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 교수
국제대학원

한국현대사는 미국의 대외정책을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하나의 신화라고 할 수 있다. 1945년 이후 유럽 제국의 몰락과 함께 미국은 전 세계를 경영해 왔다. 미국은 자본주의 시장을 지키고 확대하기 위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많은 신생 독립국과 개발도상국들에 원조를 해왔다. 그러나 이들 국가 중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미국이 기대했던 만큼, 아니 기대했던 것보다 큰 성과를 이룩한 곳은 한국밖에 없다.

정부가 수립된 지 70년밖에 안 됐고, 그나마 전쟁과 분단을 경험한 한국이 이렇게 성장했다는 것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결과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바라는 것이 쓰레기통에서 꽃이 피는 것을 기대하는 것과 같다고 한탄을 하던 것이 불과 60년 전의 일이다. 미국의 정치가들은 한국에 원조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그런 비관적 전망을 보기 좋게 빗나가도록 했다. 비록 지금도 한반도에서는 전쟁이 끝나지 않았지만, 이제 지긋지긋한 분단과 갈등의 역사를 바꾸기 위한 새로운 여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하는 시점에 와 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모범적으로 발전한 한국현대사를 뒤돌아보면서 가장 아쉬운 것은 존경할 만한 지도자를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1948년 이후 11명의 대통령이 선출됐다. 여론조사를 한다면 국민들은 11명의 대통령 중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누구를 선택할까? 사람에 따라서 호불호가 있겠지만, 압도적 지지를 받는 대통령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공과 과를 다 따져야 하겠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지도자에 대해 호보다 불호가 더 많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만약 10만 원권 지폐를 찍고, 거기에 대통령 중 1인의 초상화를 넣는다고 한다면, 사회적으로 논란 없이 선택될 수 있는 지도자가 있을까?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지도자와 그 참모들이 자격을 갖춘 사람이었는가가 문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나라의 운영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법률과 체제의 정비가 미비했다는 점과 함께 장기적 비전을 갖고 나라를 운영하기엔 한반도의 국내외 정세가 급변했다는 사실도 고려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은 이들을 대통령으로 선택했던 사회적 책임이다. 지역감정과 배타적 민족주의, 그리고 시대착오적 반공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던 사회적 의식 수준 속에서 대통령 후보들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어려웠다. 독재체제 하에서의 선거를 논외로 한다 하더라도 민주화 이후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우리가 남이가’를 외쳐도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했고, 어렵사리 쟁취한 민주주의도 경제성장이라는 신화 한 방에 날려버렸다. 누가 되어야 동네 개발이 이루어지고 집값이 올라갈 것인가가 선거의 기준이 되기도 했다.

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다. 개교 이후 72년이 되는 서울대엔 25분의 총장이 계셨다. 그리고 1991년부터 구성원들의 선거로 총장이 선출됐다. 서울대 구성원들 사이에 차이가 있겠지만, 시대에 맞는 학교의 발전을 이룩한 모범적인 총장을 꼽으라고 하면, 누가 선택될까? 기준을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고, 역대 총장들의 업적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압도적으로 선택될 수 있는 분은 없을 것이다. 구성원의 손으로 직접 선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것일까?

다양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학교의 상황 역시 대한민국의 사회적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학연과 지연, 조직 이기주의가 시대가 원하는 학교의 발전을 이끌 수 있는 지도자를 선출할 수 없도록 했다. 이렇게 선출된 지도자는 구성원들보다도 정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자율화를 위해 법인화를 했다고 하지만, 국립대학 시절보다 자율화는 더 후퇴했다. 시대를 읽고 장기적 비전을 통해 학교를 변화시키지 못함으로써 서울대는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디 이번 선거는 향후 100년을 위한 4년을 만들어줄 수 있는 지도자를 선출하는 과정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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