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현 직원
수리과학부

연말·연초가 되면 기관별로 종무식이나 시무식을 한다. 그런 자리엔 으레 매우 이상적인 내용을 담은 기관장의 격려사가 낭독되기 마련이다. 학교 사정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한 해 동안 직원들이 최선을 다해줘서 무사히 잘 운영됐다면서 말이다. 우리는 한 가족이다. 우리 기관이 올해 어떤 목표가 있는데, 어렵겠지만 전 구성원이 한마음으로 단결해서 잘 해보자면서 앞으로 더 열심히 일해달라고 말이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들어온 첫 직장이었던 이곳 서울대에서 처음 참석했던 종무식, 시무식. 그곳에서 학장님 말씀에 크게 감명받았던 때도 있었다. 나는 비정규직이지만 내 노력이 내가 소속된 학과뿐만 아니라 나아가 대학에 기여가 된다는 마음에 정말 열심히 일했다. 남들이 알아주진 않겠지만, 나 혼자 느끼는 보람에 만족하며 묵묵히 일할 뿐이었다. 나중에라도 누군가는 알아봐 주고 인정해주겠지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았다.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일이 더 늘어났다. 일 잘한다고 일이 더 늘어나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정규직으로 전환해준다거나 하다못해 월급을 올려주는 격려 또한 없었다.

‘서울대학교 비정규직’으로 검색하면 생각보다 많은 기사가 검색된다. 개인의 문제로만 알고 있던 것이 서울대의 전반적인 문제였으며,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사회의 축소판 같기도 하다.

‘직무몰입도’란 용어가 있다. 구성원들이 일과 조직에 몰입할수록 기업의 생산성이 증대된다는 것이다. 서울대는 발전계획을 통해 전 세계 유수의 대학을 리드하는 고등교육기관이 되고자 하는 목표를 갖고 있다. 총장 및 각 기관장은 이런 목표를 이뤄내기 위해 구성원들의 직무 몰입도를 끌어올리고자 고심하고 있다. 특히 교육과 연구를 뒷받침하는 행정 영역에서의 동기부여가 절실한데, 이유가 있다. 행정 및 시설에 종사하는 직원의 규모는 3천여 명 수준이라고 한다. 이중 법인직원만을 정규직으로 본다면 정규직이 천여 명이고 나머지 2천여 명은 비정규직원이다. 비정규직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에 기관장들이 비정규직원들의 직무몰입도를 끌어올리는 데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당장 비정규직원들이 피부로 느끼는 바는 어떤가? 얼마 전엔 대학본부에서 직원들에게 신분증을 발급하는데, 비정규직인 자체직원은 제외 대상이라는 공문을 발송했다고 한다. 또한,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메일의 용량을 늘려주기로 했는데, 이 또한 자체직원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한다. 지난 해 초에는 임용된 지 몇 해 되지 않은 낮은 직급의 정규직 급여가 낮기 때문에 이를 보전해줄 필요가 있다면서 대학본부는 정규직에 한해 특별 수당을 편성해 지급한 바 있다.

정규직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급여를 받고 있는 비정규직원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매우 크다. 근로조건이 개선되기는커녕 급여지원뿐만 아니라 업무 환경에서조차 차별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들이 재직하는 동안 지속해서 겪었던 문제다. 해당 문제 때문에 비정규직원들의 직무몰입도가 현저하게 낮아져 있는 상태이며 이를 끌어 올리기 위해 이제부터라도 실질적인 제도 개선과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

서울대가 행정영역에서 직무몰입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제도를 개선하고 예산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차별해서 지원해서는 안 된다. 그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 대학들을 리드할 국제적인 수준의 대학이 되기 위해선 행정영역에서의 직무몰입도를 지금보다 더욱 끌어올려야 하며, 이를 위해선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하고 차별 지원했던 ‘직종 차별’을 없애야 한다. 비정규직자들에게 더 이상 ‘말’이 아닌 제도 개선과 예산 지원을 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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