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메세나, 기업과 예술의 만남

예술과 기업. 이 둘은 언뜻 보기엔 멀어 보이지만 사실 가까운 사이다. 예술은 기업의 지원을 받아 한 층 더 성장할 수 있고 기업은 예술과의 협력을 통해 스스로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기업이 예술인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제도인 ‘메세나’는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을 활발히 했던 고대 로마제국의 정치가 ‘가이우스 마에케나스’(Gaius Maecenas)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메세나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기업은 문화예술을 지속적으로 후원해왔고, 이를 통해 많은 예술인과 시민이 더욱 풍성하게 문화예술을 향유하고 있다.

메세나가 기업에 녹아든 방식

1994년, 한국메세나협회가 설립된 이래로 국내에선 본격적으로 메세나 활동이 시작됐다. 이는 200여 개의 기업이 ‘한국메세나협회’란 이름 아래 모여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을 펼치는 것으로 발전했다. 한국메세나협회에선 ‘예술지원매칭펀드’에 참여할 중소·중견기업을 모집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예술지원매칭펀드란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이 예술단체를 지원하는 금액에 비례해 한국메세나협회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예술단체에 추가로 재정적인 지원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사업은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이 메세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기회를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2007년부터 시작됐다. 한국메세나협회는 기업을 선정할 때 예술단체 지원 역량과 지원의 지속성을 기준으로 심사한다. 예술단체는 신청한 프로젝트 계획과 연간 활동계획, 과거의 활동실적, 기업 교류협력 프로그램의 충실도, 사회기여 프로그램의 시행 정도를 기준으로 선정돼 예술지원매칭펀드의 지원을 받게 된다.

메세나에는 기업이 직접 공연장을 운영하거나 시민을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여는 것도 포함된다. 실제로 민간 기업에서 운영하는 공연장인 ‘LG아트센터’와 ‘롯데콘서트홀’은 공익적인 성격의 공연을 열기도 한다. 지난 11월 LG아트센터는 한국메세나협회와 LG연암문화재단과 함께 청소년 진로교육 프로그램을, 롯데콘서트홀은 소방관, 경찰관, 간호사를 초청해 사회 공헌 콘서트인 ‘당신이 대한민국입니다’를 열기도 했다. 시민을 대상으로 문화예술교육을 진행하는 메세나 활동으로는 한화의 ‘한화예술더하기’가 있다. 한화예술더하기의 성과분석을 맡은 임승희 교수(수원대 경영학과)는 “단순히 문화예술교육, 문화예술가 양성 등 문화예술 그 자체에만 목표가 있는 게 아니라, 문화예술을 통해 사회적 이슈에 접근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사업”이라며 “문화예술을 환경문제를 비롯한 사회통합 문제와 연결하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엔 기업이 거래처나 그 관계자를 접대하는 한 방식인 ‘문화 접대’로서의 메세나가 활발하다. 기업의 영업 활동을 위해 꼭 필요한 접대비 지출은 안타깝게도 간혹 불건전한 문화를 즐기는 것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는 2007년부터 기업이 거래처를 위해 도서나 음반을 구입하거나 공연 및 전시, 스포츠경기 관람권을 구입하는 등 문화비로 접대비를 지출하면 기존 접대비 한도의 20% 범위에서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했다.

기업과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다

메세나는 공연예술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주고, 그들이 메세나를 통해 경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임승희 교수는 “한화예술더하기에 참여한 예술인은 참여하는 동안 자신들의 고용과 수입이 안정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며 “이들은 금전적, 행정적인 지원 덕분에 교육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예술 강사로서 실력을 쌓을 수 있었다고도 말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메세나는 예술인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줌으로써 예술계 신인 강사들에게 경력 개발의 사다리가 돼준다. 임승희 교수는 “2017년 한화예술더하기에 참여한 예술가들의 76.7%는 프로그램 참여 후 다른 프로그램의 진행을 요청받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메세나가 신인 강사들의 성장을 위한 발판이 되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기업은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를 개선하고 사내 조직 문화를 선진화하는 데 메세나를 이용한다. 신동엽 교수(연세대 경영학과)는 “메세나를 통해 기업은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소비자와 투자자에게 심어줄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기업이 창조적 혁신이 핵심 가치인 순수예술계와의 접촉을 통해 혁신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다”고 기업이 메세나 활동을 활발히 할 때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에 대해 설명했다. 메세나는 기업 구성원들에게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하며 사내 분위기를 화목하게 바꾸는 데도 역할을 하고 있다. 신동엽 교수는 “메세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기업의 구성원들은 기업에 대한 자부심과 충성심, 그리고 만족감이 높다”며 메세나를 통해 사내 조직문화가 개선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메세나, 더 높이 날려면

이처럼 기업과 예술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메세나가 국내에서 더욱 활발해지기 위해선 실효성 있는 메세나 관련법을 도입해야 한다. 2013년에 ‘문화예술 후원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지만 그 실효성은 미미한 실정이다. 해당 법률에선 기업들이 실질적으로 세제 혜택을 부여받을 수 있는 실행법인 조세특례제한법과 지방세특례제한법, 그 외 조세 관계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국세 및 지방세를 감면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마련했다. 하지만 정작 조세특례제한법의 개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실질적인 변화는 없는 상태다. 따라서 많은 기업이 메세나에 참여할 경제적 유인이 부족한 상황이다. 프랑스의 경우, 기업이 예술을 지원하는 금액의 60%를 세액 공제해주도록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그 결과 2004년엔 10억 유로였던 문화예술 분야 기부액이 8년만에 30억 유로로 약 3배 증가했다. 이에 경남메세나협회 이지예 대리는 “메세나 활성화를 위해선 정부가 기업의 문화예술분야 기부금에 대한 조세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대기업과 함께 중소기업의 참여를 확대해 나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중소기업의 경우엔 재정적인 부담이나 인력 부족의 이유로 메세나 추진이 쉽지 않다. 중소기업진흥공단 고객행복부 한승훈 대리는 “중소기업이 메세나에 동참하기엔 재정적인 부분에서 어려운 점이 많다”고 중소기업이 메세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이유를 밝혔다. 중소기업에 대한 한국메세나협회의 꾸준한 관심과 도움은 중소기업이 메세나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준다. ‘예술지원매칭펀드’ 사업을 통해 2017년 한 해 동안 기업과 예술단체 간에 162건의 결연이 맺어졌고, 총 47억원이 예술단체에 지원됐다. 이는 2017년 한 해 대기업의 예술단체 지원액이 31억원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의미 있는 액수다.

‘김영란법’으로 더 잘 알려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서 예술 활동과 관련한 지출을 예외 항목으로 인정해주는 것도 메세나가 발전하기 위해서 고려해봐야 할 사항이다. 해당 법에선 접대비 상한선을 5만원으로 명시하고 있는데 10만원을 웃도는 요즘 공연의 표값을 고려했을 때 이는 사실상 비현실적인 금액이다. 신동엽 교수는 “김영란법은 순수예술을 위축시킬 위험이 높다”며 예술 활동과 관련한 지출은 김영란법에서 예외항목으로 인정해 줘야한다고 주장했다.

예술은 팍팍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기쁨과 편안함을 선사하며 세상의 그늘을 밝혀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예술인이나 예술단체는 기업의 경제적인 후원 없이는 홀로서기가 어려운 경우도 많다. 기업이 문화와 예술이 사회와 조직의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문화예술계를 지원하기 시작할 때, 두 분야가 같이 발전해 나가는 가치가 발돋움하리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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