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우리나라 복지체계의 사각지대를 점검하다

지난해 12월부터 수도를 사용하지 않은 가구가 있었다. 남편이 세 달 전인 9월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며 순식간에 새 가장이 된 어머니는 1억원 이상의 빚을 졌지만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누구도 그 가정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결국 그들은 숨진 지 두 달 만에 변사체로 발견됐다. 이번 달 증평군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다. 40대 여성 A씨는 남편과의 사별 이후 생활고에 시달리다 네 살짜리 딸과 함께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이들의 경제적 궁핍은 충분히 파악 가능한 일이었으나 복지제도는 제대로 구동되지 못했고, 결국 모녀를 구제하는 데 실패했다.

지역사회는 왜 모녀를 발견하지 못했나?

충북 괴산경찰서에 따르면 A씨는 임대아파트 4층에 다른 세 가구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러나 이웃 주민들은 모녀의 죽음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괴산경찰서 관계자는 “계절적인 요인으로 인해 시체의 부패가 진행되지 않았고 결국 관리비 체납을 이상하게 여긴 관리인에 의해 신고되면서 시체가 발견됐다”고 전했다. 시체 발견만 늦어진 건 아니다. 가장인 남편이 숨진 뒤 생계가 어려워진 9월 이후, 지역사회는 이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A씨는 사망 직전 가계주택자금 대출 1억원, 대부 대출 3,000만원 등 총 채무 1억 5,000만원이 있는 상황이었지만 A씨에겐 임대보증금, 차량 등을 합해 1억 4,700만원의 자산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업체와 자동차 매매상에게 두 건의 사기사건 고발을 당한 A씨는 이미 남편과 어머니를 잃은 상태였고 극단적인 결정을 하기에 이른다. 증평군 맞춤형복지제도를 이용하면 A씨는 긴급생계비 및 한 부모·자녀 양육비를 통해 매달 지원금 88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이는 채무에 비교해서 적은 금액이나 분명 도움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A씨는 이를 신청하지 못했다.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은 지난해 8월 제1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을 발표하며 “꼭 지원해야 할 사람들에게 적합한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A씨의 사례를 보더라도 실제 복지 대상은 여러 가지 경제적 조건이 얽혀있어 적확한 지원 대상 기준을 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보건복지부는 제1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을 통해 주거급여에 대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고, 부양의무자 가구에 노인이나 중증 장애인이 속해있으면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꾸준히 문제가 됐던 부양의무자 기준을 대폭 축소하면서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실질적인 소외계층은 복지 안전망 바깥에 위치한 경우가 많다. 국가와 소외계층 간의 정보 비대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유명뮤실한 복지제도, 그 이유는?

우리나라는 아직 복지제도를 찾아보고 활용하는 것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묻는다. 서울회생법원 관계자 B씨는 A씨 사건에 대해 “남편이 사망한 후 상속재산 파산신청을 하지 않았을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상속재산 파산제도는 법원이 신청인에게 파산관재인을 선임해 상속인의 빚을 대신 변재해주는 제도다. 그러나 상속과 파산의 관할 법원이 가정법원과 회생법원으로 나뉘어 있어 이 제도가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B씨는 “법률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파산절차가 어려운 건 당연하다”며 “사회가 파산절차의 공공재적인 성격을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가정법원 역시 작년 7월 상속재산 파산제도를 안내하고자 ‘NEW START 상담센터’에서 관련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지만 갈 길은 멀다. 서울금융복지 중앙센터 관계자 C씨는 “금융복지센터에선 파산절차와 접수, 필요한 서류에 대한 상담을 진행하고 있으나 개인별로 파산절차 전반에 관여하기엔 현실적으로 무리가 따른다”고 말했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맞닥뜨린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빚이 분산돼있기 때문에 금융상담을 하더라도 절차가 복잡한 경우가 태반이다. B씨는 “취약계층은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관련 자료를 모으는 일도 어려우므로 실제 재판에서도 소명이 어렵다”며 “이 경우 재산을 고의로 은닉한 것인지 아니면 자료가 없어 소명할 수 없는 것인지 판단이 어려워 면책 여부를 결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파산제도뿐만 아니라 복지제도는 일정 부분 개인의 노력이 필요하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그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개념이 사회법에도 적용되는 셈이다. 게다가 파산신청에 따른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신청 자체를 꺼리는 사람들도 있다. 서울시 금융복지센터 박정만 센터장은 “국가적 차원에서 채무자들의 책임만을 강조해 구조적으로 그들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씌운다”며 “개인이 회생절차를 밟을 때 낙인효과가 일어나지 않도록 개인파산에 대한 적극적인 인식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근엔 정부 차원에서 취약계층의 정보 비대칭성을 인지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게끔 제도를 보완하고 있으며, 실제로 ‘지역사회보장협의체’를 통해 지역별 사각지대를 좁히려는 노력을 실천하고 있다.

