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재심 전문 변호사 박준영을 만나다

18년 전, 전라북도 익산의 약촌 오거리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택시기사를 살해한 혐의로 15세 소년은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복역 기간 중 진범이 밝혀졌지만 경찰은 이 사실을 은폐했고, 수년이 지나서야 진실이 알려지며 소년은 억울한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19년 전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의 ‘나라슈퍼 강도 및 살해 사건’도, 11년 전 ‘수원 노숙 소녀 살인사건’도 모두 같은 길을 걸었다. 경찰의 고문과 강압 수사, 그리고 이를 통해 받아낸 허위 자백.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억지로 욱여넣은 퍼즐 조각들을 바로잡고 억울함을 토로하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변호사가 있다. 단 하나의 진실을 좇아 법원의 판결에 당당히 맞서 재심(再審)을 청구하는 재심 전문 변호사, 박준영 변호사를 『대학신문』이 만나봤다.

박준영 변호사가 인터뷰를 마치고 서울동부지방검찰청 사무실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그는 왜 법정에 섰는가?
박준영 변호사는 어떤 계기로 억울한 이들에게 다가가게 됐을까. 인생을 한 번 크게 뒤집어 보고 싶어 고시 공부를 시작했다는 그는 “흔히들 투철한 사명감을 이야기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라며 소탈하게 웃어 보였다. 박준영 변호사는 “학벌과 지연, 혈연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대학교 중퇴에 인맥도 없는 내가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다”며 처음 재심 사건을 맡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언론이 주목하는 사건을 통해 이름을 알리고 인정받기 위해서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던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것이다. 그는 “사회적으로 더욱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 사회의 기대를 거스를 수 없게 됐다”며 지금까지도 재심 사건을 맡는 이유를 말했다. 그러나 거창한 동기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적인 그의 답변의 이면엔 깊은 의미가 담겨있었다. 그는 “실천적인 용기와 힘은 그런 용기를 지닌 자가 자신과 별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할 때 나온다”며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가 얼마든지 나처럼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더욱 솔직하게 말하고 싶다”고 전했다. 그가 화려한 포장을 하지 않고 그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이유다.

시간을 달리는 변호사
법원이 한 번 확정한 판결은 법적 안정성 때문에 아무리 문제가 있다고 판단돼도 쉽게 뒤집지 못한다. 재심 사건이 극히 드문 이유다. 박준영 변호사는 “모든 잘못돼 보이는 판결을 바로잡는 것 자체가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며 “법적 자원은 한정돼 있고, 판결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또 다른 소외되는 가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법적 안정성이나 사법제도의 신뢰성, 3심급 제도와 판결의 확정력 등의 가치는 굉장히 중요하다”면서도 “그런 가치를 고려하더라도 도저히 판결을 그대로 둘 수 없는 경우, 즉 판결에 간과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가 있는 경우까지도 바로잡지 못한다면 이는 정의에 반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결국 재심은 법원의 확정된 판결에 중대한 결함이 있는 경우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 정의를 완성하는 과정인 것이다.

박준영 변호사가 처음 재심 사건을 맡은 2010년 당시만 하더라도 재심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은 회의적이었다. 그는 “진범을 잡아 오지 않는 이상 재심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시각이 컸다”고 회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피해자를 설득하면서까지 정의를 바로잡기 위해 재심 청구에 나섰다. 이미 한 번 사회로부터 입막음 당한 이들이 다시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다. 박 변호사는 “이들이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 그리고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이들의 손과 발이 되어 법원의 문을 두드렸다. 수십 년이 지난 사건의 기록을 찾아 헤매기도 하고, 수입이 없어 파산 직전에 처하기도 했다. 그는 “돈을 지불할 여력이 있는 이들의 사건까지 꼭 내가 나서야 할 이유는 없다”며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서 이 일에 회의가 들기도 했지만 시민들의 후원으로 위기를 모면하며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자신이 묵묵히 같은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이유를 밝혔다. 그는 “나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어떤 인연도 없는 시민들의 후원을 받으니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다”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박 변호사와 그를 지지하는 수많은 시민들 덕분에 재심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많이 바뀌었다. 박준영 변호사는 “재심 사유에 해당하는 법적 증거를 수집해 청구하면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재심이라는 단어에 익숙하게 됐다”며 긍정적인 변화를 이야기했다.

‘같이’의 가치를 찾아서
박준영 변호사는 사회로부터 내쳐진 이들을 변호하는 것은 자신에게 일종의 의무라고 말했다. 그는 “사회적으로 많은 불이익을 받은 이들과 달리 나는 개인적으로 운이 좋고, 사회적으로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이라며 “이들을 대할 때 시혜적인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아니라 의무감을 가져야한다”고 역설했다. 우리 사회 한편에선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을 누리고 있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이들을 대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일종의 부채의식을 갖고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생각을 가질 때 남이 보이고 주변이 보인다”며 소외받는 이들에게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할 것을 당부했다.

그는 법체계를 개정할 때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일정한 기간이 경과한 후 형벌권이 소멸되도록 하는 공소시효 제도로 인해 재심 사건의 진범을 처벌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당시 판결을 담당한 국가 기관에 대한 처벌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로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경우 20여 년이 지난 지금 진실은 밝혀졌지만 이미 공소시효와 징계시효가 모두 만료됐다. 무고한 이를 범인으로 몰고 간 국가기관에 책임을 묻지 못하는 이런 체계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최근 국가 폭력의 공소시효와 소멸시효를 폐지하자는 움직임이 있지만, 박준영 변호사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는 “이런 움직임이 언뜻 보면 정의로워 보이지만, 소급 적용의 기점에 대한 쟁점이 불가피하고 이는 결국 또 다른 소외를 야기할 것”이라며 정의는 상대적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그 자신도 예전엔 형사법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했었다며 “법과 제도의 개선을 이야기할 때 그와 연관된 다양한 이해관계와 모든 가치를 함께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박 변호사는 “억울한 옥살이를 하신 분은 종종 서울대를 폭파해야 한다고 말한다”며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이들 작은 개인에게 억울한 굴레를 씌운 이들의 대부분이 서울대 출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재심을 준비하다보면 역설적이 되게도 가장 많은 도움을 주는 것도 서울대 출신”이라며 “배운 이들은 사회적 역할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였지만 진심어린 당부를 남기며 돌아선 그의 뒷모습에서 소외받는 모든 이들을 끌어안고도 남을만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라스베이거스 총기 테러 사건 당시 살아남은 한 남성의 인터뷰가 있다. 바로 옆의 여성이 총에 맞아 죽는 걸 보며 왜 자신은 살아남았는지 죽을 때까지 고민해야겠다고 한다. 내 운이 동시에 타인의 불운이 될 수 있다는 것의 의미를 고민하고 실천한다면 세상을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사진: 신하정 기자 hshin15@snu.kr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