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대학생들 사이에서 우편으로 학보를 주고받는 것은 익숙한 풍경이었다. A4 용지를 접어 주소를 적을 수 있는 띠지를 만들고, 그 안에 학보를 넣어 보냈다. 띠지 안쪽에는 간단하게 메모만 남기거나, 가끔 이야기가 길어질 때면 한 면을 빡빡하게 채우기도 했다. 그런데 편지지에 편지를 써서 주고받는 것과 학보에 사연을 적어 소식을 주고받는 것은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에게 사뭇 다르게 느껴졌던 듯하다. 신문에 실린 다소 무거운 기사보다는 띠지 안쪽에 적힌 친구의 편지를 더 꼼꼼히 읽기는 했지만, 학보를 보낼 때는 다소 공적인 느낌이 더해졌다. 사적 관계에서 시작된 일이지만 학보의 발간 주기에 리듬을 맞춰 학보를 주고받다가 한 번이라도 거르게 되면 임무를 소홀히 한 듯한 마음이 들어 살짝 죄의식이 들기도 했다. ‘분자적 개체’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의 학교 소식을 담장 너머로 전송하는 메신저 역할을 자처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 거창한 해석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이렇게 학보를 주고받는 사소한 일상 속에서 학교 간 소통의 고리들이 만들어졌고, ‘시대정신’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대학생으로서의 연대감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중심에 바로 『대학신문』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총장 선거를 앞두고 서울대를 구성하는 4개의 집단(교수, 학부생, 대학원생, 직원) 대표들이 참여한 좌담회에서, 패널들은 이구동성으로 차기 총장이 최우선으로 갖춰야 할 덕목으로 ‘소통 능력’을 강조했다(8면). 이처럼 소통의 가치가 중요한 것으로 부각되는 사회는 역설적으로 현재 ‘소통’에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시흥캠퍼스 추진위원회는 기획단과 건설추진단에 학생 참여 여부를 두고 의견이 엇갈려 사전회의부터 난항을 겪었고(1면), 학생 징계 철회 문제도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황이고(12면), 전체학생대표자회의도 총학생회 총노선을 부결시키며 중도폐회됐다(1~2면).

『대학신문』 1961호는 이런 현장의 모습을 독자에게 충실하게 중계해 줬다. 게으른 독자로서 『대학신문』 학생 기자들의 수고와 노력에 늘 고마움 마음을 갖고 있다. 더불어 『대학신문』 기자들과 편집진들이 다양한 목소리들을 소개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기사를 통해 좀 더 적극적인 ‘소통의 장’을 마련해 주기를 기대한다. 소통은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것에서 출발하지만, 서로 다른 입장을 지닌 사람들이 소통의 결실을 보기 위해선 서로 다른 지점을 놓고 치열하게 논쟁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언론의 몫이다. 언론은 논쟁 지점을 정확하게 짚어주는 것을 넘어 활발한 논의가 펼쳐질 수 있도록 이슈를 생산해 내야 한다. 예를 들면, 전체학생대표자회의 총노선 부결과 관련해서는 총학과 각 단대 학생회장의 발언을 몇 줄 소개하는 것보다는, 적어도 핵심 논쟁 지점이 됐던 부분, 입장의 차이가 드러나는 부분의 의미를 좀 더 명확하고 상세하게 지적하는 것이 필요했다. 양쪽 진영에는 스스로 보지 못하던 부분을 비춰보게 하는 성찰의 시선을 던져주고, 독자에게도 적극적으로 논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기사 형식과 내용에 대해 고민해 봤으면 한다.

더 큰 맥락에서 『대학신문』이 학내 언론의 역할에 만족하지 않고, 대학 울타리를 넘나들며 사회적 이슈를 생산하는 언론이 되기를 기대한다. 『대학신문』은 한국전쟁 당시 여러 대학이 ‘전시연합대학’으로 통합 운영되던 상황에서 범 대학 연합 신문의 형태로 창간됐다. 이런 연유로 『대학신문』이라는 제호가 붙은 것이니, 이후에도 계속 한 대학의 학보가 ‘대학신문’이라는 보통명사를 ‘독점’하는 것은 다른 대학의 입장에서는 껄끄러울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서울대 신문이 『대학신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단지 내부 구성원들의 의사소통 창구로서 해야 할 역할에 멈추지 않고, 대학언론 기관에 부여되는 사회적 기대와 시대적 사명에 부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생각한다. 안쪽으로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좀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나’의 문제로 끌어안고, 바깥쪽으로는 대학생들의 진취적 사고를 더 많은 외부 독자들에게 전파하는 방법을 모색할 때, 더욱 ‘대학신문’의 명성에 부합할 수 있을 것이다.

김승민 강의교수
기초교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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