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청소년 참정권을 둘러싼 논의를 되짚어보다

지난겨울, 거리를 밝힌 1,600만의 일렁이는 촛불 물결의 한 축엔 청소년들이 있었다. 그들은 교실이 아닌 거리에 나와 촛불을 들고 싸웠지만, 정작 이후 치러진 대선에선 어떤 목소리도 낼 수 없었다. 현행법상 만 19세 이상의 성인에게만 참정권(參政權)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만 19세 이상에게만 주어진 나라는 OECD 35개 국가 중 한국이 유일하다.

최근 ‘선거연령 하향 법안’이 발의됐음에도 자유한국당의 반대에 부딪혀 법안이 표류하자 청소년들은 참정권을 요구하며 직접 행동에 나섰다. 이들이 이번 6월 지방선거에 참여하기 위해선 4월 국회가 끝나기 전에 법안이 통과돼야만 한다. 때문에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와 ‘선거연령 하향 4월 통과 촉구 청소년 농성단’은 지난달 22일부터 국회 앞 철야농성을 시작했다. 이에 『대학신문』에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고, 우리나라 청소년의 정치참여 현실에 대해 고민해본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를 비롯한 청소년단체들이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참(參): 참여를 외치는 청소년들

지난 국정농단 사태 이후 청소년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선거 가능 연령을 만 18세로 하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에 지난 9월 청소년들은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를 꾸려 참정권 요구에 나섰지만 지방선거를 약 2달 앞둔 현재까지도 이들의 목소리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이은선(18)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공동대표는 “기자회견을 열고 행진을 하고 국회의원과 면담을 해도 청소년 참정권 문제는 항상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이 현실”이라며 “투표권이 없어 사회적 결정 과정에 개입하고 목소리를 낼 수 없다”고 꼬집었다.

청소년인권행동연대 ‘아수나로’에서 활동하고 있는 윤가빈 씨(16) 역시 “학교를 다니다 보면 학생인권침해와 청소년 차별이 몹시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투표 권력이 없는 청소년들은 인권 정책의 사각지대에 노출되기 쉽고, 이로부터 비롯되는 여러 문제에 대항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김동석 정책본부장은 “선거연령 하향 이후 선거법 위반의 모든 책임은 학생 개인에게 돌아간다”며 “이들을 보호할 대책 마련이 선행돼야만 청소년에게도 참정권을 부여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정(政): 정치가 교육에 스며든다면

밤을 지새우며 국회 앞을 지키고 있는 이들은 선거 가능 연령을 궁극적으로 만 16세까지 하향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은선 공동대표는 “당장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은 만 16세 참정권에 대한 공감을 얻을 시간적 여유가 부족해 우선 만 18세 참정권만이라도 보장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그러나 18세 선거권을 시작으로 앞으로 선거 가능 연령을 낮추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는 포부를 내비쳤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적지 않다. 가장 큰 우려는 학교가 소위 ‘정치판’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다. 김동석 정책본부장은 “학교 내에서 정치 활동이 허용됨으로 인해 특정 후보에 대한 찬반 논란이 일면 갈등이 불가피하며, 이에 따라 학습권을 침해받는 학생이 생길 것이 분명하다”며 “교실의 정치장화(化)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에 대해 이은선 공동대표는 “학교의 주요 목표 중 하나인 민주시민 양성을 위해선 정치에 관한 담론 형성은 불가피하다”며 “이런 교육 목표 하에서 정치 참여를 가로막는 것은 모순적”이라고 비판했다.

미성년자의 정치의식 성숙도에 대한 논란 역시 존재한다. 미성년자의 정치적 시각은 미숙하며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의사표현이 왜곡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윤가빈 씨는 “청소년은 판단 능력이 부족해서 선거권을 가지기에 부적절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며 “그러나 나이와 정치적 판단력은 비례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상경 교수(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청소년의 선거연령 18세 인하문제에 대한 소고」에서 ‘현행법상 병역 의무와 공무담임권, 혼인과 운전면허 취득의 기준은 모두 만 18세인 반면 선거권만 만 19세를 기준으로 하고 있어 모순적’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김동석 정책본부장은 “선거연령 하향이라는 시대사적인 흐름을 유념하고 살펴봐야 한다는 부분엔 공감한다”면서도 “그러나 선거연령 하향에 앞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부분을 담보해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과 함께 정치적 발언이 금지돼 있는 교원과 그렇지 않게 될 학생 사이의 형평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 등이 전제돼야 한다”며 선거연령 하향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우려들에 대해 다각도적인 논의가 부족한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권(權): 권리와 의무 사이, 한국은?

우리나라의 경우 1948년 제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선거연령이 만 21세 이상으로 지정된 이후 1963년 만 20세, 이로부터 약 40년이 지난 2005년 만 19세 이상으로 조정됐다. 헌법상 선거권을 국민의 기본 권리로 명시하고 있음에도 약 70년간 만 19세 미만 청소년의 정치 참여는 제한돼온 것이다. 게다가 각종 선거에서 후보로 나설 수 있는 피선거권은 만 25세 이상으로 제한돼 있다. 그렇다면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미국의 경우 1971년 종전의 21세에서 18세로 선거권 하한 연령이 조정됐고, 유럽의 여러 국가 역시 만 18세를 선거 가능 연령으로 명시한지 오래다. 더 나아가 유럽 일부 국가에선 만 16세 선거권 운동이 일어나고 있으며, 오스트리아는 이미 만 16세 미성년자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기도 했다. 실제로 2016년 국제의회연맹(IPU)의 보고서에 따르면 만 18세에도 투표권이 부여되지 않은 나라는 한국, 바레인, 레바논, 말레이시아, 오만뿐이다.

이은선 공동대표는 “이들 국가처럼 정치에 참여하고 싶은 의사가 있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길 바란다”며 정치의 영역이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만큼 모두가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덧붙여 윤가빈 씨는 “선거법만 통과될 것이 아니라 정당법 역시 개정돼 정당 활동과 선거 운동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한다”며 우리나라의 정치가 선거권의 확대와 더불어 피선거권 역시 확대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김동석 정책본부장은 “다른 나라의 경우 우리나라와 수험생을 구분하는 학제 체제가 다르기 때문에 단순한 비교는 무의미하다”며 “게다가 일본의 경우 수업 중, 더 나아가 방과후 수업 중의 정치 활동을 금지하는 학칙을 신설하는 등의 대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권리와 의무가 같이 나아가기 위해 여러 대책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만 18세 선거권이 국회에서 논의된 지 20년이 넘은 지금, 광장 민주주의를 일궈내며 청소년 시민의식은 한층 성장했지만 어른들의 시선과 정책은 그대로다. 더 이상 정치는 기득권을 가진 어른들의 전유물이 아닌, 사회 구성원 모두의 것이 돼야한다. 하지만 다각도적인 고민 없이 단순히 선거 연령을 하향하는 것은 수많은 위험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는 걸 염두에 둬야한다는 지적 또한 만만치 않다.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청소년 참정권을 둘러싼 논의가 봄철 한 때의 산불에 그치는 게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새로 지피는 불꽃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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