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순 교수
보건대학원

대학 1학년을 마치고 입대한 아들이 첫 휴가를 나왔다. ‘자유자재’라는 개념이 없는 시간을 빠져나왔기 때문에 무엇을 하든 내버려 둘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들은 오자마자 배달 음식, 패스트푸드, 편의점 음식들의 껍데기와 용기로 자기가 방 주인이라는 영역 표시를 해 댔다. PC방은 기본이고, 다녀왔다는 장소 어디에나 음주는 기본이었다. 결정적으로 슬쩍 들어왔다 어느 틈에 나가 버리는 주인 없는 방에는 군대에서 배운 담배 냄새가 짙었다.

치료가 필요해서 병원도 방문했다. 치과 빼면 5분 이내로 끝난 진료마다 전문의들은 자기 영역에 충실한 소견을 줬다. 너무나도 건강한 나이고 군인이니 무슨 말을 더할까 싶으나 ‘입대 전후 크게 달라졌거나 신경 쓰이는 건강 문제는 없는지’ ‘집단생활 중이니 무엇을 주의해야 너 자신과 서로가 모두 안전한지’ 같은 말은 들을 수 없었다. 1차 의료(문지기 의료)가 약한 의료 현실이 새삼 다가왔다.

결국 내가 말해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네가 알아서 잘 하겠지만…” 말문을 열 때 이미 ‘엄마 잔소리’처럼 들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한쪽 눈만으로 아이의 자유만 보는 척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약 복용이나 치료 이전에 먹고 마시고 피우는 건강 위협들과 그들의 영향과 의미를 말했다.

아이는 대체로 건성, 일부 발끈, 아주 일부 수긍을 했다. 그 과정에서 PX에서 고를 수 있는 먹거리 거의 전부가 (건강에는) 폭탄성 음식들인 점, 단체 생활에서 담배가 의미하는 유혹, 화장실 물비누 설치 제안이 ‘개인이 알아서 사서 쓸 일’로 피드백 받는, 말하자면 나 홀로 손 위생 지키기도 힘든 상황들…. 군대를 모르는 부모이자 보건학자인 엄마를 반격하는 구체적인 리얼리티를 만날 수 있었다.

이건 사실 한 모자의 시시콜콜한 일화로 끝날 일은 아닌 것 같다. 음주 연령 제한, 흡연 규제, 비만 예방을 위한 식품 규제, 헬멧 착용 등 개인과 사회를 위협하는 것들에 국가가 개입하고 정부가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과 이런 국가 행위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보모 국가’(Nanny state)라고 시니컬하게 맞서는 입장 갈등은 정치 영역에서도 존재하니 말이다.

으뜸 보모 국가인 핀란드와 스웨덴은 그렇다 치고 미국만 봐도 ‘보모 국가’는 현재 큰 논쟁거리다. 2012년 뉴욕시 시장이 극장과 상점에서 대용량 소다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제안한 후, 건강증진에 대한 국가 책임과 개인 선택 자유 사이 첨예한 법적·사회적 공방이 있었던 것이 한 예다.

개인의 선택권과 보모 국가 대립은 옳은 하나만을 찾는 것이 결론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건강을 위해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 ‘대화 초대’에 가깝다. 누군가 사마귀가 생기고, 변비가 낫지 않고, 손목 인대가 늘어난 원인을 찾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책임이 개인에게만 돌아가면 안 된다. 건강 동기만큼 중요한 것은 적절한 환경이라는 것도 충분히 알려야 하고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야 한다. 건강에 관한 한, 당장은 자유처럼 보이는 선택지를 구성하는 대부분에는 상업적이고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가득하다. 이런 ‘자유’ 뒤에 숨은 정교하고 치열한 ‘이해’들이 정보로 전달되고 공유되고 논의돼야 한다.

요즘 교정 곳곳에서 ‘신입생은 처음이라’ 티가 역력한 모습들을 만난다. 봄보다도 빨리 캠퍼스에 달려와 겨울을 밀쳐내는 장면들이다. 그 모습을 보노라면 아들에게와 똑같이 ‘네 멋대로 살라’는 마음과 사실 봄 교정은 잦은 안전사고, 새 환경 적응 문제, 정신과 몸을 아프게 만드는 문제가 많을 때기도 하니 부디 ‘건강 챙기며 살라’는 마음이 경쟁하듯 머릿속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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