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윤 기자
문화부

음악 점역 취재를 하러 2호선 지하철을 타고 가던 길에 악보는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생각해봤다. 동시에 피아노를 처음 배우기 시작하고, 높은음자리 ‘도’를 기준으로 한 칸 한 칸 오선보를 새며 악보를 읽던 일곱 살의 내가 기억났다. 마치 영어 알파벳 읽는 것을 처음 배울 때와 같이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 같았고, 어린 마음에 똑똑해지는 기분이 들어 뿌듯했다. 그래서 같이 배우는 친구들이 모두 학원에 두고 다니던 피아노학원 교재를 굳이 집에까지 가져가 악보를 읽는 연습을 했다. 그리고 더 이상 악보를 더듬더듬 읽지 않아도 됐을 때 피아노 한 곡을 멈추지 않고 칠 수 있었고 조금만 더 하면 피아노를 능수능란하게 칠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자신감을 덤으로 얻었다. 나에게 악보는 유년 시절의 내게 진한 성취감을 맛보게 해준 것이었고, 자랑거리였으며, 10여 년이 흐른 지금도 돌이켜보면 내 마음에 온기가 흐르게 해주는 존재인 것이다.

지하철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추억 여행을 허겁지겁 마무리하며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 들어섰다. 그리고 그곳에서 ‘관현맹인전통예술단’의 단원인 시각장애인 이진용 씨를 만났다. 이진용 씨에게 악보는 당연하게 주어지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만든 소중한 것이고 영원한 궁금함의 대상이다. 그는 악보를 두 눈으로 직접 볼 수도, 오선보를 한 칸 한 칸 새며 더듬더듬 악보를 읽어냈을 때 성취감을 경험해볼 수도 없다. 하지만 점자 악보에 대해 말하는 그의 입가에선 잔잔한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점자 악보가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그의 마음속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리라. 그와 대화를 나누며 내가 악보를 두 눈으로 읽고 바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릴 수 있었다는 게 감사의 제목이었음을 깨달았다. 악보가 나에게 어떤 성취감을 줘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악보를 보며 피아노를 칠 수 있었단 그 사실 자체가 굉장히 소중한 것이었다. 너무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취재를 마치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한산한 승강장에 섰을 때, 스크린도어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평소 같았으면 스크린도어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머리를 정돈하며 옷매무시를 가다듬었을 나다. 하지만 그때, 난 그럴 수 없었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려 헝클어진 것이, 치마가 살짝 돌아간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저 내가 스크린도어에 비친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이, 내가 악보를 읽고 싶을 때 언제든 읽을 수 있단 사실이 감사했고 또 감격스러웠다. 멍하니 스크린도어에 비친 내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는 순간, 내가 익숙하게 느꼈던 모든 것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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