리가 움직이는 등 신체적 반응이 나타나자, 학계에선 ‘삶과 죽음의 경계는 돌이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괴물의 탄생은 이런 시도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괴물의 탄생은 과학기술을 통해 인간의 능력을 향상해 기존 인간을 뛰어넘으려는 시도가 아니다. 조 강사는 “괴물은 그저 인간일 뿐이다”라고 괴물이 기존 인간과 다르지 않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괴물이 포스트휴먼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홍 교수는 “죽음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트랜스휴먼 개념과 연결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괴물은 되살아난 시점부터 이미 기존 인간을 초월한 존재가 된다. 괴물의 부활에는 과학기술인 ‘전기’가 사용된다. 전기 연구와 실험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와 함께 과학기술의 발전이 사람의 수명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관념도 생겨났다. 이는 전기라는 과학기술을 사용하고, 과학기술이 계속 발전한다면 사람이 죽지 않거나 되살아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이 생각을 기반으로 괴물이 탄생했다. 홍 교수는 “과학을 통해 생명을 이해하고 죽음을 극복하려는 여러 시도가 소설 속 하나의 모티프”라고 설명했다. 또한 괴물은 자신이 인간이라 생각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다. 신상규 교수는 “괴물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상성’에서 벗어난 것”이라며 괴물이 근대 인간관에서 벗어난 존재임을 설명했다. 그는 포스트휴머니즘에서 포스트휴먼은 “근대적 인간이라는 개념과 대척점에 있는 존재”라고 덧붙였다. 괴물은 신체적으로, 존재적으로도 인간을 초월한 ‘포스트휴먼’인 셈이다.

괴물에게 열리지 않는 인간 사회의 문

인간을 초월한 존재인 포스트휴먼의 등장은 더는 먼 미래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빅데이터 인공지능, NVIC(나노, 바이오, 정보, 인지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있다. 인간과 다를 바 없는 기계, 대부분의 신체가 기계화된 인간 그리고 생명공학적 수술을 통해 수명을 연장하거나 되살아난 인간 등 현재의 ‘인간’과 다른 포스트휴먼이 머지않아 등장할 것이다. 포스트휴먼인 괴물이 등장하는 『프랑켄슈타인』이 다가올 포스트휴먼 시대에 좋은 예시인 이유다.

