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태어나고 우주가 죽는 곳에
시간이 태어나고 우주가 죽는 곳에
  • 박태현 기자
  • 승인 2018.03.25 06: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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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 책 | 『시간의 역사』,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사망을 추념하며

인간을 규정짓는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호기심’이다. 오래전부터 인간은 삶의 이유와 세계의 본질을 궁금해했고 나름의 답을 찾으며 존재에 대한 이해를 조금씩 넓혀 왔다. 올해로 발간 30주년을 맞는 『시간의 역사』가 소개하는 담론은 이런 존재론적 질문이 우주라는 거시적 차원으로 확장된 것이다. 이제는 고인이 된 스티븐 호킹은 『시간의 역사』를 통해 “우주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우주는 공간적으로 유한한가” “과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현대 과학의 대답을 제시했다.

호킹의 담론은 “우주에 시간적 출발점이 있는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근대 학자들은 우주가 어느 특정 시점에 생겨난 것인지(정립), 혹은 영원히 존재해왔는지(반정립)에 대해 정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스티븐 호킹은 이에 대해 “우주가 영원히 존재해왔든 그렇지 않든 간에, 시간이 과거 방향으로 무한히 계속된다는 가정을 토대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흔히 시간을 시작과 끝이 없는 연속적 흐름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임의의 사건이 있다면 그 사건 이전에 무한한 시간이 존재한다고 가정하게 된다. 결국 우리가 우주의 시작이 있다고 말하는 순간, 그 태초의 시작 이전에 무한한 시간의 흐름이 있었다고 가정할 수밖에 없고 ‘모든 것의 시작’은 그 의미를 잃는다.

그렇다면 시간의 기원은 어디에 있는가? 호킹은 “시간이란, 우주의 한 특성이며 우주가 시작되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에 주목했다. 그는 “일반상대성 이론과 허블의 관측은 우주가 무한히 작고 무한히 밀도가 높았던 빅뱅이라는 시기가 있었음을 시사한다”며 “이 조건에선 과학의 모든 법칙이 붕괴하고 미래를 예측할 가능성도 무너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빅뱅 전에 사건이 있었다고 해도 이는 오늘날에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다. 즉, 이들은 오늘날 어떤 관찰적 중요성을 갖지 않으며 무시될 수 있다. 호킹은 “그러므로 빅뱅 이전의 시간은 규정이 불가능하다는 의미에서 빅뱅이 일어난 순간에 시간이 시작됐다고 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주의 정립을 지지하는 이런 주장은 우주의 공간적 상태와 미래도 규정한다. 현재는 동적 우주론*이 세계를 설명하는 지배적인 우주론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따르면 중력이 항상 인력으로 작용한다는 전제하에 우주는 시간이 흐르며 팽창하거나 수축해야만 한다. 호킹은 “우주 전체가 다시 수축한다면 우주의 미래엔 또 하나의 밀도 무한대의 상태, 즉 빅 크런치(Big Crunch)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빅뱅이 시간의 시작이었던 것처럼 빅 크런치는 시간의 죽음이자 끝을 의미한다.

우주가 수축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블랙홀 내 특이점에서 국부적인 시간의 끝을 확인할 수 있다. 질량이 태양보다 매우 큰 항성은 연료를 모두 연소하고 나면 자체 중력에 의해 한 점으로, 즉 0의 크기로 무한히 수축하는 중력 붕괴를 일으킨다. 이른바 블랙홀이 탄생하는 것이다. 호킹은 “1970년 연구에서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블랙홀 속에 무한한 밀도와 무한한 시공 곡률을 가진 특이점이 존재한다고 입증했다”고 말했다. 이 특이점이 바로 빅 크런치의 미시적인 실현이자 시간과 우주의 죽음이다. 호킹은 이 특이점에 우주의 운명과 물리법칙이 선택되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봤다.

책이 주목하는 또 다른 담론은 모든 것을 설명하는 하나의 완전한 이론을 찾는 것이다. 현대 물리학은 우주에 모든 층위를 관통하는 공통 원리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또 인간은 원하는 대로 우주를 관측하고 그 결과로 논리적 추론을 이끌어낼 수 있는 존재다. 이에 호킹은 여러 이론을 포괄적인 단일 이론으로 엮다보면 우주 전체를 단일하고 완전하게 기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세계를 설명하던 여러 이론들은 거시세계를 설명하는 일반상대성이론과 미시세계를 설명하는 양자역학의 두 이론을 중심으로 통합됐다. 현대 과학계는 이 두 이론이 통합돼 우주에 대한 하나의 완전한 이론으로 도출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지금으로선 세상의 모든 것은 0차원의 입자가 아니라 1차원의 끈으로 이뤄졌다는 초끈이론이 이론적·실험적으로 완성된다면 그 주인공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호킹에 따르면 이런 이론 통합은 현대 과학이 물리적 현상의 필연성과 당위를 되찾는 과정이다. 호킹은 “19세기와 20세기에 과학은 극소수의 전문가를 제외하곤 지나치게 전문적이고 수학적인 것이 돼버렸다”며 “이들은 새로운 이론을 개발하는 데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우주가 왜 존재하느냐는 물음을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만약 완전한 이론이 발견된다면 모든 사람이 폭넓은 원리로서 그 이론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비전문가를 포함해 우리 모두가 우리 자신과 세계 존재의 당위에 대해 논하며 종래엔 신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호킹은 『시간의 역사』에서 이것이 과학의 궁극적인 목표이자 인간 이성의 최종적인 승리라고 말하고 있다.

*동적 우주론: 우주가 무한히 확장된다고 주장하는 우주론. 빅뱅 우주론이라고도 한다.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

스티븐 호킹
김동광 옮김
까치
250쪽
2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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