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책 | 올해 4월 주목할 만한 신간 두 권 (1)

페미니즘 폭풍이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다. 미투 운동이 진행되며 배우들과 정치인들의 추악한 민낯이 드러나는가 하면, 『82년생 김지영』이 수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끌어내며 베스트셀러로 등극했고, 수많은 유명인들이 페미니스트를 자처한다. 이제 페미니즘은 하나의 사상을 넘어 거스르기 힘든 시류가 됐다. 하지만 한국에서 페미니즘은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있고, 강한 지지를 받는 만큼 거센 공격도 받고 있다. 페미니즘은 옳지만, 다른 나라와 구별되는 양상을 보이는 한국식 페미니즘은 싫다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에서 나타나는 페미니즘은 과연 정말로 ‘진정한 페미니즘’이 변질된 것일까?

『그곳에 가면 다른 페미니즘이 있다』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실렸던 저명한 페미니스트들의 글 20편을 통해 위의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이 책은 억압받는 여성의 현실에서부터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찾아나가는 여성들의 모습에 이르기까지의 광범위한 내용을 4부에 걸쳐 다루고 있다. 각각의 글의 내용은 그 저자의 수만큼이나 다양하고도 독특하다. 이 모두는 여성의 권리와 존엄성을 지켜야 한다는 취지로 쓰였지만, 그 구체적 모습은 어떤 시기의 세계의 어떤 부분을 조명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나타난다.

낙태에 관한 페미니스트들의 견해 차이를 예로 들어보자. 프랑스의 페미니스트 실비 로젠베르그 라이너는 자유로운 임신중절을 위한 운동을 하며 일생을 보냈다. 그녀는 낙태권은 자기 신체결정권과도 같은 것으로, 자신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 당연한 행사할 수 있어야 할 여성의 권리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반면 캐나다의 마리 게렝라주아 수녀와 같은 기독 페미니스트들은 임신은 성관계를 선택한 여성의 책임과도 같으므로 낙태는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아닌 책임의 회피에 불과하다고 말할 것이다. 물론 피에르 부르디외와 같이 종교가 철저한 가부장적 가치를 주입한다고 주장하며 종교와 페미니즘의 양립 자체를 부정하는 시각도 있다. 이들 중 어떤 말이 더 옳다고 할 수는 없다. 각각의 주장이 등장한 시기와 사회적 맥락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처럼 페미니즘이라는 기치 아래 모인 글들에서 우리는 같은 생각을 가지고도 시선이 어느 방향을 향하느냐, 어느 시기에 주장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진정한 페미니즘’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이 책에 따르면, 진정한 단 하나의 페미니즘은 없으며 각각의 사회에서 알맞은 형태로 나타날 뿐이다. 명예살인이 자행되는 인도에서는 여성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움직임이 나타날 것이고, 출산이 실업과 경력단절로 연결되는 일본에서는 육아와 사회활동을 병행하기 위한 움직임이 나타날 것이다. 여기에 비춰보면 사내 또는 학내 성추행 문제, 여성혐오범죄 등에 대해 대한민국만의 특징적 반응이 일어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애초에 페미니즘은 세계의 각 지역에서 그곳에 필요한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프랑스에는 프랑스의 페미니즘이, 미국에는 미국의 페미니즘이 있듯, 대한민국에는 대한민국의 페미니즘이 있다. 그리고 인간 존엄성의 확립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가진 한 이 모두는 진정한 페미니즘이다.

그곳에 가면 다른 페미니즘이 있다

에마 골드만 외

조은섭 옮김

르몽드코리아

242쪽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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