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개헌안은 전문 및 기본권, 지방분권 및 경제 부분, 권력구조 및 헌법기관의 권한 등 많은 분야에서 현행 헌법으로부터 작지 않은 변화를 제안하고 있다. 이후 여야 3당의 원내대표 회의를 필두로 정치권의 협상이 시작됐지만 대통령 개헌안에 대한 앞으로의 논의가 매끄럽게 진행되리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여권은 대통령 개헌안을 적극 지지하고 나선 반면, 야권은 관제개현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파싸움의 논리에 휩싸여 정작 개헌안의 내용에 대한 진지한 숙의와 여론수렴 과정이 뒷전으로 밀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권은 이번 개헌안 발의에 대해 정부와 여당이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국회를 압박하려는 시도라며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야권을 비롯한 국회가 국민적 요구를 외면하여 지금까지 개헌 논의에 있어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점을 먼저 반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로 국회에서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 특별위원회’가 꾸려져 운영돼왔지만 각 정당 및 정파별 이해관계에 따라 갈등을 거듭하며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개헌안이 발의된 이후 여야 정치권의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태도가 계속된다면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사안에 국회가 마땅히 담당해야 할 책임을 방기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여야는 우선 지금 쟁점이 되는 핵심적인 사안들에 각자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국민적인 논의를 이끌어나가야 한다. 권력구조의 문제가 대표적인 사례인데, 현재의 논쟁 지형을 보면 논점이 제대로 정리되고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4년 연임제’와 ‘4년 중임제’라는 표현이 무분별하게 뒤섞여 사용되고, ‘분권형 대통령제’나 ‘책임총리제’ 같은 모호한 개념이 각자의 입맛대로 사용되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런 소모적인 주고받기 속에서 정부형태 못지않게 중요한 선거제도나 사법제도 개선 등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시작되지도 못하고 있다. 전문이나 지방분권, 경제 분야 등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을 보더라도, 특정한 어휘나 준거가 포함되는지에 대한 자극적인 언사가 주를 이루고 있을 뿐 정작 우리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찾기는 어렵다.

민주화의 산물인 87년 헌법은 대통령 직선제를 그 골자로 했고, 지난 30년 동안 한국사회의 절차적 민주주의 달성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의 급격한 사회변화를 담아내고 민주주의를 심화하며, 미래 한국의 방향타를 새롭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상당히 두텁다. 개헌에 대한 논의가 바로 그 집약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 국회의 역할은 매우 실망스럽다. 논쟁적인 사안을 다루면서 각자의 이해관계를 완전히 내려놓으라고 요청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발상일 것이다. 하지만 국회가 정략에 파묻혀 오히려 국민들을 호도하거나 미래지향적인 합의를 도출하는 데 방해만 된다면 그 실패에 대한 국민들의 날선 비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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