하지만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자신이 만들어낸 괴물을 버리고 도망치고 만다. 그는 괴물의 끔찍한 외형을 묘사하며 “막상 원하던 일이 이루어지자 아름답던 꿈은 사라지고, 이제 나를 향해 몰려온 것은 숨 막히는 공포와 역겨움뿐이었다”고 말하며 실험실을 뛰쳐나간다. 천현득 교수는 “이질적인 존재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은 심리적으로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본능적인 거부반응이 정당하지는 않지만 “더불어 사는 경험을 하면 완화된다”고 주장했다. 경험이 없기 때문에 본능적 거부감이 생겨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신상규 교수도 “공포를 느끼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행동”임을 강조했다. 과거 성차별이나 인종차별이 시간이 흐르며 완화된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이질적인 ‘포스트휴먼’을 사회에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 포스트휴먼을 사회에 받아들이게 되면 인간 사회 구성원이 갖는 법적 권한, 재산 소유, 결혼 권리나 투표 권리를 동등하게 제공해야 한다. 권리뿐만 아니라 의무도 마찬가지다. 만일 포스트휴먼이 범죄를 저지른다면 처벌해야 한다. 이 모든 사항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판단이 필요하다. 천 교수는 “포스트휴먼과 정치적·윤리적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도 있다”고 덧붙이며 “이 모든 판단은 쉬운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포스트휴먼이 생식능력을 가진다면 필연적으로 종족 번식 문제도 제기된다. 인간과 다른 종족이 번식을 통해 개체 수를 늘릴 때 인간사회에 끼칠 영향에 대한 걱정이다. 『프랑켄슈타인』 속 괴물은 인간 사회에 편입되지 못하고 떠나게 된다. 괴물은 조용히 떠나는 대신 자신의 짝이 될 여성 괴물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한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이를 받아들여 여성 괴물을 만들지만 결국 폐기해버린다. 그는 괴물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가능성, 여성괴물이 수천 배 악할 가능성, 서로 혐오할 가능성 같은 여러 가능성을 걱정했다. 하지만 그는 이보다도 훨씬 위험한 가능성을 불현듯 깨닫게 된다. 이를 천 교수는 “괴물 종족이 재생산을 통해 번성하면 이것이 인간지배나 멸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포스트휴먼을 인간 사회에 받아들이고 ‘인간’으로 인정해줄 때 제기되는 가장 큰 문제는 ‘인간성’이다. 포스트 휴먼은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존재지만, 인간과 다를 것 없이 행동하고 생각한다. 따라서 자연스레 인간은 자신과 포스트휴먼, 괴물과의 차이를 찾기 시작한다. 이때 등장하는 차이가 바로 인간성이다. 신 교수는 “기술을 통해 인간을 바꾸는 것은 인간적인 가치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하며 숭고함, 위대함 같은 가치를 예로 들었다. 인간은 극한 환경 속에서 마주한 문제를 노력해서 극복해내는 것에 숭고함과 위대함을 느낀다. 과학기술을 통해서도 여러 문제를 극복해낼 수 있지만 여기서 숭고함이나 위대함을 느끼긴 어렵다. 이처럼 인간성이 사라지는 문제에 대해 신 교수는 “인간성을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기술이 발전하며 시대가 바뀌어도 인간성이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라고 답했다. 그는 인간성을 시대나 문화에 따라 변화하는 역사적 구성물로 봤다. 천 교수도 “인간성은 끊임없이 찾아가는 것”이라며 인간성을 하나의 답으로 규정하는 것을 경계했다. 규정된 인간성은 기존 인간마저도 배척하게 만드는 기준이 된다. 예컨대 ‘이성’으로 대표되는 근대의 인간성 개념에 따르면 이성적이지 못하고 감정적이라고 여겨진 여성은 억압될 수밖에 없었다. 인간성을 ‘신체적 자유’로 규정한다면 장애인은 비인간이 된다. 천 교수는 인간성에 대한 관통된 답보다 “인간 공동체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어떤 경우에 기존 인간과 다른 비인간, 포스트휴먼을 공동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인간성을 찾는 논의가 될 수 있다. 인간성에 대해 규정된 답 없이 끊임없이 고민하며 시대의 흐름에 따라 찾아가는 것이다.

새로운 ‘인간’의 등장, 책임은 누가?

