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숙 교수
생명과학부

서지현 검사가 방송사 뉴스룸에 나와 몇 년 전 검찰 간부로부터 당한 성추행 사실을 직접 고발한 순간, 새로운 시대로의 문이 열렸다. 문화계 권력에 대한 고발에 이어 충남도지사의 비서가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발하기까지 불과 35일. 우리 사회의 미투 고발은 거침없는 토네이도 급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배우와 교수가 자살하기까지 매일 쏟아지던 고발과 폭로. 뉴스를 보기 겁난다고 느낄 즈음 미투 운동의 본질이 흐려진다는 걱정이 나오기 시작했다.

해시태그를 통해 퍼지던 미투 운동이 언론으로 나아가면서 그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에 대해 헌법이 보장하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훼손되는 것과 피해자를 꽃뱀으로 둔갑시켜버리는 2차 피해가 대표적이다. 또 가해자의 가족에게 쏟아진 대중의 관음적 관심은 피해자에 대한 가해 못지않게 범죄적이다. 인생을 걸고 실명으로 성폭력을 고발한 피해자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보다 더 많은 이들이 폭로의 배후에 숨은 이유를 찾기에 급급한 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건강하지 못한지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우리 대학의 문제로 시선을 돌려보자. 교수, 학생, 직원 사이에 학문, 지위, 직종의 위계가 다양하게 공존하는 대학이야말로 위압에 의한 성폭력이 이뤄지기 쉬운 곳이다. 지난 19일(월) 전국 44개 대학의 여교수협의회는 미투 운동의 지지와 더불어 미투 운동이 사회 성장의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늦었지만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어떻게 미투 운동이 우리 대학 사회 발전에 기여하게 될 것인가.

폭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나도 당했다”는 고발이 일부 남성들에게 불편함으로 다가가고 있는 지금, 미투 운동이 어떻게 남성들에게 기여하게 될 것인지를 짚어봐야 할 것이다. 유엔의 세계 인권 선언은 모든 인류 구성원의 타고난 존엄성과 동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세계의 자유, 정의 및 평화의 기본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나아가 남녀의 동등한 권리에 대한 신념을 재확인하고 있다. 서울대는 대한민국과 세계를 이끌어나갈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다. 따라서 인류 보편적 인권 감수성과 성 평등에 대한 젠더 감수성은 세계무대에서 활약할 서울대 구성원들이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이다. 학생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무대에서 활약하고 정부 요직의 물망에 오르는 우리 대학의 교수들이야말로 당장 갖춰야 하는 소양인 것이다.

그래서 미투 운동이 성공하기 위해, 또 그 부작용은 최소화하기 위해 27대 서울대 총장직에 출사표를 던지신 분들께 제안한다. 대학 본부는 미투 운동을 상시로 지원할 체계적인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인권센터가 있어 범죄 사실을 고발할 수 있고 조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는 터져 나오는 새 시대의 요구를 감당할 수 없다. 조그만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 중대 범죄를 막는 지름길이다. 매일 일상에서 벌어지는 습관적인 인권 침해에 경종을 울리고 우리 모두 세계 시민으로서의 예절을 갖출 길을 마련해야 한다. 본부 간부 조직에 여학생처를 신설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되리라. 여학생처라고 이름 붙인 것은 그저 상징일 뿐, 이 부처는 여성과 학생, 소수자들의 인권 상황을 감시하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일을 담당하는 부처가 될 것이다. 총장이 주관하는 매주 간부 회의에서 대학의 예산과 외부 캠퍼스의 개발 못지않게 양성평등과 학생 인권 실태가 매주 토의되는 그 날, 서울대는 진정으로 세계적 대학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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