파편화된 복지, 유기적인 연결 필요해

한편으론 지역별로 제도를 개선하는 것만으론 우리나라 복지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은 복지전달체계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주체가 없어 기관 간의 협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런 문제로 인해 개인별, 가구별로 지원받는 복지혜택을 파악하기가 곤란하고, 다른 복지 서비스와 중복 지원이 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난다.

사회복지 전담공무원의 수는 늘리지 않은 채 복지제도만을 늘리는 것 또한 문제다. 실제로 지난해 9월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어느 사회복지 전담공무원의 호소’라는 제목으로 글이 올라오면서 사회복지 전담공무원의 복지 문제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자신을 지자체에서 근무 중인 사회복지 전담공무원이라고 밝힌 글쓴이는 “출근할 때 듣는 귀뚜라미 소리를 퇴근할 때에도 듣는다”며 사회복지업무 담당자를 늘려달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복지사 개인에게만 업무가 가중되고 복지 기관과 제도를 총괄할 수 없는 기구가 없어 복지제도가 유기적으로 굴러가지 못하고 있다.

박정만 센터장은 “국가 차원에서 파산절차를 금융정책으로 접근하는 것이 문제”라며 채무자에게 부담을 가중시키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이어 그는 “개인의 경제적 문제를 금융정책의 측면으로만 접근하면 채무자의 책임만 부각하게 된다”며 “중앙정부는 1,419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복지정책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서울금융복지센터는 지난 5년간의 활동을 통해 1조원 가량의 채무를 면책시켰다. 그러나 이런 지방자치단체별 노력은 중앙정부의 도움이 없다면 지속하기 어렵다. 박정만 센터장은 “그나마 서울회생법원은 채무자의 변제와 회생에 관심을 기울이는 편이나 다른 지방법원의 경우 여전히 채무자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중앙정부에서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인식 자체를 복지 차원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분화된 지자체별 복지센터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찾아내는 복지가 아닌 찾아가는 복지로

현대사회로 접어들수록 공공서비스의 대상자는 국가와 대등한 입장에서 자신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됐다. 하지만 취약계층이 회생할 방법을 알아내는 데는 정부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서울금융복지 관악센터 권태영 상담가는 “금융복지와 관련해 법률사무소에서 열심히 돕고 있지만, 구민들이 이에 대한 정보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센터 차원에서 복지제도 홍보도 하고 있지만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 좋은 제도가 잘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그는 “센터 자체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상담을 예약제로 진행하다 보니 직접 찾아가는 작업을 시행하면 업무가 마비되는 경우가 생긴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경제적 취약계층들이 특별하게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라며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대학생들까지도 재무상담이나 신용조회 등 다양하고 깊이 있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또한, 서울금융복지 중앙센터 관계자 C씨는 “서울시에서 ‘찾아가는 동주민센터’라는 프로그램을 가동해 복지 사각지대를 좁히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 단위 사례를 수집해 사각지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찾아가는 동주민센터’는 취약계층을 지속해서 관리하고 지원하는데 목표를 둔다.

복지제도가 단지 국가가 시혜적으로 베푸는 사업이 아니라 제대로 본연의 역할을 하려면 시민들의 직접 참여와 국가의 적극적인 안전망 구축이 함께 연동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권태영 상담가는 “구민 모두가 복지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복지서비스가 실질적으로 가동돼 중앙정부의 통제력을 키우는 동시에 지자체별 노력을 계속하는 한편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개인 역시 문제해결에 의지를 갖춤으로써 더 이상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소외되는 사람이 없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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