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은
작가

어릴 적 나는 엄마가 유난히 부끄러움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대표적인 엄마의 부끄러움 목록은 주름과 살, 고졸 학력과 이른 결혼이었다. 외출할 때면 엄마는 미간의 11자 주름을 앞머리로 덮었다. 엉덩이가 커서 가려야 한다며 집에서도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긴 티를 입었고, 다리가 뚱뚱하다며 한 번도 치마를 입지 않았다. 엄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빠를 만나 나를 낳았다. 학교 친구들은 엄마가 젊어서 좋겠다며 나를 부러워했지만, 엄마는 이른 결혼을 부끄러워했다. 간혹 누군가 언제 결혼했느냐고 물으면, 엄마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20대 중반에 결혼했다고 거짓말했다. 대학도 나오지 않고 일찍 결혼한 걸 알면 남들이 욕한다며 나와 동생을 입단속 시켰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부모님은 이혼했다. 엄마의 부재만큼 나를 힘들게 했던 건 주위의 반응이었다. ‘엄마 없는 딸’이라는 수식어는 동정과 멸시의 근거로 충분했다. 어느새 엄마처럼, 나는 내가 자라온 환경을 숨기게 됐다. 엄마가 왜 그렇게 부끄러워했는지, 어떻게 타인의 시선이 한 사람의 삶을 부정하게 만드는지 어렴풋이 이해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엉덩이와 다리가 코끼리 같다고 놀리던 아빠, 하나의 기준으로 아름다움을 주입하는 미디어, 엄마가 대학을 안 나왔다고 무시하던 친척들, ‘결혼 적령기’라는 말처럼 인생 루트가 확고한 사회. 엄마의 부끄러움 목록은 엄마가 받은 상처의 흔적이었다.

최근 한 강연에서 30대 여성이 고민을 털어놓았다. “사실 저 이혼했어요. 저는 제가 이혼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그런데 말이 웃기네요. 살다 보면 이혼도 하고 그런 거지. 왜 나는 내 인생에 이혼은 없다고 믿었을까. 요즘 계속 흔들려요. 남들한테 이혼했다는 말을 굳이 할 필요는 없지만, 숨기게 돼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 느껴지니까. 저를 속이지 않고 떳떳해지고 싶은데 자꾸 움츠러들어요.” 흔들린다고 말하는 그분의 모습에 내 엄마의 모습이 겹쳐졌고, 부모님의 이혼을 숨기려 했던 지난 시간이 떠올랐다. 나도 자연스레 내 경험을 말하게 됐다. 내가 중학생 때 부모님이 이혼했지만, 이제 나는 부모님의 이혼이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다행이라고 느낀다고. 안 맞는 데 억지로 참고 살지 않고 적극적으로 최선의 선택을 해준 부모님이 고맙다고 말했다.

그날 나는 동덕여대 하일지 교수의 발언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문예창작과 수업 중, 하일지 교수는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행 피해자가 ‘이혼녀’라서 성적으로 욕구가 있을 수 있다며, 결혼을 해주지 않아서 질투심에 폭로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해명을 요구하자 그는 작가는 이분법이 아닌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며, 자신은 생각의 여지를 남기기 위해 말했다고 변명했다. 하일지 교수의 발언은 사건의 입체적인 이면을 비추는 진실의 말이 아니라 사회에 고정된 관념을 재생산하는 ‘굳은 말’이었다. 이혼한 여성은 성적으로 개방적이고, ‘순결’한 여성만이 성폭행 피해자가 될 자격이 있다는 낡은 관념. 여성은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갖든 더 높은 지위의 남성의 ‘간택’을 꿈꾸고, 피해자가 성폭행 사실을 털어놓은 이유가 ‘결혼해주지 않아서’, ‘질투 때문’이라고 말하는 게 작가의 진실 추구 행동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폭력이다. 자신의 말에 의해, 삶을 부정하는 사람의 존재를 그는 한 번이라도 생각한 적 있을까. 엄마는 여전히 자신의 이혼을 숨기고, 나와 동생에게 미안해한다. 내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다 자신이 이혼한 탓이라고 말한다. 학벌로 됨됨이를 판단하는 사회이기에 여전히 이력서를 적을 때 망설이고, 외모 평가가 문화인 사회이기에 자신의 몸을 부정한다. 어릴 적 내 생각은 틀렸다. 엄마는 유난히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존재를 부정하는 말이 유난히 많은 사회였을 뿐이다. 나는 내게 강요된 부끄러움을 의심하며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워졌지만, 오랜 관념에 길든 엄마를 아직 설득하진 못했다. 혹시라도 그 기사를 접하면 엄마가 어떤 생각을 할지 예상됐기에 나는 그 말에 지고 싶지 않았다.

어느새 나는 엄마가 나를 낳았던 스무 살을 통과했다. 서른이 넘은 지금, 엄마처럼 나에게도 부끄러움의 목록이 생겼다. 정확하게 말하면, 상처가 늘었다. 넓은 이마를 가리려고 앞머리를 내리고, 팔뚝 살이 출렁일까봐 더운 여름에도 민소매를 입지 않는다. 여전히 부모님의 이혼이나 몇 가지 정보로 나를 판단하려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만난다. 다행히 나는 내 부끄러움을 의심할 수 있다. 부끄러움이 어디에서 왔는지 질문하며 ‘말’에서 벗어나고 있다.

돌이켜보면, 이혼은 엄마의 선택이었다. 엄마 나이 서른여섯에 내린 자신의 선택. 내 생각과 달리 엄마는 타인의 시선에만 맞춰 사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흔들리더라도 끝내 자신의 선택으로 살아가는, 괜찮게 살아가려는 나와 같은 존재다. 언제나 삶은 말을 초과한다. 자세히 보면 누구나 편견을 넘어 자기 이유로 살아간다. 살다 보면 이럴 수도 있지,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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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그리고 노래하는 사람.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기록한다. 지은 책으로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외 2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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