이처럼 인간 공동체 사회에서 이질적인 존재, 포스트휴먼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게 이뤄질 수 없다. 하지만 포스트휴먼, 특히 과도기 단계인 트랜스휴먼은 이미 인간 사회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성형수술을 하거나 프로스테시스*, 인공 장기 수술을 받은 이들은 기존엔 인간과 동일시됐지만 엄밀히 말하면 트랜스휴먼이다. 이런 종류의 트랜스휴먼은 별다른 논의 없이 사회로 편입됐다. 인간에게 이로우면서 상용화돼도 큰 사회적 논란이 없을 기술만 사용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안전한’ 기술만 사용될 것이란 보장은 없다. 이탈리아의 세르조 카나베로 박사가 그 예시다. 그는 지난 2017년 죽은 시신을 대상으로 뇌 이식 수술을 진행해 최초로 성공했다. 이어 그는 살아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뇌 이식 수술을 진행하려 했다. 실제로 중증난치병을 앓고 있던 러시아인 발레리 스피리도노프가 자원했지만, 재정적 문제로 수술은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조수남 강사는 “카나베로 박사의 실험이 몇 년 후 실제로 성공할 수 있다”며 “성공 후 기술에 대한 논의가 폭발적으로 일어나도 이미 늦었을 수 있다”고 경계했다. 위급한 상황이나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상황에만 수술하는 등 제약을 걸더라도 어느 순간이 되면 통제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술의 통제가 어려운 만큼 기술을 통해 실제로 만들어지는 트랜스휴먼의 통제도 어렵다. 조 강사는 “연구를 통해 만든 결과물이지만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1935년 상영된 <프랑켄슈타인의 신부>라는 영화가 그 예다. 영화에선 소설과 다르게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괴물에게 짝을 만들어준다. 하지만 여성 괴물은 괴물이 아닌 박사를 좋아하게 된다. 조 강사는 “어떤 것도 태어난 이상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의 영화 <바이센테니얼맨>(1999)에 등장하는 로봇 앤드류도 마찬가지다. 그는 한 엔지니어의 실수로 다른 로봇과 달리 지능, 감정 그리고 호기심을 갖게 된다. 시간이 흐르자 앤드류는 ‘인간’으로서 자신의 법적 권리와 자유를 요구한다. 단순 상품에 지나지 않았던 로봇이 ‘통제되지 못한 실수’로 진화했고 이는 인간으로 인정해달라는 ‘통제할 수 없는 행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포스트휴먼을 직접 만드는 과학자는 연구결과가 어떻게 사용될 것인지 예측하기 힘든 만큼 포스트휴먼 창조에 대한 책임이 특히 막중하다. 홍 교수는 “연구를 하고, 결과를 내놓는 것만이 과학자의 일이라는 태도는 잘못된 것”이라 비판하며 “원하는 형태가 아니더라도 만들어낸 사람으로서 애정과 책임을 갖고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포스트휴먼을 만들어내는 데 있어 과학자에게만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이두갑 교수(서양사학과)는 포스트휴먼이 등장하거나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은 “그래도 괜찮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많은 사람이 과학기술이 발전하며 포스트휴먼적 사회가 가능해졌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연구자들은 그런 사회를 용인하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고 설명했다. 신상규 교수는 “과학자는 과학기술의 전문가지 삶의 전문가는 아니다”라며 과학기술이 도전하는 여러 문제에 대해 일부 전문가만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음을 강조했다. 포스트휴먼의 생산 그리고 투입에 따르는 여러 문제는 공론화돼 사회 전체 수준에서 결정돼야 한다. 홍 교수는 “과학기술의 사용처를 논의하는 공론장이 더 많아져야 하고 사람들도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소설 『프랑켄슈타인』 속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괴물을 보자마자 악한 존재로 규정한다. 이에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창조물임에도 괴물을 ‘괴물’로 대하고, 짝을 만들어주겠다는 약속도 어기고 마침내 죽이려는 마음마저 먹는다. 홍성욱 교수는 “괴물이 태어났을 때부터 사악한 존재였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며 “괴물은 백지상태로 태어나 상호작용을 통해 바뀌어 나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손현주 HK연구교수도 “괴물은 외형적으론 무섭게 생겼지만, 그의 행동과 그 의도는 선하다”며 “하지만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괴물을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괴물의 비극은 결국 인간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괴물은 결국 자살하고 인간사회는 지켜‘진’다. 하지만 앞으로 등장할 포스트휴먼, ‘괴물’이 스스로 인간사회를 떠나거나 인간이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생각은 당면한 문제에 대한 회피일 뿐이다. 과학자뿐만 아니라 사회를 이루는 모든 구성원이 포스트휴먼 시대를 만들어나가는 주체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논의를 해야 하는 이유다.

*갈바니즘: 죽은 개구리 뒷다리가 전기 자극을 받고 꿈틀거리는 것을 발견한 의사 갈바니의 실험에서 유래한 용어

*프로스테시스: 신체 일부의 기능을 대신하는 인공적 장치를 일컫는다.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는 의수나 의족 등. 하지만 기술의 발전에 따라 장애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삽화: 강세령 기자 tomata94@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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